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동훈이 오천만의 언어가 아니라 처칠의 언어를 쓴다고?

지적 허영의 시전이 아니라 말버릇 고치기가 먼저다.

by Francis Lee

한동훈은 법무장관 때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두고 포부를 밝히면서 여의도의 언어가 아니라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의 언어를 쓰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오늘 취임 인사를 하면서 한동훈이 쓴 것은 외국인 그것도 영국 총리 처칠의 언어였다. 인용하거나 이용하거나 처칠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저작권 문제가 크게 일 것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사용법이 매우 어설프기 그지없다.


지난번에는 출장 가는 공항에서 기자들 앞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기 한글 번역본 껍질을 벗기고 영어로 음역 된 제목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더니 이번에는 처칠의 언어를 흉내 내기까지 하는 것을 보니 영어 콤플렉스가 있다고 여길 지경이다.


한동훈은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이니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늘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엘리트가 지녀야 할 자질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에서 말한 한동훈의 행동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도훈에게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다. 한국의 엘리트는 전통적으로 외세 의존적 의식이 강했다. 신라시대에 시작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내려온 사대주의가 그 뿌리를 대한민국에도 내리고 있다. 현재 윤석열 정권도 외교를 미·일 의존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같은 4강에 둘러싸인 약소국은 강대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 나라의 엘리트가 사대주의적인 사고를 지닌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엘리트가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 없는 나라의 미래는 비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외국 여행 자주 하고 유학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한국을 이른바 ‘객관적’으로 볼 기회를 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한국에 살 때는 느끼지 못한 한국 사회의 이런저런 단점이 잘 보이게 된다.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단점을 찾아내다 보면 사대주의적 사유가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조선시대 당시 세계 최강의 국가였던 중국과 직접 조공 관계를 맺고 심지어 삼전도의 치를 당하면서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와 주종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하면서 국가적 자존심을 완전히 구기게 되었다. 한족이 세운 중국만 믿으면 될 줄 알았는데 오랑캐에 신하의 예를 갖추며 생존해야 했던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하면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아시아 국가에 그것도 왜놈으로 경멸하던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면서 한국 엘리트의 자존심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완용이 자식에게 유언한 대로 비록 일본말을 전혀 못 하는 조선의 엘리트인 자신이 일본에 붙어 호의호식한 방식대로 아들은 미국에 붙어 호의호식해야 한다는 패배주의적 엘리트 의식의 전형이 등장하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엘리트도 별다르지 않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대화 중에 툭툭 던지고, 해외여행을 자주 하고, 해외의 귀족과 정치적 거물과 밥을 먹고 사진 찍고, 여기에 더해 주로 유럽에서 생산하는 명품을 온몸에 휘감고 다니며 우쭐해하는 천민 엘리트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한국적 패배주의 엘리트의 계보를 그대로 이은 한동훈이 처칠의 말을 인용하고 각색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할 수 있었다면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에 나오는 명구를 인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리스어를 잘 모르는 한동훈으로서는 그런 모험을 할 리가 없다. 주군인 윤 대통령과 달리 한동훈에게는 그런 모험 정신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인정한 대로 영어를 잘한다고 하니 잘하는 것만 계속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처칠일까?


처칠은 영국의 61대와 63대 총리를 역임한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그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국민의 인기를 얻은 것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그는 권좌에서 쫓겨났다. 민심을 잃은 것이다. 사실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도움만 바라고 미군의 지휘에 모든 것을 걸었던 무능한 정치가였다. 게다가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였고 식민지 흑인을 무자비하게 학대하고 착취한 비인간적인 인물이었다. 사실 처칠은 미국과 소련이 독일을 물리치는 것에 편승해 승리를 거저 얻어먹은 자에 불과하다. 국제 정치에서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물에 묻어가는 영악한 2인자로서 줄타기 신공을 벌인 덕분이다. 망명정부를 세워 나치 독일에 실질적으로 저항하고 투쟁한 프랑스의 드골보다 오히려 승리에 이바지한 바가 없다. 드골은 나중에 미국과 대립하면서 독자노선을 걸었지만, 처칠의 영국은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전통은 이제 굳어져서 영국은 비록 유럽에 속하지만, 대륙의 유럽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나라로 이른바 앵글로·색슨의 구호로 유럽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앞잡이가 되었다. 그런 전통을 바로 처칠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에 지나칠 정도로 유명해진 것은 전적으로 노벨 문학상을 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책 때문이다.


그런 처칠에게도 글솜씨와 더불어 한 가지 재주가 있었으니 바로 말이다. 문자 그대로 ‘영국 제일의 혀’로 명성을 날린 처칠의 연설은 많은 어록을 남기게 되었다. 원래 행동하지 않는 겁쟁이들이 말은 잘하는 법 아닌가?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피와 고통과 눈물과 땀’이다.


이 말은 1940년 수상으로 취임한 직후 하원에서 첫 연설을 할 때 나온 것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We are in the preliminary stage of one of the greatest battles in history. ... That we are in action at many points - in Norway and in Holland -, that we have to be prepared in the Mediterranean. That the air battle is continuous, and that many preparations have to be made here at home.

I would say to the House as I said to those who have joined this government: "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 We have before us an ordeal of the most grievous kind. We have before us many, many long months of struggle and of suffering.

You ask, what is our policy? I will say: It is to wage war, by sea, land and air, with all our might and with all the strength that God can give us; to wage war against a monstrous tyranny, never surpassed in the dark and lamentable catalogue of human crime. That is our policy. You ask, what is our aim? I can answer in one word: Victory. Victory at all costs - Victory in spite of all terror - Victory, however long and hard the road may be, for without victory there is no survival.”


그런데 이 피와 고통과 눈물과 땀이라는 말은 원래 이탈리아의 영웅 가리발디가 1849년 혁명군 앞에서 한 연설에 나온 것이다. 이것을 처칠이 인용하여 각색한 것이다. 처칠은 원래 가리발디의 전기를 쓸 계획이 있었기에 그의 자료를 모르고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런 인용과 각색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동훈이 인용한 처칠의 문장은 위의 것보다는 덜 알려진 것이다. 원래 뽀대를 내기 위해서는 너무 알려진 말은 인용하지 않는 법이다. 명품 가방도 한국에서 ‘루이뷔통’은 개나 소나 다 메고 다니니 샤넬이나 디올 그리고 내친김에 에르메스를 선호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닌가? 다른 서민 여자가 들고 다니는 가방을 나도 들고 다니면 어쩐지 저렴해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처칠의 말이라도 남이 다 아는 것을 또 말하면 저렴해 보인다는 강박관념을 한동훈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한동훈의 거품은 곧 꺼질 것이 분명하다. 일성부터 꼬리를 가랑이 사이에 끼고 퇴로 만들기의 자세를 시전 했다는 것을 다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동훈에게 기대를 건 이유는 제2의 노태우까지는 아니어도 제 목소리를 내고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국민의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2년도 안 되어 대표가 두 명씩이나 잘리고 비상대책위원회가 세 번이나 수립되는 과정에서도 누구하나라도 일어나서 '이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국민의힘을 한동훈이 결코 정상으로 만들 수 있는 그릇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버렸다.


처칠의 말을 쓰는 한동훈의 정신세계가 이미 다 드러나 버린 현실에서 한동훈에게 남은 카드는 무엇일까? 처칠의 저서를 다시 탐독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니, 지난번 출장 때 자랑스레 들고나간 <펠로폰네소스 전쟁기>를 탐독해야 하나? 그 책은 어차피 ‘뽀대’용이었으니 읽을 턱이 없다. 굳이 권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권하고 싶다. 사람들이 한동훈을 ‘조선 제일의 혀’라고 일컫게 된 이유가 그가 말 잘해서가 전혀 아니다. 한동훈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을 잘 관찰해 보면 매우 흥분을 잘하고,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즉석에서 받아치기에 급급하다. 그것을 말 잘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싸움하지 않는다. 대화와 논쟁을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여 내 의견을 따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설득에는 논리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치밀한 논리보다는 감화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한동훈에게는 그런 감화력이 전혀 없다. 마치 20대 혈기방장한 청년처럼 치고받을 생각만 하는 치기 어린 자존심만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김건희 리스크’와 같은 핵심적인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갑자기 ‘어리바리’를 시전 한다.


한동훈처럼 처칠과 그 밖에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이제 50을 넘겼으면 ‘지천명’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이 내게 준 운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에 맞갖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동훈의 모습을 보면 상처를 입은 개처럼 작은 자극에도 부르르 떨면서 짖어댄다. 그것은 지천명인 50대의 남자가 보여줄 모습이 아니다. 무엇보다 남자는 특히 정치가는 말을 삼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말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남자들은 지금 대부분 유튜브에 몰려 있다. 한동훈이 이런 식으로 계속 말을 함부로 한다면 그 무리에 끼어드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인간성까지 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말버릇은 타고나는 것이니 고치기 힘든 법 아닌가? 그럼에도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이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정치에 뜻을 두기 시작했고 총선 정도는 가볍게 넘기고 대선을 바라보겠다는 뜻을 보였다면 그에 맞갖게 말버릇부터 고쳐야 하니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동훈의 얼굴이 천재 관상인 '원숭이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