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법’ 차단은 일도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은 한동훈이 너무 서둘러 나온 것이 ‘김건희 특검법’ 차단을 위해서라는 진단을 내린다. 물론 그럴 개연성은 크다. 그러나 한동훈이 ‘겨우’ 김건희 호위무사로 끝날 생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을까?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한동훈은 보수 진영이 강력히 미는 차기 대선 주자다. 오늘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한동훈이 이재명 대표를 크게 이기는 결과가 나왔다. 언론이 이제 한동훈을 밀기로 작정한 것이다. 과거 윤석열을 밀었던 것과 똑같은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한동훈이 김건희 일병 구하기에 나선다고? 그러고 나서 토사구팽 당한다고? 하늘에는 태양이 두 개 뜰 수가 없다고? 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윤 대통령 부부와 한동훈 트리오의 독특한 삼위일체 관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셋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다치면 다 다치게 되어 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은 대립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그래서 과거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했다는 ‘나를 밟고 가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한동훈의 출사표는 다음과 같다.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 ... 용기와 헌신으로 해내겠다. 국민의힘을 이기는 정당으로 이끌어가겠다.”(링크: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3/12/22/IZJYFCAMQFDL7EWC6RDSHCGN3U/) 그리고 마치 한동훈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언론은 일제히 한비어천가를 불러댄다. 그런데 그 비유가 낯간지러운 정도가 아니다. 구원투수만이 아니라 이순신, 심지어 메시아란다. 그 가운데 ‘이순신’은 국민의힘에서 상임고문을 하는 유흥수가 처음 언급했단다. 그 말을 거의 모든 언론이 따라서 쓰고 있다. 게다가 <머니투데이>는 한동훈을 ‘보수의 메시아’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이 신문에 따르면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와 여당을 구원할 임무를 부여받은’ 자다. 이것도 모자라는지 아예 한비어천가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읊어댄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수사력으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수많은 재계 총수를 구속시키며 '조선제일검'으로 불린 한 장관이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출처: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88161&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원래 한국의 언론이라는 것이 이 정도 수준인 것이 진즉 잘 알려진 사실이니 별로 놀라워할 것도 없을 법도 한데 늘 새롭다.
여기에 더해 ‘윤석열 사단 적장자’, ‘여당 소방수’, ‘여권의 히딩크’라는 비유까지 나왔다. 과연 내일 신문에는 어떤 참신한 비유가 나올지 궁금할 정도다. 과연 한동훈이 이런 기대를 감내할 그릇일까? 두고 볼 일이다.
한동훈은 이른바 ‘김건희 디올 가방’ 사달에 대해 이미 이른바 ‘함정 취재 죄’를 덮어씌우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김건희 특검법’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단정해 버렸다. 이로써 한동훈은 ‘김건희 호위무사’가 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충실히 만족시켰다. 사실 검찰은 다 알려진 대로 있는 죄도 안 묻고 없는 죄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관 아닌가? 김건희의 ‘디올 가방 수수죄’만이 아니라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죄’를 포함한 모든 죄의 무죄를 끌어내기 위해 단디 결심을 한 모양새다. 그러나 ‘김건희 특검법’은 국민의 70%가 찬성하고 있고 민주당도 총선에서 가장 확실한 카드로 삼을 작정이라서 한동훈의 생각만큼 호락호락 끝날 사달은 아닐 것이다. 이제 검사도 장관도 아닌 정치가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 한동훈은 정치 바닥에서 가장 기초적인 기술인 타협과 흥정의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이라는 최대의 카드를 민주당이 안 쓰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인데 과연 한동훈에게 무슨 히든카드가 있을까?
‘김건희 특검법’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것은 사실 국민의힘 공천 문제의 해결이다. 80여 명에 달하는 기존의 지역구 의원들을 다 몰아내고 ‘검찰 사단’으로 대체해야 하는 과제는 ‘김건희 특검법’ 차단보다 더 힘든 과제이다. 이미 김기현을 비롯한 일부 터줏대감이 노골적으로 ‘윤심’을 거스르는 상황에서 50살의 정치 초보자인 한동훈이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더해 한동훈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대선을 바라볼 때 최대의 적인 이재명 대표를 넘어서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지난번에 이재명 대표를 ‘보내버릴’ 수 있다고 내민 회심의 카드인 구속영장이 보기 좋게 기각되면서 스타일을 완전히 구긴 후라서 회심의 반격이 절실한 상황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재명 대표를 무너뜨릴 만한 카드를 제시하고 싶겠지만 이제 검사나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정치인이 된 처지에서 과거처럼 ‘함부로’ 카드를 내밀다가는 ‘한 방에 가는’ 수가 있으니, 이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재명 대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동훈 카드가 나올 것을 대비해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도상 훈련을 마쳤을 것이다.
이런 많은 문제를 놓고 볼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일단 민주당을 분열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현재 이낙연이 벌이고 있는 분탕질을 정리하고 단일대오를 갖춘다면 ‘조선 제일의 혀’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낙연의 분탕질은 찻잔 속의 소동으로 마무리되고 있기에 더 이상 그에게 기대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결국 검찰에 있을 때부터 즐겨 사용해 와서 너무나 익숙한 ‘검찰 캐비닛 파일’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법밖에 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물을 마신 의원 가운데 걸면 안 걸릴 사람이 없는 데다 없는 죄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검찰이니 가장 만만한 카드가 될 것이다. 이낙연이 신당을 꾸미도록 해서 민주당의 분열을 도모해 보는 일은 실패로 돌아간 이상 친명 비명의 분열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니 민주당 의원을 대상으로 ‘검찰 캐비닛 파일’을 이용한 각개 격파식의 공격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황으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야권이 200석을 넘길 가능성도 상당히 있어 보이니 일단 민주당의 몫을 최대한 줄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설사 야권이 200석을 넘기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와도 야권이 분열되는 플랜 B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 수립되면 윤 대통령 부부만이 아니라 한동훈도 공멸하게 되는 것이 뻔하니 한동훈 자신도 이러한 ‘사태’는 사생결단으로 막을 것이 뻔하다.
물론 아무리 윤석열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넘치고 정권 심판의 정서가 대세라고 해도 경상도·강남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30% 남짓한 상황에서 야권이 200석을 넘기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전술 전략을 짜야하는 것이 정치판이니 방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국민의힘이 100석 이하를 얻는 ‘참극’이 벌어진다면 일단 ‘검찰 사단’이 국민의힘을 완전히 접수하는 플랜B라도 완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대로 기존의 터줏대감을 몰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단 지난번에 관광버스 92대로 4,200명의 아줌마부대를 모아 세 과시까지 하다가 한 방에 날아간 장제원에게 쓴 술수를 나머지 저항군에게도 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도 결국은 ‘검찰 캐비닛 파일’이 결정적 무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동훈이 언제까지 ‘검찰 캐비닛 파일’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을까? 물론 세간에 잘 알려진 대로 철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법검이니 법을 칼처럼 휘두르면 많은 의원이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정치판에서는 죽어도 죽지 않는 정치가들이 넘쳐나는 곳이니 좀비가 되어 ‘덤비는’ 의원의 숫자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무리 한동훈의 능력이 뛰어나도 떼로 모여 이른바 ‘다구리 치는’ 세력을 쉽게 제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한동훈이 마주한 문자 그대로 산적한 문제를 볼 때 그 스스로 말한 대로 그는 지금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의 상황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루홈런을 친들 다음 타자가 이어서 점수를 더 내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윤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이후 검사 색깔을 조금도 빼지 못하고 여전히 좌충우돌하면서 좀처럼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이 한동훈에게도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과연 그에게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과 우려와 질시를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한동훈이 하필 자신이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의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스스로 말한 것이 오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결국 한 방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 것인데 과연 얼마나 뭐를 보여줄지 관객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어디 한번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