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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Dec 25. 2023

도대체 문재인의 꿈은 왜 무너졌을까?

진보의 환상은 무너진 지 오래다.

문재인 정권은 사실 그 출발부터 불안했다. 문재인의 능력 검증이 안 된 상태에서 박근혜의 몰락이라는 보수 진영 대참사의 반사이익으로 정권을 거저먹은 것에 불과하다. 대선 성적도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2017년 5월 1주 차에 실시된 대선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은 3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안철수 20%와 홍준표 16%를 합친 것보다 높았다. 그러나 대선 출구 조사에서 문재인은 41.4%로 홍준표 23.3% 안철수 21.3%를 합친 것보다 낮았다. 여기에 유승민의 7.1%를 합친다면 문재인의 완패였다. 보수 진영이 단일 후보를 냈다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와 마찬가지로 과반을 넘기는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말이다. 실제 결과는 더 참담했다. 문재인 41.08%, 홍준표 24.03%, 안철수 21.41%, 유승민 6.76%로 득표율로만 본다면 보수 진영의 압승이었다. 심상정의 6.17%를 더해도 진보 진영의 패배였던 것이 19대 대선이다.     


그러나 국민은 박근혜와 최순실의 사달에 경악했고 세월호 사태로 분노했다. 이 상황에서 국민이 나라를 뒤집어 놓아야겠다고 결심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뒤집어 문재인과 진보 진영에 권력을 넘겼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후 진보 진영은 권력을 다시 보수 진영에 헌납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이낙연과 수박들, 그리고 심상정의 진보 진영 분열 사달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실망한 국민의 분노였다. 윤석열을 선택한 국민의 대다수는 윤석열을 믿어서가 아니라 문재인에게 분노해서 그런 결단을 내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나중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을 후회했다.     


그래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런 식으로 윤석열을 선택한 이들을 이른바 개·돼지로 부르면서 사회 분열을 조장한다. 그러면서 사회 분열을 더욱 조장한 윤석열 정권에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 그러나 윤석열을 만든 것은 분명히 문재인 정권이다.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추천한 것은 조국이고 임명한 것은 문재인이었다. 그리고 윤석열에게 맞서 싸우고자 했던 조국과 추미애를 자른 것은 문재인이었다. 그리고 이재명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어도 이낙연과 마찬가지로 문재인은 이재명을 지지한 적이 없다. 이른바 문빠들은 수박과 마찬가지로 민주당, 더 나아가 진보 진영의 지분 싸움에만 몰두하여 적전 분열의 죄악을 저질렀다.    

 

그런 원죄를 지은 문재인을 중심으로 한 문빠는 이낙연을 중심으로 한 수박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윤석열의 실정을 ‘즐기고’ 있다. 결국 윤석열이 그 정도 능력밖에 안 되는 인물인 것을 알면서도 그가 권력의 정상에 오르도록 방치한 원죄를 감춘 채 말이다. 더구나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도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를 충분히 파악했었을 것인데도 오만 방자하게 윤석열쯤은 물리칠 수 있다고 오판하여 결국 자신의 멸족을 당한 것이다. 진보 진영의 이러한 ‘오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상할 정도로 진보 진영은 ‘도덕적 우월감’에 젖어 있다. 그래서 보수 진영이 아무리 세력을 차지해도 결국은 진보 진영이 다시 권력을 찾게 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오판에 더하여 문재인 정권 자체가 저지를 죄악이 결국 윤석열을 낳았다. 문재인 정권의 죄악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큰 죄악은 독일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인 ‘falsche Hoffnung’, 곧 헛된 희망, 더 나아가 가짜 희망을 국민에게 준 것이다.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 경제가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나라가 선진국에 들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무엇보다 문재인이 취임사에서 선언한 대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거짓 약속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부패와 국정 농단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은 문재인을 믿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문재인 정권 시절 홍보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탁현민은 여전히 ‘그때’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고, 국격이 섰다고 자랑하고 다닌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문재인 정권 3년 차부터 경제는 삐걱거렸고, 남북 관계는 다시 악화하였고, 외교적 성과는 허세만 늘었고 실질적 이익은 뚜렷한 것이 없었다.    

 

사실 코로나 사태만 아니었으면 문재인 정권도 박근혜 정권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원성으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면서 전화위복의 절호의 기회가 문재인 정권에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4년 차 때는 지지율이 최저 29%까지 떨어졌다. 5년 차 때는 코로나 사태 수습의 홍보 효과로 최저 32%까지 회복했다. 물론 이것은 역대 대통령들보다는 높은 수치이지만 윤석열을 후보로 내세운 보수 정권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사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큰 문제는 문재인 개인의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보다 계속 높은 현상이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이미 경제 파탄이 시작되고 남북 관계가 악화하여도 국민의 상당수는 문재인 정권이 퍼뜨린 ‘가짜 희망’에 취해 문재인에 대한 ‘개인숭배’가 지속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른바 ‘문빠’들의 충성도는 매우 강력해서 지금도 그들의 힘은 진보 진영에서 가장 강력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빠’의 충성심이 문재인의 생존에는 도움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진보 진영의 발전은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역사가 늘 보여준 대로 권력은 개인숭배와 결합되는 순간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개인은 살지만, 진영은 죽는 모순적 상황이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윤석열 정권이 문자 그대로 죽을 쑤고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죄악이 전혀 드러날 틈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이 의도적으로 윤석열을 키워서 후계자로 택한 것이 아닌지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어떤 정권이든 후계자가 자기보다 더 잘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더 잘할 경우 자기의 실정이 드러나고 심판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권보다 더 잘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윤석열 정권과 같은 수준의 사달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구나 이재명은 굴러들어 온 돌이다. 민주당의 기득권을 장악한 ‘문파’나 ‘수박’들과는 결이 다른 ‘독립군’이다. 그래서 민주당 기득권층에 나누어 줄 것도 없고 빛도 없다. 바로 그래서 민주당의 기득권층에게 상당히 부담되는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패한 후 이재명이 몰락의 길을 가기를 바라는 ‘문파’와 ‘수박’의 소망과는 다르게 이재명은 정말 질기게 버티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의 역학 구도는 친명과 비명으로 재정립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제 총선을 앞둔 이재명은 윤석열의 사달을 처리하는 일과 더불어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 세력의 ‘기득권층’을 몰아내는 일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과연 ‘가짜 희망’으로 국민을 기만한 이 민주당 기득권층을 몰아내고 ‘진짜’ 진보 세력이 민주당을 장악하여 진짜 희망을 국민이 가지도록 할 능력이 이재명에게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천운이 정할 것이다.     


사실 윤석열이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전적으로 천운이 작용한 것이다. 문재인이 그 자리에 올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사실 문재인은 윤석열만큼이나 권력의지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세력이 그들을 군주로 옹립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자들이 민심을 모른 척하면서부터 사달은 벌어지는 법이다. 더 큰 문제는 권력자가 권력을 잡고 나서 민심을 모른척해도 일단 팬덤을 형성하고 나면 권력자 개인의 편한 삶이 보장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현명한 국민만이 현명한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 뿐이다.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누가 나오든지 국민의 의식, 민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면 ‘개인숭배’에 몰두하는 팬덤 정치는 계속될 것이고 국민이 당해야 하는 고통도 이어질 것이다. 민도를 높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국민의 분별력, 또는 식별력을 높이는 것이다. 영어로 discernment라고 하는 이 식별은 개인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근대 시민 사회에서 사는 국민의 기본 소양이다. 아쉽게도 한국 교육 제도에서는 이런 것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다. 그저 기득권자들이 이미 세워놓은 프레임에 최적화되는 길만 강요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길을 초등학교 이전부터 가도록 강요당한다. 그래서 국·영·수를 가장 잘하는 아이들도 요사이는 모조리 의대만 가려고 한다. 그리고 왜 의대에 가려고 하느냐는 물음에 서슴지 않고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민도를 지닌 국민이 양성되는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무슨 정치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권이 들어설 때 국민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이 가짜로 판명되었고, 문재인 정권을 이은 윤석열 정권이 지금 벌이는 사달로 그런 희망조차 ‘날리면’ 과연 평정심을 ‘Yuji’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이제 누구에게 희망을 걸었다가 실망하는 일을 그만둘 때도 된 것 같다. 그래서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살길로 남아 있는 것이고. 그러나 과연 얼마나 더 각자도생 할 수 있을까? 답답한 날만 이어지는 때라서 인류에게 구원의 희망을 주러 왔다는 예수의 탄생을 마냥 기뻐만 할 수 없기에 더욱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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