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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Dec 17. 2023

국민의힘 ‘홍위병’의 몰락은 예정된 일 아니었나?

국민의 시민의식 개혁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권성동, 윤한홍보다 문제”…비대위 전환에 자취 감춘 與 초선들” <헤럴드경제>의 기사 제목이다. 한 마디로 ‘윤심’을 대변한다고 큰소리친 김기현이 동아줄인 줄로 알고 집단행동에 나서며 수시로 국민의힘 ‘원로’들을 이른바 ‘다구리 치던’ ‘초선 부대’가 일시에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마치 과거 중공의 문화혁명 때 마오쩌둥의 앞잡이가 되어 분수를 모르고 날뛰며 ‘원로’들 숙청에 앞장서다가 토사구팽 된 ‘홍위병’이 떠오른다.    

 

약 48명으로 뭉친 이른바 ‘초선 부대’는 그동안 당내 지지기반이 전혀 없던 윤 대통령을 위한 ‘홍위병’을 자처하면서 김기현을 ‘오야봉’으로 하여 정적의 숙청에 앞장서 왔다. 11개월 전 윤 대통령의 복심을 자처한 김기현이 당대표 경선에서 불리할 지경에 몰리자, 막강했던 나경원과 안철수를 몰아내기 위해 ‘연판장’까지 돌린 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런 사달로 옹위한 김기현 자신이 지역구 출마를 하지 말고 당대표로 살신성인하라는 ‘윤심’을 거역하고 윤 대통령의 ‘격노’도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당대표에서 물러나 버리자, 이들은 일순간에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버렸다. 중공의 문화혁명 때 일순간에 마오쩌둥에게서 버림받은 홍위병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라는 것이 늘 이 모양이다. 국민과 민의가 아니라 절대 권력자에게 기쁨을 주고 사랑받으려는 간신들이 모인 집단에서는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산주의 독재국가인 중공이나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아마 지금까지 국민의힘 안에서 신나게 ‘원로’들을 치고 나간 48명의 ‘초선 부대’는 그 빈자리가 자기들 차지가 될 것이라고 기뻐 날뛰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초선들이 궁극적으로 노린 것이 결국 또 다른 원로가 되기 위한 길 아니었나? 그런 식으로 철없이 날뛰며 원로들 숙청에 형안이 되다 보면 언젠가 토사구팽을 당하여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것은 여의도 바닥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인데 몰랐단 말인가?   

  

이제 ‘윤심’은 김기현 체제를 버리고 한동훈이 이끄는 비대위 체제를 생각하는 중으로 보인다. 그러면 국민의힘의 불나방들은 한동훈을 중심으로 또 다른 ‘홍위병’의 대오를 갖추게 될 것이다. 사령관이 누구든 ‘윤심’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회의원은 그런 국민의 마음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이다. 그런 대원칙을 무시하고 공천이라는 미끼를 물려고 정신없이 몰려다니다가 어느새 토사구팽으로 낙동강 오리알이 된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바로 이번 김기현의 항명과 사퇴 사달로 문자 그대로 멘붕이 온 ‘초선 부대’가 그런 상식적인 원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김기현이 물러나고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으로 들어와도 국민의힘에 특별한 변화가 일어날 리가 없다. 민심이 여권을 떠난 문제의 근본 원인이 국민의힘이 아니라 윤 대통령 부부인 것을 천하가 다 알고 있는데 국민의힘만 닦달한다고 무슨 묘수가 생길 리 만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동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언론이 한창 띄어주고 있지만, 김기현이 당대표 경선에 나설 때와 하나도 다름없는 여론몰이 수작에 불과하다. 수구 언론이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결국 승부를 가르는 것은 ‘실력’이다. 여의도 정치판에서 필요한 정치적 역량 말이다. 그런데 한동훈이 소년 급제한 천재일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지만 그런 소년 과거급제라는 딱지가 정치가에게 가장 필요한 협상과 타협, 관용과 포용이라는 덕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바로 그런 사실을 한동훈의 주군인 윤 대통령이 잘 보여주었고 한동훈 자신도 지금 문자 그대로 몸으로 시전 하는 중이다. 고시에 일찍 패스할 ‘머리’는 있지만 정치를 할 덕성은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면서 이른바 ‘조선 제일의 혀’라는 별명을 얻지 않았는가? 한동훈이 자신의 ‘쯩’과 지식만 믿고 오만방자하게 아무나 들이받는 버릇을 쉽게 고칠 리가 만무한 일이다.      


앞으로 한동훈 비대위 체제가 수립되면 어쩔 수 없이 ‘초선 부대’가 그 체제를 밭쳐줄 것이다. 48명이면 의원이 100명 남짓 되는 국민의힘에서 절반 정도가 뭉친 엄청난 세력이다. 그러나 그래봐야 우물 안 개구리다. 김기현이 국민의힘에서 이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당대표가 되었지만 지난 11개월 동안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허수아비가 되어 ‘윤심’을 국민의힘에 퍼 나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견마지로의 충성을 다했는데 결국 ‘격노’한 ‘윤심’을 거스르는 역적이 되어 쫓겨났다. 그런 사령관을 졸지에 잃어버린 ‘초선 부대’는 이제 토사구팽을 당할 처지에 몰려있다. 그런데 재승덕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한동훈이라는 새 줄을 잡을 수밖에 없는 ‘초선 부대’가 앞으로 그런 지경에 또 이르게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한동훈 체제가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여권에서 줄 갈아타기 신공을 벌이느라고 정신없다는 소식도 들린다. 먼저 조무래기 수구 언론이 변죽을 울리고 있다. 김기현의 항명 사태로 충격을 받아 아직 혼돈에 빠져 있는 국민의힘 안에서도 줄 갈아타기에 나선 자들의 면면이 벌써 보이기 시작한다. 오로지 권력만 추구하는 정치 바닥이 워낙 더러워 도덕은 물론 염치도 없는 곳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니 ‘초선 부대’라고 해서 큰 기대를 할 것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닳고 닳은 중진 다선도 아니고 이제 처음 여의도 물을 마셔본 자들이, 그것도 국민의힘의 절반 가까이 되는 자들이 오로지 권력에 아부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벌이고 좌충우돌하다가 새 줄을 갈아타는 신공만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억장이 무너질 뿐이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민의 힘을 제대로 대변한다고 큰소리치고 여의도에 입성한 자들이 국회의원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국민의 뜻과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 싸움에만 혈안이 되어 ‘공천’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듯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만 있다. 그런데도 국민은 학연·지연·혈연은 물론 이데올로기로 조장된 패거리 문화에 빠져 똑같은 수준의 인물을 뽑아 여의도에 보낸다. 그러고 나서는 그들이 권력 놀음에 빠져 민생을 등한시하면 손가락질하면서 감정 배설이나 해댄다.      


이런 악순환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인은 분명하다. 민도가 낮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뽑을 때 근대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원칙을 잣대로 하여 제대로 된 인물을 선출하여 여의도에 보내면 적어도 지금 목격하는 정치판의 난장판을 목격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와 양당제가 공고하게 뿌리내린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흑백논리만이 지배하기에 ‘올바른 선택’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가 다당제, 더 나아가 의원내각제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정치적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워 1등만 선택하는 한국적 정서에 정치도 예외일 수 없다. 더구나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전라도와 경상도로 극명하게 갈린 정치판에서 근대 시민의식인 다양성의 인정, 반대 의견의 포용, 정적과의 협치와 합의는 문자 그대로 mission impossible일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현대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의식을 반영하는 다당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볼 수 있듯이 극우와 극좌 정당이 공존하되 결국 중도 정당이 합치를 이루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력이 무소불위가 되지 못하게 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국회가 마련해서 법제화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을 정적에게만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고 칼자루를 쥔 살아있는 권력에도 적용할 수 있는 법치주의 정신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지금 서양의 대부분 선진국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그리고 국민의 말을 안 듣는 정치가는 언제든 내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강력한 대통령제와 양당제가 정착된 미국에서조차 대통령은 늘 언론과 여론에 시달린다. 지지율로 드러난 국민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배겨 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의 상원은 임기는 6년이지만 2년마다 3분의 1을, 그리고 하원은 2년마다 전체를 갈아치운다. 그래서 국민의 뜻이 신속하게 반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일단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독재를 저질러도 탄핵 말고는 제어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국회의원도 4년마다 뽑기에 그동안 무슨 짓을 저질러도 막을 방법이 없다. 더구나 여·야가 작당하고 권력을 주고받아도 막을 도리가 없다. 게다가 위에서 말한 대로 국민 자체가 진보와 보수만이 아니라 전라도 경상도로 갈라져 서로 철천지원수나 된 모양으로 죽자고 싸우는 판국이니 정치가들이 국민을 돌볼 필요 자체가 없다. 그저 그런 이데올로기 전쟁을 이용하여 권력만 잡으면 그만인 것이다. 결국 그런 정치가들을 제어해야 할 국민의 의식이 개혁되지 않으면 한국의 정치판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른바 하늘이 낸 ‘성군’이 강력한 대통령 제도를 선용한다면 나라가 좋아질 것은 분명하다. 곧 재능과 덕, 그리고 윤리적인 품성까지 갖춘 인물이 대통령, 더 나아가 국회의원이 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오로지 조직에만 충성한다는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도 나라가 이 모양인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대통령 개인의 자질과 상관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성군’을 흉내라도 내야 하는 제도의 정착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국회의원이 ‘홍위병’이 되어 권력 해바라기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일은 그저 꿈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국회의원에게 매서운 회초리를 휘두를 방법이 전혀 없는 현실이니 말이다.   

   

결국 미국의 대통령제와 양당제도 유럽의 의원내각제와 다당제도 이데올로기로 분열되어 정치의식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 못한 한국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문제는 제도만이 아니라 국민의 의식 수준이다. 정치의식만이 아니라 현대 민주사회의 시민의식의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정치판은 변함없이 ‘개판’이 될 것이고 국민은 그저 한탄만 하면서 감정 배설을 하며 진영이 갈린 국민은 서로 삿대질하면서 원수처럼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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