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생존 전략에 경의를 표한다.
민주당의 반골 전사 이상민이 또 한 번 언론을 탔다. <채널A>의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후유증을 앓고 있는 민주당의 분위기를 놓고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냐…. 색출, 색출하는데 민주 국가에서, 법치 국가에서 무슨 색출이냐.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이)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과 똑같다고 말한다. 대국민 약속을 지킨다는 게 무슨 나라를 팔아먹은 거냐. 지도부에서도 이 대표 팔아먹은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국회의원들은 이재명 쫄따구가 아니다.”라고 했다. 뭐 이쯤 되면 과거 노무현 대통령께서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검사들을 보고 하도 기가 차서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예언 아니 예언하신 것이 생각난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고통을 당하실 때는 물론 그 이후의 검찰 출신들이 하는 ‘짓’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이상민의 “우리는 이재명 쫄따구가 아니다.”라는 투의 말은 처음 한 것이 아니다. 지난 3월 17일에 <CBS라디오>의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 출연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가 뭐 문재인 대통령 부하입니까. 문 대통령이 지시하면 그대로 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어디든 들이받고 보는 사람이다. 이상민은 자신이 몸담은 당의 리더였던 이회창, 노무현, 문제인, 그리고 이재명을 들이받는 것으로 존재감을 키워왔다.
그런데 이상민은 왜 이럴까?
그래서 그의 과거 언행을 살펴보니 원래 그런 식으로 버텨온 사람이다. 1958년 충남 대전에서 태어나 초중고 대학까지 충남에서만 뼈가 굵은 사람이다. 장애인인 데다가 이른바 ‘지잡대’ 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하고 국회의원을 5선이나 했으니 문자 그대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될 만하다. 그러나 중앙 정계에 줄이 없어서 번번이 찬밥 신세였다. 지역구가 하필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는 ‘유성을’이라서 국회에서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지만 전공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여기서도 거의 왕따 분위기다. 그리고 그가 지나온 정치 경력을 보아도 한나라당에서 떨어져 나온 열린우리당에 들어가 2004년 지역구 당선 후 2008년에는 민주당의 문을 두드렸으나 안 되자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에 들어가 당선되었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에 들어가 당선되었다. 그 이후에는 계속 민주당 소속으로 버티고 있다. 그런데 모든 당에서 비주류를 자처하면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특히 민주당에서는 비노무현, 비문재인, 비이재명을 자처하며 이른바 3비(非) 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면서 특히 종편에 민주당의 비주류 대표 격으로 자주 출연하여 당론과는 다른 자기만의 의견을 거침없이 내세우면서 종편이 애용하는 의원이 되었다. 민주당 소속임에도 국민의힘이나 정의당의 당론을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해대는 바람에 민주당에서는 미운털이 많이 박힌 상황이다. 그러나 그런 고집으로 지금까지 지역구에서 5선을 해낸 관록이 있기에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는 모양이다. 더구나 2012년 19대 총선부터 내리 50%를 넘는 득표율로 지역구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바로 이러한 지역구 뚝심이 삐딱선 타는 이상민의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다.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무소속-자유선진당-무소속-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을 거치면서도 지역구는 오로지 대전 유성(을)이었다. 당이 아무리 바뀌어도 지연만 확실하면 당선이 되는 한국적 정치 풍토에 최적화된 인물인 것이다.
물론 한 정당에서 여러 의견이, 특히 당의 노선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표징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상민처럼 ‘직업적으로’ 들이대기를 하는 것은 다양한 목소리로 해석하기 어렵다. 게다가 자신이 몸담은 정당과 대립하고 있는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은 분명히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상민이 민주당을 탈하고 국민의힘에 들어간다고 해서 국민의힘이 반기기만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보나 마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을 치고 나갈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민주당으로서도 워낙 유성(을) 지역구의 터줏대감이라서 치기 총선에서 맞설 일이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상민이 간절히 바라는 당직을 쉽사리 주기도 어렵다. 당내에서 워낙 튀는 언행으로 주류 비주류를 떠나 이상민의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번 있었던 당내 국회의장 경선에서도 1표밖에 못 받은 것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그래서 이상민은 민주당 안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그러나 이번에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다음 비명 계열이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본 이상민이 적어도 속으로 흔들렸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어떤 이는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 민주당이 분열은 아니어도 내분이 발생하여 이상민 같은 주류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른바 ‘친문’이나 이낙연 파벌도 아닌 완전한 비주류가 적어도 중대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대로 ‘친이재명’ 파벌과 ‘반이재명’ 파벌이 명확히 갈라졌지만, 반이재명 세력 누구도 탈당을 입에도 답지 못하고 오히려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탕평 차원에서 임명되었던 전남 해남 출신의 이낙연 계파의 박광온 전 원내대표의 후임 선거에 출마한 이들이 모조리 친이재명 계파인 것만 보아도 상황은 이미 정리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민은 또다시 더욱 고독한 길을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민이 스스로 말한 “탈당을 통해 당을 쪼개야 한다.”라는 주장이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상민은 결국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이미 너무 굳어진 비주류의 이미지를 앞으로도 영원히 벗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행보를 보면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물론 이상민은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대전시 유성(을)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을 것이니 두렵지 않을 것이다. 파벌이 강한 영향을 미치는 한국 정치판에서 이런 식으로 좌충우돌하는 이상민은 문자 그대로 독보적인 존재다. 그러나 그의 행보가 결국 다른 많은 사람의 눈에 ‘기행’, 더 나가 ‘만행’으로 보이는 현실에서 그의 임팩트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내년 총선에서 당선이 되어 6선을 하면 개인으로는 영광이고 자랑이겠으나 이런 식으로 24년 동안 한국 정치판에서 그저 좌충우돌만 해 온 것이라면 과연 무슨 ‘보람’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내년 총선은 많은 이들이 예측하는 대로 한국 정치의 방향을 완전히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만약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문재인 정부의 색채 지우기 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대부분 사람이 윤석열 후보의 자질보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배설하기 위하여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것이라는 사실이 확증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미 감지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제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한 지역구라도 더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상민 같은 문자 그대로의 지역구 터줏대감은 그 누구도 건드리기 힘든 호저가 될 것이다. 여당도 야당도 기꺼이 받아들이기가 버겁지만 버리려다가 가시에 찔리게 될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제 민주당이 영장실질심사 결과에 무관하게 이재명 체재로 가기로 방향을 정한 이상 이상민의 입지도 조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