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은 대안 정당 생존 가능성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함량 미달인 자들이 날뛰는 한국 정치판에서 기본소득당의 용혜인이 신선한 충격을 주며 문자 그대로 '뜨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기본소득당이라는 정당의 존재조차 몰랐었다. 그러다가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용혜인으로 당의 인지도도 덩달아 뜨고 있다. 기본소득당의 이념은 사회자유주의다. 툭하면 ‘자유 자유 자유’ 외치면서 자기의 심기를 건드리면 무조건 ‘빨갱이’ 딱지 붙이는 윤석열 정부가 보기에 수상한 이념이다. 그러나 무식하지 않은 건전한 시민은 사회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사회자유주의(social liberalism)는 자본주의의 고향인 영국에서 19세기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념이다. 사회자유주의는 현재 윤석열 정부가 보여주는 것처럼 ‘내 꼴리는 대로’,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먼 사상이다. 이 사상의 대표적인 학자는 그린(Thomas Hill Green, 1836~1882)이다. 그린은 당시 영국 사상계의 주류이던 흄의 경험론과 스펜서의 진화론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추구한 학자다. 영국의 경험론과 진화론에서 내린 결론으로 인간 본질은 짐승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인간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넘어선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가 바로 사회자유주의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런 사회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정당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사회주의의 ‘사’ 자만 나와도 수구 세력만이 아니라 정부마저 바로 ‘빨갱이’ 딱지를 붙이기 바쁜 나라에서 사회자유주의의 실천을 꿈꾸는 정당이 있다는 것이 사실 매우 기쁘다. 획일주의와 엘리트주의가 판치는 대한민국의 사상적 다양성을 이룰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까? 그 열쇠를 바로 용혜인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용혜인은 문자 그대로 1당100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호사가는 용혜인을 복제하여 100명을 만들어 국회로 보내고 싶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용혜인은 누구인가? 궁금해져서 자료를 뒤져 보았다. 1990년 부천 출생으로 경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노동당에 들어갔다. 2016년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총선에 나섰으나 낙선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이 결성한 더불어 시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되어 여의도에 입성한 신성이다. 오로지 비례대표를 뽑기 위해 만들어진 더불어시민당이 선거 후 해체되어 용혜인은 원래 속한 기본소득당으로 돌아갔다. 기본소득당 소속 의원이 용혜인 한 사람뿐이니 문자 그대로 1당100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몸이 되었다. 그래서 오준호가 공동대표로 있지만 상임대표인 용혜인이 실질적으로 당을 대표하여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기본소득당 홈피에 들어가 자료를 보니 신생 정당답게 아직은 매우 빈약한 상황이다. 당헌과 당규도 마련되어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정강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창당 선언문>에서 당의 정체성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창당 선언문>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 기본소득당의 기본 정신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 요약되어 있다.
“ 87 체제가 만든 낡은 정치는 변화하는 시대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기본소득당은 밀레니얼 정치세력으로서 시혜를 약속하는 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 원칙을 제시하겠습니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을 요구하는 정치가 아니라, 모두를 존중하는 정치를 만들겠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가,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겠습니다. 낡은 정치를 벗어나 밀레니얼 정치세력으로서 새로운 길을 열고, 모두의 미래를 위한 모두의 정치를 만들겠습니다. 기본소득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갑시다. 우리는 모두 존엄한 개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삶을 선택하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태초에 모두의 것이었던 자연과 토지, 우리가 함께 만든 경제와 사회의 혜택은 다시 모두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모두의 것이 모두에게 분배되는 정치는 기본소득으로 가능합니다.
‘모두의 것은 모두에게’라는 구호는 우리가 개인으로서 존엄하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존엄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관계 맺는 자유로운 공동체는 가능합니다.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우리 삶의 존엄을 실현합시다. 딸, 엄마, 아내라는 역할에 갇힌 가족 구성원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사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갑시다.”
87 체제라고 함은 결국 1987년 6.10 항쟁을 통해 전두환의 꼼수를 타파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다음 이루어진 탈 군사독재 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밀레니얼 정치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소득당이 근본적으로 이른바 MZ세대의 정치적 의사를 반영하는 도구가 된다는 말로 읽힌다. 그래서 당원의 70% 이상이 20~30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태초에 자연과 토지가 모두의 것이었다는 명제는 가톨릭 사회론에 나오는 ‘재화의 보편적 목적’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를 정리한 <간추린 사회교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봉사에 있으며 경제활동은 공동선을 지향하는 가운데 상업 윤리만이 아니라 도덕적, 윤리적 정의도 추구해야 한다.” (「간추린 사회교리」 330~335항) “경제 사회생활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그 온전한 소명, 사회 전체의 선익은 존중되고 증진되어야 한다. 인간이 모든 경제 사회생활의 주체이며 중심이고 목적이기 때문이다.” (「간추린 사회교리」 331항)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천민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 경제 제도와 대립되는 이러한 재화에 대한 이해는 수구 세력이 볼 때 ‘빨갱이’ 딱지를 붙이기에 딱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이미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를 실천하고 있는 독일과 북유럽 국가에서는 일반 상식이 되어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워낙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미국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기에 이러한 사상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기본소득당의 기본 주장이 먹히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의원이 용혜인 1명에 불과한 현실에서 기본소득에 관련된 법 제정은 기본소득당 단독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이재명 대표도 기본소득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힌 일이 있기에 민주당의 협력을 구할 수 있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밀어붙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국민 상당수가 기본소득이 현재 시행되는 기본연금과 겹치는 것으로 이해할 뿐이다. 기본소득은 다만 그 대상을 단순히 전 국민으로 확대한 것으로 여기는 정도다. 그러나 실제로 기본소득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 기본 개념과 의의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한국과 같은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가 대세인 나라에서 기본소득제는 마치 놀고먹는 기생충을 양산하는 정책으로만 비칠 것이다. 그러나 AI와 같은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막노동을 로봇이 모조리 대체하는 날이 오면 실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인데 이들을 먹여 살릴 길은 사실 기본소득밖에는 없다.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빠진 자들은 어리석게도 그런 자들을 사회에서 도태해 버리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사회의 70% 이상이 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그래서 국민의 70%를 제거해 버려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이 받아들인 자본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상품이 생산될 뿐만 아니라 소비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의 중심인 시장이 돌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유형무형의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도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인 소비자가 없으면 자본주의 경제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도 자본주의의 기둥이 된다. 그런데 그 소비자가 능력이 없어 돈을 못 벌고 돈이 없어 소비를 못 한다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붕괴한다. 어떤 이는 그런 경우 수출을 늘리면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나라도 어차피 한국과 마찬가지로 AI와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실업자가 양산되어 자국의 상품과 서비스도 제대로 못 할 상황에서 한국의 것을 수입할 리가 있겠는가?
이미 Chatgpt와 같은 AI 기술의 놀라운 발전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자가 일할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고 어느 분야든 최고의 수준에 있는 능력자만이 생산하고 돈을 버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국민의 70%가 실업자가 되는 경우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구호는 결국 나라의 소멸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소득을 국가가 마련해 주어야 한다. 단지 불쌍한 무능력자를 인도주의 차원에서 돕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은 단순히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 문화, 더 나아가 윤리·도덕 차원의 인간관과 세계관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복합적인 문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회는 아직 이런 문제를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준에 와 있지 않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점점 더 악화하는 국론 분열 상황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런 어려운 일을 기본소득당이나 용혜인 혼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비례대표로 당선된 용혜인이 지역구에서 나와 당선될 확률도 높지 않다.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양대 정당 이외의 정당이, 그것도 신생 정당이 성공을 거둔 경우는 사실 없다. 그래서 내년 총선에서 용혜인의 기회가 현실적으로 매우 부족하다. 지난 총선처럼 비례대표를 위해 군소정당을 조합한 별도의 정당을 만들면 또 다른 기회가 올 것이지만 아직은 전망이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민주당에 합당하기에는 기본소득당의 정체성이 너무 뚜렷하다. 물론 이재명 대표도 기본소득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 전혀 이질적이지는 않지만, 용혜인을 살리자고 당을 없애는 일에 당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MZ세대가 찬성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상황이 매우 좋다는 전제하에 기본소득당이 살아남는 방법은 지금 죽을 쑤고 있는 정의당을 이기는 것밖에 없다. 어차피 두 정당 모두 진보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한국 정치판에서 극소수인 진보 세력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 뻔히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죽을 쑤고 있어도 정의당은 나름대로 지역구 의원도 당선시킨 ‘전통’이 있는 당이다. 그리고 두 당은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에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지지자 확보에 당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대로 변변한 정강조차 없고 내세우는 것이 기본소득밖에 없으며 주요 당원이 MZ세대뿐인 기본소득당이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본소득당이 정의당에 맞서려면 당장 정강을 만들어야 한다. 정강을 만들되 기본소득만이 아니라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매우 구체적인 목표 설정과 더불어 설득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인재가 필요한 데 과연 기본소득당에 그런 사람들이 모일지 의문이다.
사실 현재 기본소득당은 용혜인의 원맨쇼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문제 해결이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용혜인 한 사람만이라도 살리는 길을 도모해야 하나? 그래서 결국 앞에서 말한 대로 민주당과 당대당 합당을 하거나 단독 출마인데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는 용혜인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 용혜인 같은 전사가 나타난 것은 한국 정치에 매우 고마운 일인데 과연 어찌 자랄지는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할 모양이다. 건승을 빌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