법치가 아니라 협치가 절실하다.
언론 보도에 보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법무부가 연쇄살인범 유영철(53)과 엽총 살인범 정형구(60)를 서울구치소로 이감했다고 한다. 서울구치소는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언제든 사형 집행이 가능한 시설을 갖춘 곳으로 현재 연쇄살인범 강호순(54)과 정두영(55)을 포함한 여러 사형수가 모여 있다. 이는 한동훈 장관의 포석은 점증하는 강력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려는 조처로 보인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흉악 범죄와 집단 사망 사고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일종의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23명에 대한 일괄 사형 집행 후 26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된다. 현재 미집행 사형 확정자는 59명이다. 이후 사형 집행이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아 여러 지역의 사형 집행 시설이 방치되어 있었고 결국 서울구치소에만 사형 집행 기능이 남게 된 것이다.
여기에 모인 살인범들은 특히 흉악한 자들이다. 유영철은 여성과 노인을 포함해 20명을 연쇄 살해해 2005년에 사형 판결을 받았다. 정형구는 자기 차를 추월한 승용차에 타고 있던 신혼부부를 엽총으로 살해해 2000년에 사형 판결을 받았다. 강호순은 아내와 장모를 포함해 여성만 10명을 살해해 2009년에, 정두영은 여성과 노인을 포함해 9명을 살해해 2000년에 각각 사형이 확정됐다. 이런 자들이 살아 있는 것이 용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대다수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2022년 한국갤럽이 ‘사형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를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9%가 현재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대답했다.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3%에 그쳤다. 2003년 조사에서는 유지(52%)와 폐지(40%) 견해차가 크게 좁혀졌지만, 여전히 흉악범에 대한 처벌이 사형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퍼져 있다. 물론 2018년에 실시한 ‘적절한 대체 형벌이 도입된다면 사형제를 폐지할 수도 있는가?’를 주제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66.9%가 찬성한 바가 있다. 그러나 국민은 여전히 사형제도가 폐지되면 흉악범죄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도 1996년과 2010년에 사형제가 합헌이라는 판결을 한 바가 있기에 한국에서 사형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9년 한국 천주교주교회의가 다시 사형제 폐지를 청원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해 현재 심사하고 있다.
국제연합 회원국 193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96개 국가 가운데 111개 국가는 이미 사형제를 폐지하였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46개 국가는 실질적으로 사형제도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사형제도는 유지하는 국가는 미국, 일본, 중국, 인도를 포함하여 33개 국가에 이른다. 나머지 6개 국가는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형제를 폐지한 경우에 해당된다. 단순히 통계 숫자만 보면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상 폐지 국가인 한국에서 여전히 사형제도에 찬성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흉악범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형제가 있어도 매일 흉악범죄가 일어나고 있는데 사형제가 폐지되면 범죄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두려움은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강력한 사형제를 시행하는 미국의 범죄율이 특별히 다른 나라보다 낮은 통계치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사형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대부분 중동과 아시아 국가다. 유럽과 남미의 대부분 국가는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범죄율이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다. 사형제와 범죄율이 인과 관계는 크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2010년대부터 유럽연합과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어 사형 선고만 하고 사형 집행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지금은 사형 대신 감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대세가 되었다. 그래서 사형 선고의 경우도 많이 줄어들어 2013~14년은 2명이 나왔으나 2015~17년에는 한 명도 없었다. 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최대한 줄여보려고 하는 데도 여전히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자가 59명이나 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에도 흉악 범죄가 잦다는 방증이 된다.
사형을 시행하는 국가 가운데 선진국은 미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정도다. 그런데 미국도 28개 주에서만 사형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을 제외하고 중국까지 포함하면 동아시아 모든 나라에서 사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유교적 전통이 강하다는 데 있다.
사형제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명권과 오판의 가능성이다. 이에 못지않은 경우가 바로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자행된 자의적인 사형 선고와 집행이다. 이런 어두운 과거 때문에 한국에서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특히 사형수였던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사형제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커진 것이다. 그런데 강력한 법치주의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한국은 유럽연합과 잭은 국제 조약 때문에 사형 집행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국은 범죄율은 매우 낮아서 굳이 사형으로 군기를 잡을 필요도 없는 나라다. ‘세계인구리뷰’(World Population Review)가 발표한 2023년 <국가별 범죄율>(Crime Rate by Country 2023)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범죄 지수가 26.68로 범죄 지수 47.81로 56위인 미국보다 훨씬 안전한 나라다. 이웃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22.19로 129위에 올랐다. 그러니 굳이 사형수를 가지고 국가의 기강을 잡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동훈 장관이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총선을 의식한 이른바 ‘보여주기 행정’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현재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30% 초반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에 현저히 밀리고 있는 국민의힘이 현재 의석을 사수하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상황에서 무슨 수든 써야 하니 말이다. 현재 국민은 유영철이나 강호순의 사형도 원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오르는 물가를 잡아주기를 가장 바라고 있다. 그리고 한국 경제가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에도 OECD 국가 가운데 최악일 것이라는 IMF의 예상을 빗나가게 할 방책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런데도 법치주의와 자유주의만 내세우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는 사형 선고도 내릴 수 없는 가장 골치 아픈 것이기에 그저 서슬이 퍼런 법 집행만으로는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윤석열 정부가 깨닫고 협치에 나서기를 바랄 뿐이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유영철과 강호순의 사형을 집행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은 이재명 대표를 ‘잡아 죽여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빨리 정신을 차리고 법치가 아닌 협치의 길로 나서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