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자기 말로는 집값이 올라서 안 찍었다 이렇게 얘기했지만, 속으로는 우리 집값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면서 찍은 사람이 엄청 많았어요. 그러니까 시대정신이 없는 거야. 시대정신이 없어지면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어요.
사회: 맞아요.
유시민: 시대정신이 어떤 것이 살아있었으면 절대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아요.
사회: 그럼 시대정신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안정됐다는 거예요? 아니면은?
유시민: 좋게 보면 안정된 거고, 나쁘게 보면 다 욕망에 사로잡힌 거죠. 옳고 그름이 아니고 나에게 이익이냐 손해냐로 다 간 거예요. 지금 교보문고나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세요. 1등부터 10등 안에 대부분이 다 재테크, 새 능력 개발 전부 그겁니다. 지금 사람들은 다 욕망에 함몰돼.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맞는 말로 들린다. 지금 한반도 하늘 위를 배회하는 ‘돈 마귀’에 빙의된 이들이 넘쳐나는 현상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처가다. 장모나 처남은 부동산 투기 의혹을 사고 있고, 하다못해 그의 아내조차 주식 부당 거래, 해외 명품 구매 등 모두 돈과 관련된 비리 의혹의 한가운데 서 있다. 장모는 이미 돈 미귀에 빙의되어 감옥에서 콩밥을 먹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나머지 고관대작의 반열에 올라선 자들도 하나 같이 부동산이든 증권이든 돈 마귀 빙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자들이 보여주는 공통된 현상은 죄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악다구니로 자기변명을 일삼다가 여론이 극도로 나빠져야 물에 빠진 개처럼 꼬리를 사타구니 사이에 집어넣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자들이 한반도에 시대정신이 사라져서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것인가?
사실 시대정신의 본래 의미는 유시민이 이해한 것과는 좀 다르다. 독일의 사상사에서 시대정신을 가장 자주 언급한 철학자는 헤겔이다. 헤겔은 그의 저서에서 Zeitgeist(시대정신), 또는 시대의 정신(Geist der Zeit)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헤겔이 시대정신은 특정 시대의 집단정신, 사고방식, 문화적 흐름을 말한다. 헤겔은 시대정신이 역사 전반에 걸쳐 진화하고 사회 변화를 반영한다고 믿었다. 헤겔은 자기 저서 <정신현상학>(Die Phänomenologie des Geistes)에서 인간 의식의 발달을 논하면서 정신(Geist)은 역사 전반에 걸쳐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의 창시자는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다. 헤르더는 1769년 출판된 논문 <비판적 숲 또는 관찰, 아름다움에 관련된 학문과 예술, 최신 문자 기준으로>(Kritische Wälder oder Betrachtungen, die Wissenschaft und Kunst des Schönen betreffend, nach Maßgabe neuerer Schriften)에서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하였다. 그러나 헤르더도 이미 라틴어로 존재한 개념인 시대정신(Genius saeculi)을 클로츠(Klotz)의 장소의 정신(Genius loci)과 대립하여 사용하면서 독일어로 번역한 것뿐이다. 한 마디로 장소의 정신은 기독교가 유럽 대륙이라는 ‘장소’를 2천 년 가까이 도덕적 잣대로 통제한 것을 의미한다. 그에 대비되는 시대정신은 전통적인 규범과 기준이 사라진 곳에서 작용하지만, 이 또한 결국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효과를 지닌다. 그리고 하이트만(Heitmann)에 따르면 “그것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규범적인 가정, 행동 기대, 도덕적 개념, 금기 및 신념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비순응주의적 사고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유시민이 독일 철학사를 제대로 공부 못했다고 탓할 생각은 없다.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이유가 이른바 ‘돈 마귀’에 빙의된 한국인이 많아서라는 그의 진단은 매우 정확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돈 마귀’가 현재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이다. 한국에 시대정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매우 더러운 종류의 것일 뿐이다. 물론 돈 자체가 더러운 것인지는 또 다른 논의의 대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돈 마귀 빙의’ 현상은 분명히 더러운 것이다. 대통령의 처가부터 시작하여 거의 대부분의 관료와 검찰 법원 기업 할 것 없이 온통 인격과 도리보다 돈을 앞세우는 현상이 범람하는 모습을 보면서 화를 내지 않는 국민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화를 내는 국민도 똑같이 ‘돈 마귀’라는 시대정신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들 기왕이면 강남의 50평대 이상의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람보르기니 수준은 아니어도 포르셰 정도는 굴리고 싶다. 애들은 당연히 대치동 학원으로 돌리고. 해외여행은 두어 달에 한 번씩. 동남아는 시시하니 유럽으로 날아가 파리에서 바게트와 프로마쥬를 먹고 밀라노에 가서 ‘명품’ 가방과 구두를 쓸어 담은 다음 스위스 별장에서 쉬고 오고 싶다. 돈만 있다면 말이다. 한국 상황에서 강남의 50평 아파트는 평균 40~50억 원이다. 뽀대 나는 포르셰 911은 깡통이 1억 7천만 원이다. 람보르기니는? 평범한 우르스가 깡통으로 2억 6천만 원이다. 해외여행? 4인 가족이 유럽을 다녀오면 열흘에 2천만 원 가까이 깨진다. 명품 쇼핑? 말을 말자. 에르메스 좀 돋보이는 것은 1억 원을 훌쩍 뛰어넘으니 말이다.
이런 판국에 강남에 살지만, 집이 50평이 안 되고, 차는 제네시스 GV80밖에 못 몰고, 해외여행도 3개월에 한 번씩밖에 못 가고, 애들 학원도 대치동에서 마구 굴리기에는 벅차다. 연봉이 2억 원도 안 되고 금수저도 아니다. 그러면 자신이 가난하다는 시대정신에 물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돈이 많아도 적어도 한국인은 다 ‘돈 마귀’에 들려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고 싶은 것은 많은 데 돈이 없다. 1천 만 원 남짓한 ‘비똥’을 사봐야 옆집 여자는 뭔 돈이 났는지 1억 3천만 원하는 ‘에르메스’를 ‘가배얍게’ 들고 나오지 않나? 눈이 뒤집히고 환장할 일이다. 그러니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뽀대 내고 싶은 맘이 어찌 안 들겠나?
그런데 현실은 처참하다. 한국 임금 근로자 절반 이상이 월급 300만 원도 안 된다. 월급 400만 원 이상이면 벌써 고소득자다. 한국의 부자 기준인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지닌 자의 숫자는 2021년 기준으로 42만 명이다. 전체 인구 가운데 0.82%다. 이들 가운데 70% 가까이는 수도권에 산다. 절반 가까이는 물론 서울 시민이다. 결국 나머지 99.2%의 가난한 사람은 대부분 지방에서 산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방에 살아도 눈은 한 없이 높아져서 너도나도 제네시스는 굴려야 하고 신혼부터 최소한 수억 원하는 30평대 아파트에서 시작해야 한다. 해외여행은 틈만 나면 다녀와야 하고. 애들 학원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한 달에 수백만 원씩하는 대치동으로 돌리지 않으면 죄인이 되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 돈 마귀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한다. 한국인은 [다 같이] 배고픈 것은 참아도 [남이 잘되어]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민족이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돈 마귀는 한반도의 시대정신이 되어 유유히 하늘 위를 배회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이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에도 미치고 있다. 북한의 최고 존엄과 가족은 하나같이 명품에 빠져 사니 말이다. 그 나머지 간부들도 별다를 리가 없다.
어쩌다 한반도는 이리도 알뜰하게 ‘돈 마귀’ 시대정신의 노예가 되었을까? 물론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어차피 돈 마귀의 세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유독 심하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도 외교적 성과를 반드시 돈으로 표기해야만 한다. 이번 중동 방문도 200억 달러로 환산되어야만 성과처럼 보인다. 손흥민 선수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주급 몇 위인지가 더 관심이 크다. 재난을 방지한 선행도 몇백억 비용 절감이라고 해야 안심이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옷도 한 벌에 1천만 원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리스펙트가 생긴다. 어느 배우가 살고 있는 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한 채에 150억 원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주눅이 든다. 다 ‘돈 마귀’에 놀아나는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조선시대에도 이랬나? 그렇지는 않다.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강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돈이 최고라는 의식이 확산하다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GDP 2,000달러를 돌파하면서 물신주의가 본격적으로 한반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은 IMF 사태였다. 각자도생과 돈이 최고라는 이데올로기가 고착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IMF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다 같이 돈에 미치고 결국 다 같이 불나방처럼 죽을 것처럼 ‘돈 마귀’라는 환영을 향해 정신없이 돌진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시대정신(Zeitgeist) 또는 뒤르켐(Emile Durkheim)이 말한 집단의식(collective representaions)이다.
마치 돈 마귀에 빙의된 것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너무 많은 현실에서 사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돈 마귀에 빙의된 듯이 좀비처럼 살든지 각성하여 버티며 인간성을 부여잡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그 어느 선택을 하든 기다리는 것은 고통뿐이다. 좀비 영화에서 잘 관찰할 수 있듯이 좀비로 사는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고 지옥이다. 그러나 모두가 좀비인 사회에서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이른바 ‘정상인’으로 사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래 고통을 당하나 저리 고통을 당하나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좀비가 되어 즐기겠다는 생각이 판치기 마련이다. 그런 쾌락주의와 물질주의라는 시대정신에 감염된 이들이 보이는 행색을 우리는 사실 매일 목격하지 않는가? 마약에 중독된 것은 비단 이선균만이 아니다. 권력, 섹스 성형, 명품에 중독된 자들이 이 나라를 흔들어 대는 현실에서 차라리 이선균은 검찰 캐비닛에 꽂아두었다가 상황에 따라 꺼내 드는 그 유명한 ‘검찰 파일’의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많은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만 보일 뿐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혁명밖에 없다. 그것이 맹자가 말한 역성혁명이든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한 정신 혁명이든 말이다. 그런데 과연 ‘돈 마귀’에 빙의된 국민이 대다수인 이 나라에 그런 혁명이 가능할까? 아니 이미 좀비화된 정신을 지닌 국민은 혁명이 뭔지도 모를 일 아닌가? 이러다 정말 다 죽는데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다. 나라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엄청난 파국이 올 것이니 말이다. 그땐 어찌하나? 여기서 뜬금 없이 백윤식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그땐 피X 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