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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지 보내면 피바다 만든다’고?

국민의힘의 막장 드라마는 오늘도 이어진다.

by Francis Lee

국민의힘 혁신위가 계속 악수를 두는 모양새다. 뜬금없는 홍준표, 이준석 사면론으로 분란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이른바 ‘영남 중진 수도권 차출론’으로 아예 콩가루 집안이 무엇인지를 시전하고 있다. <매일경제>에 난 관련 기사를 요약해 본다.(링크: https://v.daum.net/v/20231031160625838?f=p)


“영남에 지역구를 둔 다수의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이 만찬 회동을 가졌다. ... 이 자리에서 ‘영남의 스타들, 경쟁력 있는 사람들이 서울 험지에 와야 한다’는 인요한 당 혁신위원장의 언론 인터뷰 내용에 대해 다수가 분노를 표출했다. ... 특히 한 중진 의원은 ‘당에서 수도권에 전략공천하려 할 경우,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라며 ‘당이 낸 후보를 이기고 영남을 피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다른 참석자도 ‘사실상 영남권 중진들은 물러나라는 말 아니냐’며 ‘현실성 없고 성공할 수도 없는 전략을 총선 때 마다 끄집어내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검찰 출신으로 총선에 나서려고 신발 끈을 이미 맨 자들이 60명에 가깝고 대통령실 출신으로 공천을 바라는 자들만 해도 30명이 넘는 현실에서 가장 만만한 경상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경상도 전체 지역구가 65개 정도다. 지금 윤석열 사단에 속한 자들만 공천해도 문자 그대로 머리가 박 터진다. 그런 데다가 경상도 터줏대감들이 쉽사리 물러날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경상도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에 출마한다고 공식 선언한 자는 하태경밖에 없다. 하태경은 그 지역에서 3선이나 했다. 그래서 어느새 3선이 1차 물갈이 기준처럼 되어버린 현실이다. 현재 경상도 지역구에서 3선 이상을 한 의원은 16명이다. 여기에는 당대표 김기현과 원내대표 윤재옥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가타부타 말이 없다. 보나 마나 그 속은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내년 총선에 당선되면 윤석열 정부가 사망해도 여의도에서 살아남는다. 정권이 바뀌면 야당 하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자리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윤석열 정권의 ‘순장 조’에 속하지 않는다면 굳이 지금 낙선이 뻔한 험지나 사지로 자청해 갈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니 피바다 운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무리 경상도가 안중근 의사의 총탄으로 사망한 이토 히로부미의 귀신이라도 국민의힘 후보로 나오면 당선되는 곳이라고 해도, 그동안 지역구를 닦아 놓느라고 들인 돈과 정성이 얼만데 만만하게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설사 지역구를 포기한다고 해도 그만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례대표도 아니고 험지 더 나아가 사지에 나가서 ‘생쑈’를 하라고? 결국 죽으란 말이다. 그러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최후의 발악을 하기로 작정한 의원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공천권이라는 칼자루를 엄연히 대통령실에서 쥐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의원은 사실 많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은 무소불위 아닌가? 그러니 이제부터 거래를 터야 할 것이다. 일단 거래를 시작할 때는 크게 때리는 법이다. 그러니 빨갱이들이 주로 쓰는 용어인 ‘피바다’를 감히 입에 담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바다’는 두 가지가 있다. 북한제와 프랑스제가 있다.


‘피바다’는 북한이 즐겨 공연하는 이른바 ‘혁명가극’이다. 1971년 북한에서 초연된 ‘피바다’는 평범한 농부 아내였던 최순녀가 일제 강점기에 항일운동에 투신하는 독립투사가 되는 내용을 담은 북한의 대표적인 혁명가극이다. 최순녀는 지주의 강압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떠돌다가 남편도 일본군에 살해당하자, 세 자녀인 원남이, 갑순이, 을남이와 함께 상동마을에 정착하였다. 원남이와 갑순이는 항일유격대원 조동춘과 함께 야학을 조직하며 민족정신을 기른다. 그러다 최순녀는 조동춘의 지시로 마을 사람들과 힘을 모아 토벌 작전에 나선 일본군을 소탕한다. 그래서 격전지는 일본군의 피가 낭자한 피바다가 되어버린다.(참조: 민족문화백과대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1263) 이런 내용에 따른다면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를 짓밟는 데 앞잡이 노릇을 한 일본군의 피로 ‘피바다’를 만들어 버린다는 말이 되겠다.


북한제 ‘피바다’ 말고 프랑스제 ‘피바다’, 정확히는 피고랑도 있다. 프랑스 국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7절까지 이어지는 긴 노래이니 1절과 후렴구만 인용해 본다.


“1절: Allons enfants de la Patrie, Le jour de gloire est arrivé! Contre nous de la tyrannie, L'étendard sanglant est levé, (bis) Entendez-vous dans les campagnes Mugir ces féroces soldats? Ils viennent jusque dans vos bras Égorger vos fils, vos compagnes!

후렴: Aux armes, citoyens Formez vos bataillons Marchons, marchons! Qu'un sang impur Abreuve nos sillons!”


한글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1절: 가자, 조국의 자녀야, 영광의 날이 왔다! 우리에 맞서 저 폭군의 피 묻은 깃발이 솟았다. (반복) 들리는가, 저 들판에서 고함치는 포악한 적의 소리가? 그들이 턱밑까지 다가온다. 여러분 처자식의 목을 베러!

후렴:

무장하자, 시민들아, 대오를 갖추자, 전진, 전진! 저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여기서도 결국 적의 피로 ‘피바다’를 만들겠다는 말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 혁명군이 불렀다는 이 노래는 그 내용이 섬찟해서 여러 차례 가사를 수정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혁명 정신을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 시민의 불같은 분노에 맞서 그 어떤 정치가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혁명에 나선 농민의 밭고랑을 타고 흐르는 지주와 귀족이라는 적의 피로 ‘피바다’를 만들어야 속 시원한 법이니 말이다.


그렇다 기왕 싸울 거면 적의 피로 당을 적셔야지 내가 피 흘릴 이유가 조금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국민의힘 소속 경상도 지역구 다선 의원들의 건투를 빌어본다. 기왕 뽑은 칼이니 피 맛을 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과연 뼛속까지 보수, 더 나아가 수구인 국민의힘 의원 그것도 경상도에서 다선을 한 의원들이 그럴 강단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배팅을 하면서 지역구 포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흥정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투쟁하는 전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파일’도 이미 이른바 ‘검찰 캐비닛’에 고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게 될 것이다. ‘피바다’는 이미 여러 차례 여의도에 입성하여 ‘꿀맛’을 볼 대로 본 사람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다선 의원, 그것도 ‘꿀 보직’이나 다름없는 경상도 지역구에서 호의호식한 자들이 입에 올릴 단어가 아닌 것이다.


정치가 아무리 마타도어와 선전·선동의 난장판이 벌어지는 곳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금도와 금칙어는 있어야 하는데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 중진이 국민의힘에는 차고도 넘치는 모양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기는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말을 좀 가려서 하는 중진을 보고 싶다면 지나친 꿈일까? 원래 정치판이라는 곳이 더럽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알고 있지만 이제는 좀 자제했으면 좋겠다. 30% 남짓의 국민은 기꺼이 개·돼지가 되고자 한다지만 나머지 70% 가까이 되는 국민은 그래도 염치와 도리를 아는 정치인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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