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시원치 않으면 각본을 다시 짜는 법이다.
<조선일보>의 양상훈이 “한동훈 약진이 與 성공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로 노골적인 한동훈 딴죽걸기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링크: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4/01/04/3ZMPRVWJVRCSLEQ46773K36GAA/) 그러나 행간을 읽어보면 한동훈의 인기가 거품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얼마 전부터 조·중·동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김건희 리스크’ 극복을 윤 대통령에게 강요하는 내용이다. 결국 한동훈이 윤 대통령의 아바타로서 아무리 애써봐야 조연밖에 안 된다는 진실을 양상훈도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한동훈을 구름 위로 올려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누굴 내세울 수 있겠는가? 홍준표, 유승민, 이준석, 심지어 오세훈마저 한 자릿수 지지를 받는 현실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국민의힘에서 몰아내려고 작심한 386, 486, 586세대 아닌가? 이제 막 50살을 넘은 한동훈이 차별성을 보일 것이 나이밖에 없는 현실에서 다른 대안이 없다.
양상훈은 ‘김건희 리스크’만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포퓰리즘도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전략이 ‘신작로를 두고 굳이 샛길로 가는 행위’라고 헐뜯어 버린다. 조·중·동이 작당하고 밀었던 윤석열 후보의 ‘품질’이 이 정도일 줄은 사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많이 당황하고 있다. 그러나 양상훈 스스로 고백한 대로 대책이 없다. 툭하면 ‘격노’만 되풀이하고 해외에 나가기만 하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어버리는 윤 대통령의 언행은 이제 조·중·동도 어쩔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으니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면 양상훈이 바라는 ‘상황의 반전’은 물 건너간 일이 되고 국민의힘,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윤 대통령이 간절히 바라는 ‘한동훈 대타’ 작전은 실패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만이 아니라 보수 세력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음에도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에 직접 맞서는 것을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물론 지난 대선 때 국민이 다 목격한 대로 일단 윤 대통령은 논쟁에서 이재명 대표에 상대가 안 된다. 그렇다면 한동훈이 이재명 대표의 상대가 될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는 어림도 없다. 이재명 대표와 한동훈이 걸어온 인생길은 차원이 다르다. 한동훈이 꽃길만 걷는 동안 이대명 대표는 문자 그대로 사회의 바닥을 기었다. 인생에서 바닥을 기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상에 오를 자격이 없는 법이다. 꽃길만 걷다가 남이 차려준 상에 숟가락만 얹은 사람은 밥 먹을 자격이 사실 없기 때문이다. 지금 윤 대통령이 그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윤 대통령이 보여준 것 때문에 국민이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건희 리스크’가 해결된다고 해도 ‘윤 대통령 리스크’는 그대로 남는다. ‘김건희 리스크’는 사회적 반향은 크지만, 사실 곁가지에 불과한 사달이다. 몸통은 다름 아닌 윤 대통령일 뿐이다.
그래서 양상훈도 윤 대통령이 신년 회견이라도 해서 상황 반전의 기회로 삼으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이어져 온 사달이 그 정도로 무마될 리는 없다는 사실을 양상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건희 리스크’와 더불어 윤 대통령의 실질적인 ‘사과’를 천하의 <조선일보> 주필인 양상훈이 간청을 할 정도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노릇이다.
현재 이런 식으로 ‘간청’을 하는 것은 <조선일보>만이 아니다. 조·중·동이 합창하듯 윤 대통령에게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mission impossible이다. ‘김건희 리스크’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 같아서 일단 열리면 무한한 사건이 터지고 결국 윤석열 정권의 붕괴에 이르러야만 멈출 수 있는 폭탄이다. 한동훈이 바라는 대로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정도의 일이라면 윤 대통령도 벌써 이 카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특검법에 나와 있는 대로 일단 특검이 시작되면 김건희라는 한 인간의 비리만이 아니라 그에 연관된 모든 사람이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나올 것이다. 그 사람에는 윤 대통령 자신도 들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윤 대통령 자신이야말로 ‘김건희 리스크’의 전체 윤곽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 폭탄을 터트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다. 조·중·동 정도의 정보력을 지닌 언론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윤 대통령을 몰아가는 모양새가 매우 의심쩍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윤 대통령을 조·중·동이 세웠으니 조·중·동이 몰아내고 결국 post-윤석열을 도모하겠다는 생각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주연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각본을 다시 짜겠다는 소리로 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주연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조연을 키워 주연으로 만들 방법밖에 없는데 과연 한동훈이 그럴 자질과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4월 총선이 국민의힘의 대패로 마무리되고 탄핵 정국이 안 오더라도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본격적인 레임덕이 시작되면 윤석열 정권은 실질적으로 죽은 정권이 되어버린다. 이런 식으로 판을 이끌고 가느니 차라리 새판을 짜는 것이 보수 진영에서도 다 나은 일이다. 그런데 그 새판의 주인공을 과연 한동훈으로 내세울 수 있을까? 물론 여기에는 한동훈의 자질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가 앞으로 보여주는 ‘능력’에 따라 조·중·동의 언론 선동의 효과가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임명권자들 들이받으면서 몸집을 키웠다. 그래서 국민의힘이 이미 있는 홍준표를 포기하고 그를 후보로 옹위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과연 한동훈이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 스스로 말한 대로 9회만 2아웃 2스트라이크의 상황에서 핀치 히터나 원 포인트 릴리프 투수로 등장했다. 결국 ‘김건희 리스크’ 차단에 전력을 기울이고 나서 자진해서 토사구팽을 당하겠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양상훈도 알기에 한동훈을 조연으로 남겨두고 싶은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post-윤석열과 post-한동훈이 분명히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주연 조연을 다 갈아치우고 새 각본으로 새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조·중·동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을 ‘옹립’한 저력을 이번에도 발휘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말이다. 누구든 조·중·동이 밀면 된다는 이 자신감이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이번에도 먹힐까?
이런 와중에 이재명 대표가 정치 테러를 당하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조·중·동만이 아니라 전체 보수 언론이 이 사태의 여파를 최소화하느라고 온갖 가짜뉴스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이재명 대표가 총선까지 상당한 시간과 국민의 동정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유시민이 일찍이 말한 대로 한국 정치판에서 국민의 동정을 받는다는 것은, 특히 기득권 세력에 속하지 않는 이재명 같은 정치인이 국민의 동정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큰 정치적 자산이 된다. 그것을 조·중·동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호사가들은 이제 이재명 대표의 천운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재명 대표의 지난 삶의 행적을 보면 천운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흔적이 쉽게 발견된다. 경상도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그 당시 빈민촌이었던 성남으로 올라와서 ‘공돌이’ 생활을 하고 검정고시로 중등 과정을 다 마치고 중앙대 법대에 진학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다음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사회운동가로 활동한 그의 삶의 궤적 곳곳에서 만난을 극복한 전사의 역사가 보이는 것이다. 서열, 인맥, 학맥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이 자리에 온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의 선배인 노무현 대통령과는 결이 다르지만 기득권 세력이 지독하게 미워하는 ‘시민 영웅’의 이미지는 공유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이른바 ‘노무현의 기적’을 재현하게 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재명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녔던 ‘전사의 기질’이 없다. 그 대신 이재명 대표는 ‘바닥을 긴’ 사람으로서 더 높이 올라가 보려는 ‘권력 의지’가 있다. 그 의지가 지금의 이재명 대표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나 대권을 잡는 데는 이재명 대표가 지닌 ‘행정 능력’과 더불어 그런 권력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부 호사가들이 말하는 ‘천운’이 필요하다. 윤석열 후보가 0.73%p 차이로 신승할 때 작용했던 그 천운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번 피습에서 만약에 칼이 1cm만 더 왼쪽으로 갔어도 이재명 대표의 목숨은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번에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건도 천운이 작용한 것으로밖에 안 보일 정도의 드라마였다. 그런데 이번의 피습 사건은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임팩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번 피습 사태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재판이 사실상 총선 이후로 미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국민의 동정’이라는 변수가 이제 독립 변수로 작용할 것이 거의 분명해졌다. 적어도 총선 결과는 이제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눈치 빠른 이낙연도 이를 감지하고 사실상 창당 포기 선언 모드에 들어간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보다 더 정치 아마추어인 한동훈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깔끔한 외모와 스타일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민주당과 많은 진보 유튜버가 바라는 대로 200석 이상을 확보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정도의 수 읽기는 조·중·동도 이미 끝냈을 것이다. 그래서 조연 한동훈은 물론 주연 윤 대통령까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상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권력이었던 박근혜를 버렸듯이 이번에 과연 윤 대통령을 조·중·동이 버릴 수 있을까? 그런데 그 뒤에 과연 조·중·동이 누구를 밀까? 그리고 이번에도 성공할까? 일단 모든 질문의 답은 총선 뒤에나 확실히 나올 것으로 보인다. 천운은 결국 천심이 움직이는 것이고 천심은 민심이니 국민의 선택이 주연 조연의 운명만이 아니라 조·중·동,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이재명 대표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과연 누가 천운을 잡을지는 모르지만 누가 되든 다음에는 이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권이 들어서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