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Lee Nov 08. 2023

젤렌스키는 전쟁을 핑계로 이승만 같은 독재자가 되는가?

국민이 선택한 독재자의 최후가 보이기 시작한다.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젤렌스키가 내년 3월로 예정된 대선을 취소하겠단다. 물론 현재 그는 계엄령을 선포한 권력자로 얼마든지 대선을 취소할 수 있다. 헌법? 그런 것에는 개 사과나 던지면 그만이지. 법적으로 계엄령이 선포되면 모든 법을 초월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박정희와 전두환이 그런 짓을 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박정희는 부하의 총탄 두 발에 피를 뿌리면서 사망했고 전두환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아 물론 그전에 전쟁을 핑계로 영구 집권을 꿈꾸었던 이승만도 있다. 그 이승만은 ‘너나 가는’ 하와이로 가서 죽었다. 이제 젤렌스키의 차례가 된 것 같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젤렌스키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절차로 대통령이 되었다. 5년만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오르면 다 그 모양이 되나 보다.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면 재선이 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젤렌스키는 푸틴에게 밀리고 있다. 전쟁 상황이 교착 상태로 알려졌지만, 독일 신문 <차이트>의 보도에 따르면 아브디이브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에 밀리고 있다.(링크: https://www.zeit.de/politik/ausland/karte-ukraine-krieg-russland-frontverlauf-truppenbewegungen) 서방의 관심과 지원이 줄어들고 우크라이나 군대가 감소하면서 방어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군인이 현저히 줄어들고 서방의 지원도 옛날 같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에서 이길 가망이 점점 줄어드는 데도 젤렌스키는 여전히 꿈만 꾸고 있다. 이미 승산 없는 게임에 매달리는 지도자만큼 추한 인간도 없는 법이다. 과거에 이승만이 바로 그랬다. 중국과 북한은 물론 미국마저 전쟁에 염증을 내고 그만두고 싶어 하는 데도 오로지 이승만 혼자 끝까지 전쟁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이유는 오로지 하나 자신의 권력 유지였다. 젤렌스키와 마찬가지로 계엄령이 유지되는 것과 자신의 권력 유지를 싱크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일찍 전쟁을 끝내서 남한과 북한의 피해를 줄일 기회를 날려버리고 3년이나 전쟁을 질질 끌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미국이 남한을 배제한 정전협정을 맺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이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졌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 될 뻔했다.     


그런데 젤렌스키가 이승만과 똑같은 고집을 부리고 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아예 법에 나온 대선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이 살아있다면 형님이라고 모실만한 수준이다. 도대체 함량이 안 되는 정치가들이 권력을 잡으면 다 이 모양이 되어버리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2년 가까이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젤렌스키가 보여준 것은 무능과 외세 의존이다. 큰소리치며 시작한 전쟁은 지지부진하고 경제는 파탄이 났고 국민은 절반 이상이 전쟁으로 죽거나 다치고 살아 있는 이들도 수천만 명이 뿌리를 잃어버렸다. 푸틴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지만 무능할 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젤렌스키 같은 지도자가 있기에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이제 우크라이나 국민도 그런 무능한 젤렌스키에게 질렸다. 다음 대선에서 젤렌스키가 재선 될 가능성은 이제 없다. 더 유능한 새로운 지도자가 우크라이나에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한 정부를 유지하여 자신의 권력을 계속 보존할 생각밖에 없는 젤렌스키는 그런 민심을 거부하고자 한다. 민심을 거부하는 정치 지도자의 말로가 어땠는지는 역사가 충분히 보여주었는데도 일단 권력에 눈이 멀어버리면 다 젤렌스키처럼 되어버린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보여준 사달을 지금 바로 젤렌스키가 보여주려고 한다. 불쌍한 우크라이나 국민. 그들의 삶이 어떨지 불을 보듯 환하다. 이제 내년 3월이 지나면 우크라이나는 문자 그대로 내우외환에 시달릴 것이다. 곪을 대로 곪은 우크라이나 정치가 결국은 파국에 이를 것이 뻔하다.  

   

역사적으로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을 핑계로 독재자가 되고자 한 정치가들은 넘쳐난다. 이승만은 전쟁이 한창 중인 1952년 7월 4일 부산에 피난하고 있는 때 이른바 ‘발췌개헌’을 통해 사실상 불법적인 재선에 성공한다. 그 이전에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했는데 이를 직선제로 바꾼 것이다. 1950년 5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한 달 전 치른 총선에서 이승만의 여당은 대패했다. 그래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재선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서 전쟁을 빌미로 직선제로 전환하여 국민을 현혹하여 재선을 획책한 것이다. 


그러나 1952년 1월 18일 곧 1·4 후퇴로 서울을 내주지 보름도 안 되는 시점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제출했으나 찬성 19 반대 143으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미 77세를 넘긴 이승만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정신병에 가까웠다. 그래서 원외 자유당은 물론 외부의 세력을 동원하여 관제 데모를 전개하여 국회에 압력을 넣고 원내 자유당과 다른 정당이 연합하여 재적의원 3분의 2보다 1명 초과한 122명의 연서로 4월 17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다시 제출했다. 그리고 이승만이 이를 다시 수정하여 5월 14일 정부 개헌안을 또다시 제출하였다. 그리고 5월 15일부터 이승만이 사주하여 동원된 민족자결단, 백골단과 같은 폭력조직이 주도한 관제 데모대가 국회의원 소환과 국회해산을 요구하는 소동을 벌이며 피난민이 넘치는 부산 거리를 누볐다. 게다가 당시 국회의장인 신익희의 집까지 포위했다. 그래도 이승만은 이를 방관했다. 


그것도 모자라 5월 25일에는 경상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에 공비 토벌을 명목으로 계엄령을 선포해 버렸다. 한마디로 이승만이 권력에 눈이 어두워 미쳐버린 것이다. 전쟁에서 국민을 살릴 생각은 안 하고 오로지 자기 권력 유지에만 골몰한 것이다. 게다가 5월 26일에는 50여 명의 국회의원이 탄 통근버스를 헌병대가 강제 연행한 것도 모자라 10명의 국회의원을 ‘빨갱이 딱지’를 붙여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각 도의회를 사주하여 국회해산 결의안을 통과시켜 정부에 압력을 넣는 쇼를 부렸다. 그러자 결국 국회는 손을 들고 정·부통령 직선제, 양원제, 국회의 국무위원 불신임제를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발췌개헌 안’을 제출하였다. 그제야 이승만은 구속된 10명의 국회의원을 석방하여 투표에 참여하게 만들고 피신했던 국회의원도 경찰이 찾아내어 감금시켜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1952년 7월 4일 밤에 기습적으로 열린 국회 회의에서 공개적인 기립표결로 찬성 163, 기권 3표로 발췌개헌 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새 헌법에 따라 8월 5일 실시된 직선제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재선 되었다. 전쟁 중에 실질적 후보가 이승만밖에 없는 대선에서 땅 짚고 헤엄친 결과다. 그러나 발췌개헌은 ①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의 원칙에 어긋나고, ② 공고되지 않은 개헌안이 의결되었고, ③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고, ④ 의결이 강제되었다는 점에서 위헌이었다.(링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1623) 그런데 이승만은 이것도 모자라 1954년에 대통령 3선 제한을 없애고 영구 집권을 하기 위해 그 유명한 ‘4사 5입’의 방법으로 다시 개헌하는 비리까지 저질렀다. 정치 깡패를 동원하는 공작까지 벌인 끝에 억지로 개헌안을 국회에 의안으로 부쳤으나 투표 결과가 재적인원 203명, 재석 인원 202명,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로 헌법 개정에 필요한 136표에 1표가 부족하여 부결되었다. 


그러자 이승만은 꼬붕들을 동원하여 억지를 부렸다. 곧 재적인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인데, 영점 이하의 숫자는 1인이 되지 못하여 인격으로 취급할 수 없으므로 사사오입하면 135이고, 따라서 의결 정족수는 135이기 때문에 헌법 개정안은 가결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논리로 11월 29일 번복 가결동의안을 상정, 재석 인원 125명 가운데 123명의 동의로 통과시켰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이승만은 영구 집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1960년 4.19 의거로 권좌에서 쫓겨나서 제2의 조국인 하와이로 도망가 거기서 죽었다. 이런 악마가 바로 이승만이었다. 


사실 이승만은 상해임시정부 시절에 이미 '임시대통령'으로 있었으나 무능하여 탄핵을 당해 쫓겨났다. 그러니 이승만은 생애에서 두 번 쫓겨난 한국 유일의 독재자인 셈이다. 이승만의 무능과 정치적 암투로 임시정부 헌법을 위배하는 범법자였다. 1925년 3월 23일 당시 임시 정부는 이승만을 탄핵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유를 밝혔다.


"이승만은 외교를 구실로 하여 직무지를 마음대로 떠나 있은 지 5년에, 바다 멀리 한쪽에 혼자 떨어져 있으면서 난국 수습과 대업의 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허황된 사실을 마음대로 지어내 퍼뜨려 정부의 위신을 손상하고 민심을 분산시킴은 물론이어니와, 정부의 행정을 저해하고 국고 수입을 방해하였고 의정원의 신성을 모독하고 공결(公決)을 부인하였으며 심지어 정부까지 부인한 바 사실이라. 생각건대 정무를 총람하는 국가 총책임자로서 정부의 행정과 재무를 방해하고 임시헌법에 의하여 의정원의 선거를 받아 취임한 임시대통령이 자기 지위에 불리한 결의라 하야 의정원의 결의를 부인하고 심지어 한성 조직의 계통 운운함과 같음은 대한민국의 임시헌법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행위라, 이와 같이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1일이라도 국가원수의 직에 두는 것은 대업의 진행을 기하기 불능하고 국법의 신성을 보존키 어려울뿐더러 순국 제현을 바라보지 못할 바이오 살아 있는 충용의 소망이 아니라. 고로 주문과 같이 심판함."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 42호) ( 링크: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29607&cid=62049&categoryId=62049)


그러나 이승만은 탄핵을 당하고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가 여전히 대통령이라고 꼬장을 부리는 추태를 보였다. 그러면서 미국 동포가 모아준 돈을 임시정부에 내놓지 않고 자기가 들고 있었다. 이런 사태를 보고 임시 정부는 대통령제가 독재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내각책임제를 택하였다. 1960년 이승만이 물러서고 들어선 장면 내각이 했던 의원내각제도 바로 이승만 때문에 들어선 것이다. 한 마디로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를 두 번이나 말아먹은 희대의 독재자다. 그리고 그 이승만의 독재 짓을 보고 자신감을 얻은 박정희도 유신헌법이라는 희대의 불법을 저지르며 종신 독재자의 길을 가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이승만이 없었으면 박정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 여권을 중심으로 이승만 추모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역적질을 한 자를 국부로 모시자고 난리다. 이야말로 미친 짓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전쟁으로 국민이 신음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독재자의 길을 간 이승만 기념관을 세우는데 이영애가 5천만 원을 내고 윤 대통령이 500만 원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연 이승만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그런 돈을 쾌척했는가? 무식해서 돈을 냈다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겠지만, 알고도 돈을 냈다면 분명히 ‘미친 짓’이다. 그런데 이승만이 1950~1960년대에 한 악마 짓을 이제 젤렌스키가 2020년대에 그대로 따라 하는 중이다. 젤렌스키도 내년 대선에서 낙선할 것이 100% 분명해지자 아예 대선 자체를 뭉개버리는 놀라운 수를 두고자 한다. 지옥에 있는 이승만도 벌떡 일어나 무릎을 칠 일 아닌가? 


이런 악마나 다름없는 독재자가 전쟁을 이끌고 있으니, 국민은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독재자를 다름 아닌 바로 그 나라 국민이 뽑았다는 사실이다. 자업자득이다. 비록 한국전쟁 때 150만 명 가까운 군인이 죽거나 다쳤다. 그리고 민간인의 피해는 그보다 훨씬 심했다. 백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치고, 천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한국전쟁 이전에도 이미 개신교에서 아직도 물고 빨고 하는 한경직이 깃발 들고 나선 서북청년단을 시켜 국민을 학살하게 시킨 이승만의 만행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빼고도 말이다. 그런 역사의 질곡에서 살아남은 국민도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승만 독재자가 쫓겨날 때까지 경제는 파탄 지경이어서 미국이 주는 강냉이와 밀가루로 겨우 연명하는 비참한 삶을 이어갔다.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이다.     


국민이 깨어 있지 못하면 독재자나 바보를 지도자로 뽑기 마련이다. 더 심하면 바보인 독재자를 뽑기 마련이다. 그래 놓고는 사서 고생을 한다. 어리석은 백성이 자초하는 일 아닌가? 함석헌 선생의 말대로 ‘깨어 있는 백성이라야 산다.’ 그런데 요즘 사방을 둘러보면 다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백성만 보인다. ‘깨어 있는 백성’이 그립다. 날이 추우니 더욱 그립다. 히틀러도 독일 국민이 합법적으로 뽑은 정치 지도자다. 그를 만든 것은 결국 깨어 있지 못하고 광분한 독일 국민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그런 역사가 되풀이될 것인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전쟁도 얼마든지 일으키는 그런 독재자가 나오면 어찌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한반도에 결국 ‘신후삼국시대’가 도래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