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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Dec 28. 2023

개 유모차가 더 많이 팔리는 사회가 되었다고?

사람보다 짐승을 더 믿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한국에서 아기용 유모차보다 애완동물 유모차가 더 많이 팔렸다는 뉴스가 보인다. 당연한 추세다. 그리고 이는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한국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앞으로 한 가정에 사람 아기보다 애완동물의 숫자가 더 많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제는 개나 고양이를 ‘아기야~’라고 부르는 사람도 더 많아지는 추세를 막을 도리가 없다.      


이런 추세를 장사꾼들이 놓칠 리가 없다. 애완동물 용품 시장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다. 이미 시장이 포화 단계에 들어간 서양 선진국보다는 수입은 늘고 출생률은 감소하는 한국·중국· 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가 새로운 표적 시장이 되고 있다.      


왜 애완동물이 자녀를 대신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론 인간과 달리 애완동물은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의 사이에도 얼마든지 배신이 발생한다. 특히 돈을 놓고 부모 자식이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는 갈등이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에 비해 애완동물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과 애완동물의 관계는 늘 일방적이다. 주인은 주인이고 동물은 동물로 남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내 새끼’였다가 독립된 개체가 되어 나를 배신한다. 특히 아들은 아내가 생기는 순간 남이 되고 만다. 딸도 결혼하고 나면 부모의 재산을 탐낸다. 사랑은 원래 내리사랑만 있지 치사랑은 없는 법이라면서 무한한 지원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자식이다. 맞는 말이지만 부모도 사람인데 언제까지 무한 지원과 희생을 할 수 있겠는가? 특히 한국·중국·일본과 같은 유교적 가족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모는 더 큰 희생을 강요받고 스스로도 당연시한다. 서양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으로 결국 이 프레임에 갇힌 부모는 번아웃 신드롬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부모도 위로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평범한 인간인데 부모 자식의 관계에서는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당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부모의 무조건적 ‘사랑’은 아시아 특히 한국·중국·일본과 같은 유교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나라에서 병리 현상으로 드러난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이러한 유교적 부모·자식의 관계가 사회와 가정을 유지하는 프레임으로 제대로 작동했다. 부모가 늙어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자식이 그 일을 이어받아 부모를 봉양하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부모도 대가족 제도 안에서 ‘할 일’은 계속 있기에 ‘무능하고 무기력한 노인’ 취급을 받지 않았다. 또한 농업의 특성상 노인들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농사 노하우는 자식 세대가 결코 지닐 수 없는 귀중한 생존 정보였기에 노인들의 효용은 아무리 늙어도 유지된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그런 노인의 지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 되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는 나이에 이른 노인은 사회적 은퇴를 하기 전에 축적한 재산으로 여생을 버티는 프레임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문제는 그런 노인의 자녀들이 부모 세대와 같이 경제적 독립을 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한계 상황에 몰린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재산을 놓고 부모와 자식이 대립하고 갈등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원래 서양 선진국에서는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가정과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도 같이 전개되었다. 곧 대가족주의에서 벗어나 핵가족이 사회의 기본 구성 요소가 되면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큰 가족 구성원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는 부품들이 아니라 인격체인 개인이 모여 가족을 구성하는 식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양 선진국에서 부모는 자녀의 장래를 간섭하지 않고 자녀도 성인이 되면 독립해서 자연스럽게 부모 집을 떠나게 되는 관행이 정착되었다.      


그러나 한국·중국·일본과 같이 유교적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나라에서는 여전히 부모가 자식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훌륭한 부모의 덕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이미 농경 사회에서 현대 산업사회로 이전이 완성된 사회에서 여전히 농업을 바탕으로 한 유교 문화적 가정 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이러한 유교적 가정 구조는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 것이기에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부모는 개인주의를 자신의 삶을 돌보기 위해 자식에 대한 희생을 기피하는 부도덕한 이기주의로 여기는 경향을 여전히 보이고 있다. 근본적으로 서양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모순적 사회 구조 안에서 애완동물은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에게 좋은 벤틸레이션의 기능을 한다. 자식은 무한한 책임을 요구하는 부담스러운 존재인 데 비해 애완동물은 적절한 관심과 돌봄을 제공하면 정서적 만족을 보상하는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완동물은 무한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양식과 잠자리만 보장해 주면 대부분의 애완동물은 주인에게, 그것도 오로지 주인에게만 배타적으로 평생 충성한다. 마치 자녀가 부모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7살까지만 성장한 채 철저히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과 같은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대들거나 배신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대부분의 애완동물은 주인보다 수명이 짧다. 그리고 정 힘들어지면 파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최소한의 책임으로 배신의 두려움 없이 기르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니 애완동물이야말로 일거양득이다.     


그러나 자본가가 누구인가? 이러한 애완동물 시장의 가능성을 본 자본가들은 이 시장에서 이익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 애완동물 주인들의 호주머니를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전략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이 바닥에도 예외 없이 명품이 등장한다. 개 유모차의 경우 100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것이 부지기수다. 출생아 수 급감으로 매출이 줄어들던 유아용품 회사들을 기사회생하게 만들어 준 분야가 바로 애완동물 용품 시장이다. 2030년 예상 매출액이 1조 2천억 달러에 이르는 큰 시장이다. 결국 엄청난 비용이 들고 ‘배신’의 가능성이 큰 자녀 기르기를 포기하고 로우 코스트 하이 리턴을 노리고 애완동물을 자식 삼아 살려고 하던 사람들은 자식 기르기에 못지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애완용품 구매는 멈추지 않고 마침내 개 유모차 구매가 인간 유모차 구매를 능가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을 놓고 굳이 저출산율을 연관시킬 필요는 없다. 소득이 늘면, 특히 여성의 사회 활동이 증가하여 여성의 소득이 늘면 임신·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다. 아이를 낳으면 인생을 최소한 20년 저당 잡혀 살면서 모든 에너지, 자원, 돈을 자식에게 빼앗기면서 ‘내 인생’이 사라지는 데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겠는가? 과거 농경문화 시대에는 자식이 노후 보장의 담보가 되었지만, 고도로 산업화한 한국 사회에서 그런 기대는 이미 접은 지 오래다. 그래서 출산율 이전에 혼인율도 오래전부터 줄어들어 왔다. 출산율이 계속 하강 곡선을 타게 된 데에는 혼인이 줄어든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2013년에 32만 명의 신혼부부가 탄생했으나 2022년에는 20만 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2013년 합계출산율이 1.19였던 것이 2022년에는 0.78로 떨어졌다. 혼인율과 합계출산율이 비슷하게 추락하는 중이다. 내년에는 합계출산율이 0.7 이하로 내려갈 것이 분명하고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기르고 싶지는 않지만, 모성 본능은 그대로 남아 있기에 대리 만족을 할 대상으로 애완동물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특히 한국 사회에서 ‘개 엄마’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애는 안 낳고 개만 기른다고 탓할 필요는 전혀 없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도 내가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내돈내산이니 개를 위해 재산을 다 탕진한다고 해도 내 ‘자유’ 아닌가? 다만 자본주의의 덫에 걸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은 든다. 애완동물 용품 시장이 203년쯤 되면 서양의 경우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그러면 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은 자본가들은 당연히 새 시장을 개척할 것이다. 과거에 망할 뻔한 명품 회사들이 한국·중국·일본의 수요 폭발로 기사회생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제 한국·중국·일본의 애완동물 용품 시장이 폭발적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 포기하고도 모성 본능을 충족하기 위해 선택한 애완동물이지만 그 또한 돈과 노동력 착취의 수단이 되어 버리고 만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나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을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평안감사도 자기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데 어쭙잖은 충고를 할 필요가 있나? 그저 자기 맘대로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이 인생인데 너무 오지랖을 떨 필요는 없나 보다. 더구나 사람보다 개가 훨씬 더 믿음직한 세상이니 더욱 그렇지 않은가? 개는 사람과 달리 절대 배신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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