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에 “'한의대 정원 줄여 의대생 늘리시죠' 한의협 공식 건의”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한의대 입학 정원 일부를 의대 정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의대 정원 늘리기의 대안으로 한의대를 활용해 달라는 것인데, 한의협이 이런 제안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2일 한의사협회 홍주의 회장은 보건복지부 주재로 열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지방의 한의대 중 원하는 곳을 의대로 전환하는 방안과 의대와 한의대를 모두 둔 대학의 한의대 정원 일부를 의대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 홍 회장은 지방 한의대 중 원하는 곳을 의대로 전환하는 방안과 관련해 ‘지방 한의대를 의대로 전환할 수 있게 해주면 지방의 사립 한의대 중 원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한의대 입학 정원이 상당히 되는 줄 알았더니 겨우 800명이다. 의대 3,058명에 비해 형편없는 규모다. 그것도 12개 대학 가운데 경희대와 가천대를 빼고는 전부 지방에 있다. 그런데 잘 알려졌다시피 양의사와 마찬가지로 한의사도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지방에는 양의사만이 아니라 한의사도 모자란다. 그런데 명색이 한의사 협회장이라는 자가 이따위 망발을 한다. 왜 줄이냐고? 당연히 돈 때문이다. 건강보험에서 지급된 진료비에서 한의원 비중은 2014년 4.2%에서 2022년 3.1%로 감소세를 보였다. 사람들이 한의원에 안 가는 것이다. 과거에는 보약 장사로 돈을 톡톡히 벌었지만 이제 사람들이 똑똑해져서 보약 안 먹는 추세다. 한의원은 주로 노인네들이 침 맞으러 갈 뿐이다. 그러니 수입이 줄 수밖에.
보통 장사하는 사람이 수입이 줄어들면 창의적인 생각을 해서 매출을 늘리고자 한다. 그래서 상품을 개선하고 마케팅 전략도 새로 짠다. 그리고 수익 창출을 위해 비용 절감 방책도 마련한다. 그러나 한의사의 두뇌에서 나오는 전략은 매우 간단하다. 나누어 먹을 파이가 줄었으니 나누어 먹자고 덤비는 사람의 숫자를 줄이면 된다는 것이다. 한의대에 들어갈 정도면 공부를 잘했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대책이라는 것이 이 모양이다. 왜 한국에서 머리 좋아서 법대, 의대, 한의대 들어가서 졸업하고 목에 힘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모두 한결같이 이렇게 돈 마귀에 빙의된 좀비 수준일까? 정말 모를 일이다.
보통 법률가나 의사가 되면 사회적 공동선에 이바지하겠다는 윤리적 다짐도 하기 마련이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법대에서는 사회 정의와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법 정신을 배운다. 그런데 그렇게 배운 것은 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다 잊어버리는 기묘한 머리를 지니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전국에 한의사는 23,946명이다. 의사 115,185명에 비해 매우 적다. 치과의사 29,419명, 약사 56,564명에 비해도 적다. 그런데 돈을 버는 것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의사 평균 연봉은 2억 3,100만 원, 치과의사는 1억 9,500만 원, 한의사는 1억 8,600만 원이다. 참고로 약사는 8,400만 원, 한약사는 4,900만 원, 간호사는 4,700만 원이다. 한국 근로자 평균 연봉 3,600만 원과 비교하면 턱 없이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욕심을 부리겠다는 것이다.
현재 의대 정원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지난 문재인 정부 때 비해서는 의사협회와 의대생이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다. 기득권자인 정치가와 의사들끼리 뭔가 다 통하는 것이 있나 보다. 참고로 국회의원은 연봉이 1억 5,000만 원이지만 각종 수당과 사무실 보좌관에 들어가는 비용이 5억 원에 달한다. 국회의원에 비하면 의사 연봉이 적어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에서 최고의 고소득을 누리는 자들끼리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있겠는가? 그저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일을 마무리하면 그만이지. 국민의 안녕과 건강? 그런 것은 이미 ‘개 사과’를 준 지 오랜데 무슨 상관이람.
도대체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이런 돈 마귀에 빙의된 의사들만 넘치게 된 것인가? 의사가 되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된 자들만 넘치는 나라에서 과연 국민 건강을 제대로 보장받을 가능성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이런 추론이 지나친 것이고 이 나라 어느 구석에는 진짜 의사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시골도 아니고 중소 도시의 보건의를 찾는 일이 이토록 힘든 나라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현재 한국의 모든 잘난 돈도 직업도 사람도 모조리 서울에 모여 있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사들 말대로 한국의 의사가 크게 모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불균형하게 분포된 의사들을 의료 시설과 인력이 모자라는 지역으로 재분배한다면 말이다. 현재 의대 정원을 1,000명을 늘리든 3,000명을 늘리든, 늘어난 의사가 모두 서울이나 수도권에 몰린다면 증원의 의미가 반감될 것은 뻔하다. 사실 의사만이 아니라 돈을 벌고 싶은 이들은 직업과 관계없이 모두 서울로 몰려든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늘기 마련이다.
그런데 과연 서울 의사가 지방 의사보다 돈을 더 벌까? 국세청의 <의료업 평균 사업소득 신고 현황>이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비수도권 의사가 돈을 연간 2,000만 원 더 번다. 서울 개업의는 연간 3억 3,300만 원을 버는 데 비해 비수도권 개업의는 3억 5,300만 원을 버는 것이다. (링크: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1025500088) 그런데도 전국 병의원 사업장 41,192개 가운데 54.7%는 수도권에 몰려있다. 이 가운데 68.4%인 15,419개가 가 서울에만 몰려있다. 결국 전국의 병원 10개 가운데 4개가 서울에 있다는 말이다. 2023년 10월 기준으로 서울 인구는 940만 명이다. 2023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는 5,135만 명이다. 서울에 18%의 인구가 몰려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병원은 그 2배 이상이 모여 있다.
결국 연봉 3억이 넘는 고소득 직업을 지닌 상황에서 2천만 원 정도는 충분히 포기하고 서울에서 살겠다는 것이다. 의사가 수도권 특히 서울에 몰리는 이유는 돈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돈보다는 서울이 지닌 특별한 의미다. 그래서 의사 정원을 늘려도 그 대부분은 다시 수도권에 몰릴 것이다. 1,000명을 증원해 봐야 지방으로 ‘기꺼이 내려갈’ 의사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의사 부족, 특히 OECD 회원국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의사 숫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기 위하여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은 문자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의대 정원을 늘려도 나중에 의사들이 기어코 서울, 적어도 수도권에 올라오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그러나 수도권에 인구의 50%가 몰려있는 것도 모자라 이제 수도권 전체를 서울로 만들려고 작정을 한 상황에서 ‘의사 문제’ 해결은 더욱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도 경상도에 절반이 모여 있다. 그래서 수도권과 경상도를 더하면 전국 인구의 75%가 편중되어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 두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인구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경제도 이미 형편없는 수준인데 더욱 악화되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심지어 경상도도 인구 감소와 경제 규모 축소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지역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수도의 세종시 이전 구상을 했지만 이제 서울을 확대하는 계획으로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그것도 강남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에서 의사 숫자만 늘리는 지극히 근시안적인 방법을 해결책으로 내세운 정부에 대해 누가 신뢰를 줄 수 있겠는가? 사실이 이런데도 지금 김포는 물론 나머지 서울 편입 후보로 거론되는 하남, 구리, 광명, 고양, 남양주와 같은 서울 주변의 군소 도시의 주민들은 난리가 났다. 자기 아파트값이 뛸 것이라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뻐하는 중이다. 이런 국민이 있으니 그 수준에 맞는 정부가 정권을 잡는 것 아니겠는가? 그저 내 아파트값만 뛴다면 나라가 망해도 그만이라는 좁아터진 이기주의에 물든 국민에게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 것인가? 정치는 원래 국가와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동선 증진을 위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돈 마귀, 특히 아파트값 마귀에 빙의된 이기주의에 눈이 멀어버린 국민이 넘치는 나라에서 그런 정치를 추구하는 정부가 들어설 것을 바랄 수는 도저히 없어 보인다. 오늘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어두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