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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는 왜 사과할 줄 모르나?

모든 이기적 극우 정치가들의 병리현상이다.

by Francis Lee

마치 제3차 세계대전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분기탱천하던 네타냐후의 언행이 점점 수상해지고 있다. 예비군 총동원령을 내리며 전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정작 미국에서 잘 쉬고 있는 자기 아들은 안 불러 이스라엘 국민의 욕을 먹고 있다. 그리고 이번 하마스의 공격으로 난리가 난 것에 대한 책임을 네타냐후가 져야 한다는 여론이 이스라엘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다. 지상군 투입을 호언장담한 지 일주일이 다 돼가지만 지지부진하다.

도대체 네타냐후는 왜 이럴까?


답은 이미 나왔다. 이스라엘판 사법 농단으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가 이번 사태를 이용하여 기사회생하려고 꾀를 써보았지만 여러 가지로 자기 뜻대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굴리다 보니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선빵’을 하마스가 날렸고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을 가해 당한 만큼 갚아준 것은 사실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의 피해 규모가 엇비슷하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제 여론이 이스라엘에만 유리하지 않다.


일단 이스라엘의 든든한 그리고 유일한 ‘스폰서’인 미국이 확전을 말리고 있다. 국제연합도 이스라엘 편만 들고 있지 않다. 유럽에서도 말로는 하마스를 비난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다. 사실 팔레스타인이 2천 년 가까이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 땅에 밀고 들어간 이후 이 지역에서 끊임없는 분쟁을 야기한 단초를 제공한 것은 명백히 이스라엘이다. 조상 땅을 되찾는다고 하지만, 한국에 비교하자면 고조선 시대의 땅을 내놓으라고 한 꼴과 같다. 정당성이 없는 것이다. 사실 이 논리라면 모세에게 이끌려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유대인이 그곳에 잘살고 있던 토착민을 밀어낸 것과 똑 같은 짓을 1948년 이스라엘이 저지른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였으니 결국 이스라엘은 언젠가 다시 그 땅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일이다. 유대인의 역사를 보면 유대인의 운명은 늘 주변 강대국의 손에 놀아났다. 모세가 이집트 왕국에서 노예로 살던 유대인을 끌어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유대인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 이집트 왕국이 쫓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가려고 한 가나안 땅도 이전에 유대인만 살던 곳이 아니라 다양한 종족과 더불어 살았었다. 그러다가 유대인이 야훼를 유일신으로 섬기는 신앙을 확립하면서 분열을 야기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바빌론 유수는 신바빌론 제국에 의해 유대왕국이 망해서 일어난 일이다. 유대인이 그토록 사랑한 솔로몬 성전도 이때 박살이 났다. 5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도 유대인의 자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선처 덕분이다.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비롯한 여러 제국의 속국으로 살다가 기원전 165년부터 100년 정도 정치적 독립을 누리며 살았다. 그러나 기원전 63년 다시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었다가 서기 70년과 73년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키고는 완전히 제압당하여 이후 2000년 가까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이른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던 것이 유대인이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로 유대교와 대립하는 기독교와 기독교 국가 덕분에 유대교 국가인 이스라엘이 제대로 된 독립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예외 없이 철저히 현대의 세계 제국인 미국에 기생하는 나라로 버티고 있다. 미국을 ‘스폰서’로 삼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진작에 아랍 제국에 제압당했을 것이다.


역사를 보아도 이스라엘은 스스로 설 힘이 없는 나라다. 늘 강대국에 기대어 근근이 버틴 나라다. 영국의 도움으로 팔레스타인 국민을 쫓아낸 땅에 과거 이스라엘 왕국과 유대왕국을 합친 것과 맞먹는 영토를 확보하고 나서도 여전히 현대의 로마제국인 미국의 도움 없이는 꼼짝도 못 하는 나라로 머물고 있다. 그러면서 비할 바 없이 약한 나라인, 아니 이스라엘의 방해로 아직 나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팔레스타인 국민만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 히틀러에게 당한 것을 그대로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시전' 하면서 말이다.


유대인은 겉으로 보면 하나의 민족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12지파 이상의 분열 요소를 내재한 민족이다. 이스라엘 건국 때 모인 유대인도 크게 세 종류였지만 실제로는 살던 지역에 따라 자기들끼리도 차별한다. 유럽 지역에 살던 유대인이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 살던 유대인을 깔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백인의피가 섞이고 그 물을 먹었으니 우월하다는 의식은 도대체 누가 가르쳐 준 것일까? 피부가 검은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닌가? 사실 유럽인과 피가 섞이기 전에 유대왕국에 살던 유대인의 피부는 검고 눈동자는 갈색이었다. 백인인 로마 병사와 통정해서 애를 낳은 경우에는 머리가 금발이고 눈은 파란색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잡다한’ 유대인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만들었으니, 집안싸움을 그칠 새가 없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특히 네타냐후가 속한 극우 정당인 리쿠드당은 신자유주의와 민영화를 기치로 내세우는 전형적인 기득권자를 위한 당이다. 그러면서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아랍국가와의 긴장 관계를 이용하여 장기 집권의 프레임을 사용해 왔다.


사실 이스라엘 건국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는 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이스라엘 정국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1973년 창당한 극우 정당인 리쿠드당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이스라엘의 정치 지평은 극우가 독점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극우 세력도 권력을 놓고는 반드시 분열하는 법 아닌가? 1996년부터 세 번이나 총리를 역임하여 최장기 기록을 매일 갈아치우면서 이스라엘 정치 바닥에서 실질적인 ‘독재자’가 되어온 네타냐후를 놓고 이스라엘 정국은 친네타냐후 반네타냐후로 갈라져 늘 정치판이 소란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가 최근 네타냐후가 자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는 사법부를 약화시키려는 수작을 부리다가 국민의 거센 반발을 초래하였다. 수십만 명의 이스라엘 국민이 거리로 나와 네타냐후의 탄핵과 하야를 외친 것이다. 네타냐후 정권이 추진하는 이른바 ‘사법개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링크: BBC News 코리아,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9r0d9pxeqeo)


1. 법원이 내린 결정을 크네세트(의회)의 단순 과반수로도 뒤집을 수 있다. 이 경우 위헌 여부 판단과 법률 폐기를 할 수 있는 대법원의 권한이 약해진다.

2. 대법관을 포함한 법관을 새로 임명하는 권한을 지닌 법관선정위원회에 정부 측 인원을 늘려 사실상 행정부가 판사 임명 권한을 지닌다.

3. 각 부처 장관은 법률고문의 조언을 더 이상 따르지 않아도 된다. 현재는 법률상 장관들이 법무장관의 지도를 받는 이 법률고문의 조언을 따라야 한다.


이 가운데 법무장관의 권한 중 현직 총리의 공직 부적합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을 없앤다는 법안은 이미 통과됐다. 한마디로 네타냐후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자기 권력을 강화하여 진짜 독재자가 되어 영구 집권을 하겠다는 수작을 부린 것이다. 권력에 눈이 먼 자가 권력의 정점에 오르면 이런 사달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네타냐후는 국민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법개혁'을 밀어붙여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네타냐후의 대응이 너무나 소홀한 것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독재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이 바로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도 과거 이회창이 이른바 ‘총풍 사태’와 관련된 의심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었다. 권력에 눈이 멀면 국익과 국민의 안전은 안전에도 없는 것이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네타냐후는 하마스의 공격을 빌미로 즉각 전시내각을 구성하고 전권을 장악해 버렸다. 그리고 바로 지상군을 투입하여 전시 상황을 조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름 아닌 빅브라더인 미국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미 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여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 이후 가장 큰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네타냐후는 본격적인 전쟁을 일으킬 생각밖에 안 한다. 자기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지도자라면 단 한 명의 목숨도 소중히 여겨야 하는 법인데도 말이다.


그런 와중에 자기 아들은 미국에 곱게 모셔두는 작태까지 드러나 전시 상황에서도 네타냐후의 지지도는 떨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또 다른 유대인 지도자인 젤렌스키가 누리는 인기와는 대조적이다. 제2의 젤렌스키가 되기를 바랐지만, 모양새가 어긋나 버렸다.


극우 유대인 정치가라는 공통점을 지닌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나 권력에 취해 국민의 목숨을 우습게 알고 애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버티고 있지만 역사는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정치가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와중에 구테흐스 국제연합 사무총장이 중동의 평화를 권유하면서 이스라엘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하자 네타냐후 정권이 분기탱천하고 있다. 국제연합 사무총장의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국제연합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미국을 믿고 날뛰는 오만방자함이 도를 넘은 모습이다. 이러는 것은 결국 이스라엘 내부의 극우 세력을 선동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자기 권력을 강화하겠다는 수작일 뿐이다. 그러면서 국민이 들고일어나도, 지지도가 바닥을 쳐도 절대로 사과하지도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지지도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니 무시해도 된다는 듯이 말이다. 말로는 '애국', '애국' 하지만 실제로는 총 한번 들지 않고, 자기 아들은 해외로 빼돌리고, 극우 세력에 둘러싸여 안주하고, 사법 농단을 부리고, 돈과 권력에 관련된 비리도 마음대로 저지르는 네타냐후를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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