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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Jan 08. 2024

한반도에 결국 ‘신후삼국시대’가 도래하나?

한반도의 분열을 가장 기뻐하는 자가 누구인지 잘 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을 주적으로 간주한다는 사인을 계속 보냈다. 북한이 ‘빨갱이’ 나라이고 홍범도 장군도 ‘빨갱이’와 관련이 있으니, 북한을 주적으로 삼아야 하는 군인을 양성하는 육사에 그분의 동상도 치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북한도 남한을 더 이상 동포로 여기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한반도에서 오래 살아온 민족을 단군을 공통 조상으로 한 단일한 한민족이라고 불러왔다. 물론 단군은 신화적 존재이다. 그런데 많은 민족 국가는 이런 신화적 존재를 내세워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 있다. 가까운 중국의 삼황오제 신화나 일본의 진무 천황 신화에서 단군 신화와 유사한 프레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존재는 단순히 사회적 통합만이 아니라 민족의식을 일깨워 한 나라의 국력 신장을 위한 단일 대오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사실 단군 신화는 고려 시대에 저술된 <삼국유사>나 <제왕운기>에 처음 나온 개념으로 원래 삼국시대에는 없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로 이루어진 삼국시대는 통일신라가 수립된 676년 이전에 약 500년 동안 존재한 시기다. 이후 수립된 통일신라 때 고구려 지역의 대부분은 발해로 넘어갔고 고구려의 나머지 부분과 백제의 영토가 신라에 흡수되었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17계급으로 나뉜 관직은 사회적 신분으로 이어졌다. 실질적 권력은 성골과 진골만이 5등위까지 장악하고 나머지 6두품부터 현령까지는 17등위까지 세분된 관리직을 나누어 가졌다. 고구려와 백제에 속한 자들이 고위 관리가 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500년 가까이 때로는 서로 원수지간이었던 고구려·백제·신라가 통일되었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단일민족의식을 가질 리가 만무한 일이다. 통일신라는 분명히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한 승전국이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 유민에게 신라 백성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대접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일민족이 되려면 정치적 구조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심한 문화적 이질성, 특히 언어가 전혀 다른 고구려·백제·신라가 한 나라가 되었다고 해서 언어가 통일되고 문화의 동질화, 사회의 통합이 이루어질 리가 없는 일이다. 지금도 전라도 사투리만 쓰는 사람과 경상도 사투리만 쓰는 사람이 대화를 제대로 할 수 없는데 1400년 전에는 어땠을지 뻔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신라 내부에서조차 신라인은 지금의 경주인 서라벌에 사는 사람만 의미했다. 이와 관련된 <한겨레21>에 “통일신라 시대에 ‘우리’란”이라는 제목으로 박노자가 쓴 글을 인용해 본다.(링크: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3692.html)     


“6세기 초·중반, 고대국가로서의 도약을 막 시작하는 신라에서 ‘신라인’이란 일차적으로 서라벌, 즉 경주의 6부에 속하는 ‘왕경인’(王京人)을 의미했다. 냉수비(冷水碑·503년)나 봉평비(鳳坪碑·524년) 등 당시 금석문들을 보면 왕경 귀족의 이름 앞에 꼭 그가 소속한 왕경의 부 이름이 붙여져 있는가 하면, 왕경 귀족의 공론(共論)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지방 실력자들은 왕경인과 달리 지방민에게만 수여됐던 외위(外位)를 지니고 있었다. 중앙귀족으로 받아들여져 결국 김유신(595~673)이라는 위인을 낳은 옛 가야(김해) 왕족과 같은 다소의 예외도 있었지만, 7세기 중반 이전까지 신라의 ‘서울 사람’들은 ‘시골 출신’들을 동질적인 존재로 쳐주지 않았다. 예를 들어 554년의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523~554 재위)의 목을 쳐 큰 전공을 세운 도도(都刀)라는 이는 고간(高干)이라는 외위를 지녔던 삼년산군(현 충북 보은군) 출신의 지방 유력자였지만, 에 따르면 신라 군인들이 그를 ‘천한 노복’이라고 불렀다. 왕경인과 철저히 구별됐던 지방민들은, 비록 정치적으로 신라에 복속됐다 해도 과연 문화나 사회의식 차원에서 왕경인과 어느 정도의 공통 정체성을 가졌을까? 물론 신라라는 국가 속에서 오랫동안 살수록 왕경인 집단의 지배적 문화에 조금씩 동화돼갔겠지만, 신라의 영토 안에서 산다고 해서 다 똑같은 신라인이 아니었다는 걸 기억해두어야 한다.”     


신라인들끼리도 차별한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말로 한다면 서울 사람이 시골 사람을 차별한 것이다. 그러니 고구려인과 백제인을 차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민족적 동질감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는 바로 통일신라가 붕괴하면서 나타난 후삼국 시대다. 신라 권력자의 힘이 약해지자 바로 등장한 후삼국 시대는 통일신라가 민족 통합은 고사하고 사회 통합에도 실패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증거다.     


후삼국 시대가 끝나고 고려가 등장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202년에는 경주에서 신라를 부흥하자는 반란이 일어났고 1236년에는 담양에서 백제를 부흥하겠다는 반란이 일어났다. 과거 제도가 정착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지역 차별이 희석되었다. 그러나 중앙과 지방의 차별, 양반과 나머지 계급의 차별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입신양명의 유일한 길이었던 과거 응시 자격은 양반에게만 주어졌다. 물론 무과나 잡과는 일반 백성도 응시할 수 있었지만, 계급적 차별이 확고했기에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조선시대에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한 신분 상승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오늘날 대한민국만큼 지역색이 적어지게 되고 단일 민족의식이 생긴 것은 전적으로 외세의 침입 덕분이었다. 일본과 중국의 침략을 당하면서 공동 피해자라는 의식이 역설적으로 민족의식을 키워주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방차별에 대한 민란이 발생했지만, 워낙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완성한 조선에서 나라를 무너뜨리는 역성혁명을 내세운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실 민란은 통일신라, 고려, 조선 모두 왕조의 말기에 발생했다. 그리고 이 민란은 모두 지배층의 착취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린 백성이 일으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당시만 해도 사회적 갈등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지배층과 그러한 학정을 더 이상 참지 못한 비지배층의 대립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적 갈등은 소수이기는 하지만 극단주의에 빠진 백성이 자발적으로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런 대립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극단주의에 무관한 ‘동료 시민’도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 가게 만들고 있다. 그런 대립 구조를 이용하는 ‘사악한 지역주의’ 정치가들은 거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호사를 누려왔다.     


이제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립에 이어 남북한이 서로를 주적으로 선언하고 전쟁을 불사하는 단계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이른바 ‘신후삼국시대’로 부를만할 것 같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남한 5천만 명, 북한 2천5백만 명의 ‘동료 시민’이 정권욕에 눈이 어두운 권력자의 농간에 놀아나 결국 전쟁의 화마에 시달릴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고구려·백제·신라가 단일민족이 아니었으니 그러려니 해야 하나?      


사실 유럽의 역사를 보아도 단일 국가의 형태만 갖추었을 뿐 위기 때마다 내전을 벌이고 갈라진 경우가 숱하다. 소련 연방이 붕괴한 1990년 이후 1918년부터 존재해 왔던 체코슬로바키아는 1992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열되었다. 1946년 수립된 유고슬라비아도 결국 1991년 내전을 통해 5개 국가로 갈가리 찢어졌다. 이렇게 분열된 이유는 종족주의와 종교였다. 다른 종족과 다른 종교를 가진 자와 함께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한반도도 다시 1,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새로운 후삼국으로 분열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렇게 세 나라로 쪼개져 살면 맘이 편해질까? 남북한을 합쳐서 8천만 명도 안 되는 데, 그래서 통일이 되어도 일본보다 훨씬 적은 내수 시장이 만들어져 더욱 단합하여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인데 남북한이 서로 갈라지자고 난리치고 남한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갈라지자고 난리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판국에 국민 통합에 앞장서야 할 정치가들은 패거리 심리를 부추기는데 만 혈안이 되어 있고. 그래서 국민 모두 서로서로 적이 되도록 만들어 도대체 누굴 믿고 살아야 하는지 모를 암담한 상황을 조장하고 있다. ‘동료 시민’ 사이에 그러한 분열이 지속되어야 권력자들에 맞설 생각조차 못 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다 다 같이 죽을 것이 뻔한데도 오늘도 ‘동료 시민’은 서로를 죽일 듯이 물어뜯고만 있다. <오징어게임>에 나온 ‘물주’들처럼 그것을 바라보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즐거워할 권력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동료 시민’의 의식을 개혁하여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정신을 차리도록 하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동료 시민’의 ‘적’은 전라도도 아니고 경상도도 아니고, 빨갱이도 아니고 토착 왜구도 아니라 바로 권력에 눈이 어두워 ‘동료 시민’을 한낱 권력의 도구로 여기는 사악한 권력자라는 사실을 알려줄 방법이 없다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서로 원수같이 여기는 어른들이야 그렇다 쳐도 아무 잘못 없이 분열과 전쟁의 참상으로 끌려들어 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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