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자멸하는 데 따로 힘쓸 필요가 없다.
한편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인 언론에서는 연일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요즘 나오는 말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투정이다. 과연 그럴까?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정중동의 행보를 계속 보이고 있다. 언론이 안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요즘 윤 대통령 부부와 국민의힘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골을 시전 중인데 굳이 공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측면도 많다. 이제는 하도 지쳐서 조·중·동도 진저리를 치고 있을 정도다. 축구 경기에서 상대방이 자살골을 계속 넣고 있는데 굳이 하프 라인을 넘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 민주당은 꽃놀이패가 남아돌아 걱정될 정도다. 김여사 리스크는 조·중·동도 진저리를 칠 수준이고 윤 대통령은 해외만 나가면 사달을 일으키니 말이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사분오열되어 핵분열 진전의 상태까지 와 있다. 누군가 희생을 해야 하는 데 아무도 그럴 생각이 없다. 당대표로 그동안 윤심을 대변해 온 김기현도 토사구팽의 현실에서 윤 대통령에게 대들었다. 그러니 나머지는 더 볼 것도 없는 일 아닌가? 천하의 국민의힘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런 와중에 비상대책위원회를 누가 이끄느냐로 내분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검찰 사단은 당연히 한동훈을 밀 심산이지만 그럴 경우 내년 총선에서 대패할 것이 뻔한 것을 아는 국민의힘의 기득권층이 호락호락 놔둘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의총에서 서로 고함지른 일이 언론에 다 새어 나온다. 김기현이 떠난 빈자리를 메꿀 생각조차 없다. 도대체 어느 정당이 당대표도 없이 총선을 치르나? 전쟁과 같은 비상시국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자리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통령 부부가 돌아가면서 저지르는 사달도 모자라 여당이라는 국민의힘 자체도 지진을 만난 듯 말마다 흔들거린다.
물론 민주당에서도 소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상민이 국민의힘의 환대를 기대하고 호기롭게 뛰쳐나갔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말았다. 한 수 더 떠서 원외인 이낙연은 능력도 없으면 창당 운운하며 당을 흔들어 보려 했다. 그러나 민주당 대다수의 의원은 물론 이른바 친낙 계보의 의원도 분명한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이낙연도 낙동강 오리알의 대열에 서는 모양새다. 도대체 이낙연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변희재의 말로는 조·중·동을 뒷배로 한 이른바 보수 대연합의 밑그림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짓이다. 이낙연은 오로지 전라도밖에 없는데 조·중·동에 놀아나서 이준석 신당과 태극기 부대의 대장인 전광훈과 힘을 합쳐 보수 대연합을 이룬다고? 지나가던 개가 다 웃을 일이다. 이런 식으로 민주당 내의 소동도 저절로 정리되니 이재명 대표나 민주당 지도부가 앞장설 이유가 없다.
사실 한국의 정치사는 늘 이 모양이었다. 강력한 양당제가 굳어진 한국에서 어느 한쪽이 권력을 잡으면 승자독식의 구조가 형성된다. 그러나 집중된 권력은 마치 고인 물과 같이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부패한 권력은 무능해지기 마련이다. 윤석열 정권은 그 부패가 상당히 빨리 왔다. 그런데 부패한 후에도 특별히 무능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마추어 정권으로 무능하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고백한 대로 대통령을 해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인제 와서 확인된 것은 그냥 무능하다는 사실뿐이다. 유능하다면 지금처럼 국민의 지지가 바닥으로 향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치적으로 외교를 가장 자랑하지만, 밖에 나갈 때마다 온갖 사달을 불러일으키더니 이번 네덜란드 방문에서는 아예 의전과 관련된 일로 네덜란드 주재 한국 대사가 초치되는 굴욕까지 맛보았다. 물론 정부는 관례라고 변명하지만, 외교적 방문과 관련해서 방문국 주재 대사가 초치되는 것은 외교적으로 매우 심각한 일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윤 대통령 부부가 통역이 없으면 완전한 꿀 먹은 벙어리만 되니 외교에서 매우 중요한 개인적인 스몰 토크를 통한 친분 쌓기 능력도 전혀 없다는 것을 열심히 시전하고 올뿐이다. 그리고 의전 실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어 이제 국민은 이 부부가 해외에 나갈 때마다 이번에는 무슨 실수를 할지 마음이 조마조마해질 뿐이다. 그저 외국 나가서 화려한 만찬장에서 먹고 마시는 장면만 남는 해외 방문이 민생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강력한 대통령제와 양당제가 굳어진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이런 사달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저 윤 대통령이 정신을 차리기만 하늘에 대고 기도할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실에서 목에 힘주는 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바른 조언을 하여 다음 해외 방문 때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1도 개선된 것이 없는 것을 보아 그런 노력도 안 하고 듣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저 생긴 대로 끝까지 밀고 갈 태세만 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국민의 뜻을 대표하겠다고 큰소리치는 국민의힘은 그저 그런 윤 대통령 부부의 언행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로만 일관할 뿐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그저 다음 총선의 공천 밖에는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국민은 관심 밖이고 오로지 공천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윤심’에만 온갖 정신을 팔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스스로 ‘국민 밉상’이 되는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 때문에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 반대급부를 고스란히 누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당도 현대 사회의 다층 구조를 이루고 있는 모든 국민의 바람을 다 충족해 줄 수 없다는 데 있다. 강력한 양당제의 정치판에서는 결국 이쪽 아니면 저쪽을 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 양쪽 모두에, 맘에 안 드는 점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국민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더구나 허울로 지방 자치제가 이루어져 있지만 중앙 정치가 지배하는 수직적 구조에서는 지역의 고유한 정치적 요구 사항을 제대로 충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양당 제도에서는 늘 소외되는 국민 계층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극우나 극좌도 양당 제도 안에 흡수되다 보니 당내의 급진 세력이나 강한 파벌이 정당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가 쉽다. 그런 경우 정당이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는 일은 더욱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양당제의 대안으로 다당제를 도입해야 하는 데 현재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양당의 중심 세력이 이를 허용할 리가 없다. 지금 권력을 주고받는 구조 안에 잘 적응되어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데, 그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다른 정치 세력과 파이를 나눈다고? 인간의 이기주의를 최대한 발휘하는 최적화된 정치가가 그런 선행을 할 리가 없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이 경상도 텃밭을 민주당이나 국민의당과 같은 군소 정당과 나누려고 하겠나?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전라도 텃밭을 국민의힘과 나누고 더 나아가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 정당과 나누어 가질 리가 만무한 일이다.
이런 강력한 양당제의 구조에서는 야당은 권력에 취한 여당이 무능을 시전 하며 부패하여 실수하기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여당의 무능과 부패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자연스럽게 야당을 선택하게 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야당이 여당이 되어 다시 무능과 부패를 시전 하면 다시 야당이었던 당이 다시 여당이 되면 그만이다. 그렇게 양당이 권력을 사이좋게 주고받으며 권력 놀이에 빠진 동안에 국민은 그저 양자택일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논리에 따라 직업적 정치가들이 의회를 장악해 버리면 국민의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 모리배들이 권력을 주고받는 악순환에서 빠지게 된다. 곧 그놈이 그놈인 세상이 되어 버려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이 증대하고 이러한 무관심이 증대하면 정치 모리배들의 배만 더 채우는 최악의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버리려면 개헌을 하여 다당제에 유리한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제도를 마련할 권력을 쥔 국회의원이 자발적으로 기득권을 내려놓으면서 법을 바꿀 리가 만무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국민의 의식 개혁을 이루어 정치 제도의 개혁을 이룰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사민당과 자민당과 더불어 연정을 이루어 집권 여당이 된 독일의 녹색당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처음에는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시작한 녹색당이 정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녹색당이 환경이라는 중요한 어젠다를 선점한 탁월한 식견도 있지만 기성정당에 대해 염증이 난 독일 국민이 신생 정당을 믿고 적극적으로 밀어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녹색당이 힘을 키울 수 있는 지방자치 제도가 독일에 완비되어 있었던 것도 큰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한국에는 기성정당이 놓친 어젠다를 선점하고 독일 녹색당처럼 긴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끌고 갈 능력과 인내심이 있는 시민운동단체도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정치권에 진입할 장벽이 너무 높아 정당으로 변모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국민의 정치의식이 매우 보수적이어서 신생 정당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은 것도 큰 장애 요소다. 그래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으로 이데올로기와 지연·혈연·학연을 잣대로 거의 관성적으로 당을 택하는 순환 구조에 빠져 안주하는 것이다.
이런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현재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느긋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한국의 정당은 상대 정당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당내에서 세력 다툼을 벌이는 데 더 심혈을 기울인다. 일단 당권을 잡으면 언젠가는 권력을 나누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권력 카르텔을 깨는 ‘용자’가 나와야만 이런 순환 구조가 무너질 것인데 과연 그가 언제 나올까? 현재로 봐서는 mission impossible인 일이다. 그래서 국민은 다음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것이 점점 확실해지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그저 잘해주기만을 기원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그런데 지금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너무 느긋해서 맘 한구석이 어쩐지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풍비박산이 된 정의당을 밀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갑자기 만들어진 금태섭 신당이나 앞으로 만든다는 이준석 이낙연의 신당을 밀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들의 지난 행적을 잘 알고 있는데 뭘 보고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결국 답답하지만 양대 정당을 놓고 하나마나 한 선택 아닌 선택을 해야만 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