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과 대선을 향해 갈 길은 아직 멀다.
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도 한국에서는 국내 권력 다툼이 먼저인가 보다. 언론이 온통 강서구 보궐 선거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투표율이 48.7%로 평일 치러진, 그것도 구청장 보궐 선거에서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2000년 이후 기초단체장을 뽑는 재·보궐선거 평균 투표율 38.5%에 비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물론 수구 언론은 이 투표율을 지난 서울 시장 보선이나 작년의 지방선거 투표율과 비교하며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지만 말이다. 찌라시들이 뭐라 하든 전과자인 김태우를 판결 3개월 만에 대통령이 직접 사면·복권해 다시 그 자리에 후보로 꽃은 이 선거에서 국민의힘의 후보가 대패하면 윤석열 정권 붕괴의 신호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파다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10월 8~9일 이틀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예측조사를 한 결과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가 51.7%의 지지를 받아 41.6%에 그친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를 10.1%p 앞선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큰 차이인 56.52% 대 39.37%의 압도적인 차이로 진교훈 후보가 압승을 거두었다. 이준석이 예측한 18%p에 근접한 17.15%p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김태우의 득표율은 현재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율과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김태우의 득표율은 현재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율과 거의 일치한다. 이는 분명히 윤석열 정권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분노의 표출이다. 더 이상 이렇게 아마추어식으로 자기 멋대로 국정을 농단하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번 보선에서 국민의힘의 대패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은 바로 이종섭, 유인촌, 김행의 이른바 ‘막무가내 트리오’와 윤석열 대통령의 친구의 친구라던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다. 현 정부의 치부를 이들 4명보다 더 잘 드러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조선 제일의 혀’로 저잣거리의 확실한 웃음거리로 전락한 한동훈도 빼놓을 수는 없다. 강서구 보선의 대패로 이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될 것이 뻔하다. 그리고 이들을 밀어붙인 윤석열 정권의 균열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결과를 국민의힘도 이미 예상한 바가 있기에 투표 날 훨씬 전부터 일찌감치 김 빼기 작전에 들어간 것도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사실 전과자를 대통령이 3개월 만에 사면하고 사면하자마자 보선에 출마하는 것은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선진국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만큼 이번 선거는 현 정권의 만행을 심판하는 성격이 강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이런 막무가내식의 일 처리는 법치 국가에서 나쁜 선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에서 김태우를 후보로 택한 것은 안철수의 전공인 간 보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이 6개월 남은 상황에서 김태우를 희생양으로 삼아 여론을 떠본 것이다. 곧 윤석열 정부가 어느 정도 만행을 저질러야 국민이 반응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어차피 버릴 카드라면 김태우만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 시험 결과를 놓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무슨 반응을 보일 것인가? 당연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아무런 반성도 안 할 것이다. 어차피 질 것을 예상하고 뛰어든 선거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꼼수와 면피 작전도 소용이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선거 결과를 맞이했으니 국민의힘만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신을 차릴까?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아서는 그럴 리가 없어 보인다.
이런 와중에 이번 보선의 최대 수혜자는 이재명 대표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구속영장 기각으로 여권의 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였던 한동훈이 치명타를 당했지만, 여전히 칼자루는 윤석열 정권이 쥐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재명 대표도 그 사실을 알기에 강서구 보선에서 상당히 신중한 처신을 하였다. 그리고 사실 엄청난 이번 보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표의 고난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한방 크게 먹은 한동훈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회 국정감사에 나온 한동훈의 언행은 단순히 자존심만 내세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 자기가 한국 최고의 엘리트라서 모르는 것이 없고 못 하는 것이 없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오늘 국감장에서 나온 한동훈의 발언을 아래에 모아 본다.
지난 체포동의안 표결 때 장황하게 이재명 대표 수사 내용을 공개한 것을 지적하자 “검찰 입장을 대신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 설명이 법의 취지를 넘어섰다고 지적하자 다음과 같이 청산유수로 되받아쳤다. “국회의원을 구속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왜 설명을 안 듣고 결정하려고 하느냐. ... 구체적인 증거와 혐의 내용이 뭐고, 검찰이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 잘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 오히려 그것을 끝까지 못 하게 방해한 것에 대해서 (민주당이)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자기주장을 되풀이했다. “구속영장이란 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 수만 페이지를 한 명이 보는, 아주 재량이 많은 영역이다. ... 유창훈 판사도 얘기했다시피 위증죄는 인정된단 취지였지만, 그래도 (영장을) 기각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이다. ... 제가 (체포동의안 설명 당시) 판단하고, 검찰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충분히 그렇게 말할 만한 근거가 있었다. ... 수사 단계이기 때문에 당연히 확정한 건 아니지만 곧 검찰이 (이 대표를) 기소하거나 판단할 것이니까 재판에서 드러날 것이다.”
한 마디로 절정에 이른 뒤끝 작렬의 신공을 한동훈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한동훈이 이재명 대표를 그냥 놔둘 리가 없다. 그리고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묻지 마 콘크리트 지지층이 30%가 있는 한 버틸 수 있는 것이 한국 정치판인 것을 한동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에게 겨눈 칼끝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재명 대표가 스스로 말한 대로 이재명 대표가 죽어야 이 저주의 굿판이 끝날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강서구 보선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고 실질적으로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이 내려졌어도 총선까지는 여전히 6개월이나 남았고, 그 사이에 얼마든지 정치판은 요동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민주당에서 이재명 대표를 능가할 차기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른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공격이 검찰에서만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온 사방에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과연 이재명 대표가 그런 곤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대선 후보가 되고 당선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먼 이야기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표의 능력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천운이 따라야만 한다. 과연 천운이 이재명 대표에게 빛을 비출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비록 강서구 보선이 뜻하지 않게 판이 커졌고 이재명 대표가 지난번 구속영장 기각에 이어 이번 보선에서도 대승을 거두며 파죽의 2연승을 달리게 되었지만 아직은 기뻐할 때가 아니다. 모든 역량은 내년 총선을 위해 모아야 할 것이다. 총선에서 이번 강서구 보선처럼 압승을 거두게 되어야 비로소 상황이, 더 나아가 천운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 압승을 거둔 것은 기뻐할 일이나 경거망동은 삼가야 한다. 사실 그 누구도 아닌 이재명 대표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그동안 이재명 대표도 여느 똑똑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무소뿔’ 병에 걸린 모습을 자주 보였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보다는 자신의 뚝심만으로 버텨온 것이다. 그러나 검찰과의 대결 과정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이재명 대표의 자세가 바뀌는 느낌을 주고 있다. 정치가는 이미지로 살고 이미지로 죽는 직업이다. 특히 이번 단식 과정을 통해 이재명 대표는 과거 좌충우돌하는 전사의 이미지에서 한 단계 성숙한 정치가의 면모를 처음 보여주었다. 염색한 머리가 탈색이 된 수척한 모습,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힘겹게 걷는 모습, 구치소 관리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에서 그의 이미지 변화를 감지한 사람이 적지 않다.
과거에 이재명 대표는 지금 한동훈과 마찬가지로 무조건 치고받고 보는 경향이 보였다면, 이제는 늘 한 발 더 물러나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언행을 삼가면서 윤석열 정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대비되는 신뢰할 만한 무게감 있는 지도자의 이미지 메이킹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연장선상에서 다음과 같은 11일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관련해 10일에 한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이해할 수 있다.
“다행히 승리하더라도 선거 결과에 대해 민주당의 승리가 아닌 국민의 승리, 민생 파탄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규정해야 한다. ... 승리에 따른 축제 분위기는 절대 안 되고 민생 민주 평화를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더 큰 반성과 각오의 계기여야 한다. ... 부족함과 책임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더 치열하게 처절하게 민생, 경제, 안전,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분골쇄신하겠다는 진정성 있는 다짐이 보여야 한다.”
이러한 이재명 대표의 속내는 말만이 아니라 그의 행동으로도 잘 드러났다. 강서구 보궐 선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퇴원 후 단 한 차례였다. 매우 절제된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현재 이재명 대표는 검찰만이 아니라 언론과도 싸우는 처지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책잡힐 일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 그의 의지가 이런 행동에서 읽히고 있다.
이제 강서구 보궐 선거가 완승으로 마무리되었으니, 다음에 처리할 일이 검찰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이른바 ‘수박’들에 대한 조처다. 정청래 의원이 ‘고름을 짜내야 한다.’ ‘외상값을 갚아야 한다.’라면서 강경책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이재명 대표의 수순을 읽어보면 일단 수박 서리는 안 할 공산이 크다. 강서구 보선까지 승리하여 2연승을 거둔 마당에 굳이 수박들의 존재감을 키워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여권에서 본격적으로 이재명 대표 죽이기 전략을 강화할 마당에 굳이 민주당 내부의 분란을 일으킬 이유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지적한 대로 이재명 대표가 당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면 수박 가운데 완전히 익어 썩기 직전인 5명 정도의 진성 수박 말고는 세력의 흐름을 따를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자극하여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이제는 없어졌다. 내년 총선에서 완승하여 3연승을 이룬다면 이제 대세는 이재명 대표가 될 것이 뻔한 일인데 굳이 서둘러 분위기를 망칠 필요가 있겠는가?
현대 대한민국은 서서히 2024년의 대위기를 향해 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경제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의 성장을 보이고,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무역 적자는 날로 심화하고 있다. 2024년 전망이 더욱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외 의존도가 심한 경제 구조에서 자체적인 조치로 살아날 가망성은 매우 적다. 게다가 미국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국방에서도 미국이 신경 쓸 지역이 우크라이나에서 이스라엘까지 확대되는 바람에 한국의 안보 상황도 매우 불안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국내 정치도 갈등이 첨예화되어 한국이 동서로 두 쪽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악화하고 있다. 이런 삼중고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가 어느 한 문제라도 스스로 풀 수 있는 가망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 삶이 힘들어지면 정부에 대한 불만이 점증되고 결국 탄핵이 화두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 강서구 보선에서 드러난 민심이 앞으로 6개월 안에 개선될 가망성이 전혀 안 보이는 상황에서 총선의 결과가 윤석열 정부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리가 만무한 일이다. 결국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어 탄핵 정족수를 충족할 정도가 된다면 윤석열 정권은 자연스럽게 무너지게 될 것이다. 거기까지 수를 내다본다면 이재명 대표가 지금 서두를 이유는 하나도 없다. 결국 모든 일은 천명에 따라 순리대로 진행될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진교훈 신임 강서구청장의 “상식의 승리, 원칙의 승리”라는 일성이 남다르게 들린다. 이제 이 나라에도 상식과 원칙이 제대로 돌아가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김태우의 범죄에 대한 준엄한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면·복권을 시켜서 그가 범죄를 저지른 바로 그 자리에 다시 후보로 올린 윤석열 정권의 몰상식과 무원칙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오늘 강서구 보선의 엄청난 결과가 이재명 대표의 천운이 도래했다는 징표가 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이재명 대표만이 아니라 나라의 명운이 달린 일이니, 간절한 마음으로 반상 위에 다음에 놓일 수순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