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윤 대통령이 박정희 추도식에 간 이유는?

독재자의 말로를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by Francis Lee

이미 야권과 중도층은 물론 보수 세력과 경상도조차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내년 총선은 여권으로서는 파국이나 다름없는 일이 되고 만다. 이런 예측이 이미 나왔기에 윤 대통령은 집토끼 단속에만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오늘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으로서 박정희 추도식에 참석한 것이다. 그것도 박근혜와 단둘이서 나란히 정답게 걷는 장면을 연출하여 TK 민심에 구걸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윤석열 검사가 박근혜를 구속하고 감옥에 보내어 그 모진 고생을 하도록 만든 일이 얼마 안 되었는데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박정희 정신’으로 대한민국이 도약을 이루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하도 기가 차서 박정희 정신이 뭔가 하고 봤더니 ‘하면 된다.’ 정신이란다. 다음은 윤 대통령의 추도사 일부다.(인용: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31026000827)


“지금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일구어 놓으신 철강산업, 발전산업, 조선산업, 석유화학산업, 자동차산업, 반도체산업, 방위산업으로 그간 번영을 누려 왔다. ...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루어내신 바로 이 산업화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튼튼한 기반이 됐다. ...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정신은 우리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우리 국민에게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 넣어 주었다. ... 웅크리고 있는 우리 국민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서 우리 국민을 위대한 국민으로 단합시키셨다. ... 취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92개국 국가의 정상을 만나 경제협력을 논의했지만,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루어 내신 이 압축성장을 모두 부러워하고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 ... 저는 이분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공부하라, 그러면 귀국의 압축성장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늘 강조했다. ... 지금 세계적인 복합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박 대통령의 정신과 위업을 다시 새기고 이를 발판으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산업화의 위업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그 분의 혜안과 결단과 용기를 배워야 한다.”


거의 유튜브에 나온 수구 논객의 주장과 판에 박은 듯 같은 내용이다. 도대체 산업화와 민주화가 어찌 연결되는지 추가 설명을 듣고 싶지만, 난망한 일이다. 사실 박정희가 산업화를 추구하면서 즐겨 사용한 이른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빨갱이’ 독재 국가인 소련과 북한이 사용한 계획 경제를 이름만 살짝 바꾸어 벤치마킹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빨갱이 독재자의 방법을 사용한 박정희가 어찌 민주주의를 촉진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독재적인 경제개발을 밀어붙이면서, 저임금과 중노동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깡그리 무시하며,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그것도 모자라 종신 독재를 꿈꾼 자가 바로 박정희다. 박정희의 중공업 육성은 구체적으로는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뒤지고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 열등감에서 시작한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독재자의 길을 가면서 북한보다 못 사는 나라를 만들면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당시 남한은 1970년대 초반까지 북한보다 가난한 나라였다. 교육, 의료 사회복지에서 모두 북한에 밀렸다. 이는 미국 CIA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1972년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유신 헌법으로 종신 독재자의 길을 만들어 놓고도 경제적으로 북한의 독재자보다 뒤진 나라를 만드는 것은 아무리 착한 국민이라도 용서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경제개발에 그토록 집착한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것처럼 경제개발의 이익은 기형적인 재벌이 다 가져가 버렸고 그 재벌을 족쳐서 돈을 뜯어낸 것은 다름 아닌 박정희와 그 일당이었다. 이후락이 이와 관련하여 유명한 말을 했다. '떡을 주무르다 보면 손에 떡고물이 묻는 법'이라고 말이다. 그 떡고물 때문에 이후락은 팽 당하였지만 그 후손은 여전히 그 떡고물을 먹으며 호의호식하고 있다. 그 와중에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박정희의 죽음의 단초가 된 사건인 1979년 8월 9일부터 일어난 이른바 ‘YH 사태’도 근본적으로는 이른바 ‘공순이’들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조건을 참지 못하고 당시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 들어가 농성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노동자의 외침을 철저히 외면한 박정희 정권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새벽에 신민당 당사를 점령하고 김영삼 총재, 국회의원, 기자를 폭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순이’ 1명이 죽임을 당했다. 아마 박정희와 그 일당은 ‘그깟 공순이쯤’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적으로 박정희 독재 타도 운동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같은 해 10월 4일 국회에서 김영삼 총재가 제명당하자, 신민당 의원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했다. 박정희는 자기 권력으로 국회도 없애 버릴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자 마침내 10월 16일 ‘부마 민주항쟁’이 일어났다.


아무리 독재자라고 해도 경상도에서 박정희 타도 항쟁이 벌어진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일어났다. 1년 후에 일어난 광주 민주항쟁과 마찬가지로 독재자에 맞선 민주 시민의 저항이었다. 부마 민주항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른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반 시민의 경제적 곤궁이든, 독재 정치에 대한 염증이든 분명한 것은 박정희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저주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데모 안 하기로 가장 유명했던 다름 아닌 부산대학교의 학생들이 민주항쟁에 나선 것이다. 학생이 시작한 항쟁에 시민도 참여하면서 부산 부영극장 앞에는 7만 명의 시민이 모여 시위했다. 이 시위에는 대학생은 물론 회사원, 재수생, 고등학생, 상인, 노동자가 가세하였다. 문자 그대로 모든 국민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유신철폐”, “독재 타도”, “언론자유”, “김영삼 총재 제명 철회” 4개였다. 모두 독재자 박정희 타도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자 박정희는 반성은커녕 경찰은 물론 육군 특전사 2,000명을 투입했다. 그러나 성난 시민의 분노를 제압하지 못하여 오히려 이웃 마산으로 시위의 불길이 번져갔다. 마산은 부산보다 더 격렬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 당사, 파출소, 방송국이 불타고 파괴되었다. 이 시위에는 대학생, 고등학생,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이 참여하여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은 10월 20일 0시를 기해 마산시와 창원출장소에 위수령을 발동하였다. 그리고 육군과 경찰 그리고 해군을 시위 진압에 투입하기 위해 훈련에 차출했다. 그리고 마침내 부산과 마산에 육군 특전사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3공수특전여단, 해군 제1해병사단의 제7연대와 2연대가 계엄군으로 들어왔다. 부산에 있던 계엄사령관과 3공수 특전여단장, 전두환 국군 보안사령관이 이 모든 계획을 총지휘했다. 전두환은 이때의 경험으로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도 계획하고 더 용의주도하게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재자 박정희가 독재자 전두환을 키워준 꼴이다. 전두환은 박정희처럼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독재자가 되고 광주 민주항쟁도 제압하여 박정희를 찜 쪄먹는 희대의 악마가 되었는데 그 단초를 바로 박정희가 마련해 준 것이다.


이런 와중에 박정희가 유부녀와 여가수를 양쪽에 끼고 앉아 시바스 리갈을 마시다가 김재규의 총탄 두 발에 황천길을 간 날이 바로 오늘 10월 26일이다. 이날 술자리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이날 논의된 주요 안건이 바로 부마 민주항쟁 제압에 관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아양을 떨던 간신배 차지철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신민당이 됐건, 학생이 됐건 탱크로 밀어 캄보디아에서처럼 2, 3백만 명만 죽이면 조용해집니다.” 국민을 개·돼지쯤으로 여기는 작자는 그때나 이때나 늘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런 독설을 내뱉은 차지철 자신이 박정희와 더불어 바로 10월 26일 김재규의 총을 맞고 죽었다. 그렇게 희대의 독재자 박정희와 간신배 차지철이 총에 맞아 즉사한 날이 바로 오늘 10월 26일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날을 기념한다고? 그리고 그런 기념일에 다른 사람도 아닌 윤 대통령이 가서 기념사를 한다고? 게다가 윤 대통령은 해외 방문을 하면서 외국 국가 정상들에게 그런 최악의 독재자 박정희를 배우라고 권했단다. 이쯤 되면 정말 TK는 떼놓은 당상이 될 모양이다. 그러면서 이태원 1주기 추모식은 절대 안 간단다. 이유는 민주당이 관여하여 정치적 모임의 성격을 지닌 것이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윤 대통령은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국민을 ‘그깟 놀다 깔려 죽은 젊은 애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런데 박정희 추도식은 비정치적인 모임인가? 도대체 그 잣대를 알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의 ‘국민’은 ‘우향우’하고 있는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정치가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버리면 늘 '진짜' 국민을 우습게 알게 되는 것일까? 윤 대통령은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그런데 윤 대통령에게는 설마 박정희 향수에 푹 젖은 경상도, 특히 TK만 국민으로 보이나? 제발 이제라도 역사를 제대로 배우기를 바란다. 그것이 다 같이 사는 길이다. 설마 이러다 다 같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힘없는 국민, 평범한 시민을 우습게 본 독재자가 제대로 살아남은 경우는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이 명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3일 후에 있을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영령을 기리는 추모식에도 참석하여 국민이 TK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깨닫기를 바란다. 다 같이 죽기 싫으면 말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이 말은 국민이 하늘이라는 말이다. 공자는 일찍이 획죄어천(獲罪於天)이면 무소도야(無所禱也)라고 일갈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도 아무 소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이고 나발이고 간에 기도할 대상조차 없다는 말이다. 민심을 잃으면 손바닥에 왕(王) 자를 1,000개 새겨도, 그리고 천인공노할 도사가 아무리 간교한 술책을 부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진리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 진리가 윤 대통령을 참으로 자유롭게 하리라. 아멘, 할렐루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대정신이 없어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