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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한동훈 사퇴 쇼의 결론이 김여사 손에 달린 나라다.

by Francis Lee

뉴스가 온통 윤심·한심 대결 모드에 집중한 모양새다. 이른바 지는 해·뜨는 해 논쟁이다. 과연 한동훈이 노태우가 전두환을 밟고 올라갔듯이 윤 대통령을 밟을 수 있을지에 대한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김건희 리스크’ 일뿐이다.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준 언행으로 볼 때 이 모든 사달의 시작은 김여사이기에 그 결말도 김여사가 맺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뜬금없이 한동훈이 적극 밀고 있는 김경율이 마리 앙투아네트 설화를 불러일으켰다. 김경율이 유튜브 방송 <장르만 여의도>에 나와 한 말을 인용해 본다.


“그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 이런 것들이 이제 하나하나 드러나고 건물들을 털 때마다 드러나니까 감성이 폭발된 것이다'(라고 했다.) 그때 제가 알기로는 이른바 국정농단에서도 '비아그라다, 뭐다' 이런 것도 나왔는데 이게 저는 감성점을 폭발시켰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사건도 자꾸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대응(하자고 주장하는데)' 그걸 욕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게 국민들의 감성을 건드렸다고 보거든요. 저는 디올 동영상을 저도 차마 못 봤거든요. 다만 이제 기사로서 이렇게 소위 말하는 '움짤' 이런 걸로 봤는데 (못 보셨어요?) 차마 못 보겠더라고요. 이걸 제가 숨기기 위해서 못 본다는 게 아니라, 저는 적절치 않은 거잖아요. 이걸 어떻게 쉴드칠 수 있겠습니까? 이걸 어떻게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말씀을 할 수 있겠냐고요. 저는 이거는 좀 사죄드리고 이건 국민들의 감정을 좀 뭐랄까요? 가라앉힐 수 있는, 납득시킬 수 있는 바짝 엎드려서 사과해야죠”


김여사가 디올 백을 받은 비디오를 아직 제대로 못 본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거의 대부분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비됴에서 몇 분에 불과한 디올 가방을 받은 장면이 아니라 손님을 맞이한 자리에 등장한 노란 휴지, 헐렁한 바지와 티셔츠, 의자 위에 올린 김여사 맨발 등의 장면이 ‘동료 시민’에게 엄청난 충격과 경악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 비됴가 찍힌 시점이 윤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한참 뒤였으나 대통령 관저 공사 사달로 한창 시끄러울 무렵이었고, 디올 가방을 받은 장소가 김여사 개인 사무실이었다는 것도 충격과 경악을 더욱 가중시켰다. 한 마디로 김여사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아내만이 아니라 <코바나 콘텐츠>라는 회사 사장의 포스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 목사의 비됴에 담긴 사무실 복도에 줄지어 앉은 선물 가방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마지막 한 방울이 되었다. 김여사가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뇌물이나 받아먹는 부패한 ‘영부인’으로 보인 것이다.


이 비됴가 노출된 이후 국민의힘의 총선 전망, 특히 수도권의 전망은 불길한 정도를 넘어서서 패망이 예상되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용산은 오히려 ‘몰카 함정론’을 펼치면서 역공을 취해보고 있지만 여론을 보면 언감생심이다. 이제 그런 역공작이 전혀 먹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처음에는 한동훈도 용산과 발맞추어 ‘몰카 공작’을 주장하다가 위기감이 커지자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며 이른바 ‘김여사 사과론’을 펼쳤다. 그 와중에 한동훈의 사람으로 세간에서 인지된 김경율이 김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는 사달이 발생한 것이다. 이 말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즉각 해외 언론에도 인용되었다. 세계 최대 일간지인 <The Times of India>에 나온 관련 기사 제목은 ‘South Korean first lady likened to Marie Antoinette’이다. 그런데 기사를 보니 결국 위에 나온 김경율의 발언을 인용하여 나름대로 해석하여 작성한 것이다. 다른 언론인 South China Morning Post도 이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했는데 그 제목은 좀 더 나갔다: ‘South Korean ruling party piles pressure on first lady Kim Keon-hee to apologise for accepting Dior handbag from pastor’ 아예 최목사가 김여사게 디올 백을 전한 비디오를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김여사가 이제 세계적인 ‘명사’의 반열에 오른 것이 분명해 보인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 대만에 이어 인도와 홍콩에서도 유명 인사가 되는 모양새다. 이제 이 이야기는 아시아 언론만이 아니라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유럽 언론은 왜 김여사가 하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비유되는지 의문을 가질 것만 같다. 두 사람은 그 출생부터 삶의 궤적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맞는 비유이기도 하다. 조금 길지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문자 그대로 기요틴에 목이 잘리기까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잘 알려진 대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5대 왕인 루이 16세의 아내다. 루이 16세는 부르봉 왕가의 왕 가운데 가장 무능하고, 정치에도 관심이 없고, 인격에도 큰 하자가 있었고, 프랑스 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게다가 성격이 매우 우유부단하고 당시 프랑스가 당면한 여러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파티나 열어서 온갖 음식이나 먹고 술이나 퍼마시는 향락에 빠져 있었다. 더구나 1788년의 대흉작으로 농업 경제의 근간이 되는 농민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도 기근에 시달릴 정도가 되었는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패거리만 돌보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속해 민중의 분노를 일으킨 자다.


그런 루이 16세가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략결혼 전략에 따라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하게 되었다.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의 형인 루이 조제프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자, 대타로 나중에 루이 16세가 된 루이 오귀스트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음부터 프랑스 민중의 미움을 받았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통치하는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와 오래전부터 원수지간이었기 때문이다. 민심을 무시하고 정치적 이득을 위해 정략결혼을 한 결과다. 더구나 결혼하고도 한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자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갖은 소문이 퍼지고 그 말이 결국 마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특히 1985년 라모트 백작 부인이 당시 가톨릭교회의 로앙 추기경에게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서 선물하게 시키고는 중간에 가로챈 일이 들켜서 민중의 분노에 불을 지르게 되었다.


프랑스 왕실의 고위직에 오르려는 욕망에 불타던 로앙 추기경은 기꺼이 교회의 헌금을 가로채서 그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서 라모트 백작 부인에게 넘겼다. 당연히 그 목걸이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전달되어 결국 루이 16세에게 기쁨을 주고 고위 관직 하사의 사랑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서 말이다. 그 당시 프랑스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가톨릭교회가 말할 수 없이 부패했었기에 이런 정도의 일은 사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워낙 처음부터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반감이 있던 프랑스 민중에게 이는 불난 데 부채질한 꼴이 되는 사건이었다. 나중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목걸이를 받지 않았다는 진실이 드러났지만 이미 소용이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파리의 궁정이 이런 사기를 칠 수 있을 정도로 부패하고 왕이 무능하고 왕비가 사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중의 불만을 그저 ‘개·돼지가 짖어대는 소리’ 쯤으로 여기며 먹고 마시고 사치를 부리며 측근에게 이득을 몰아주는 행태를 지속하는 권력자 부부를 이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사실 루이 16세도 민심의 이반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기는 했다. 그래서 수시로 장관을 교체하여 개혁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파산 직전의 프랑스 경제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세금을 더 거두려는 정책은 기득권층인 귀족들의 결사반대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그리고 정작 왕실 비용 절감 방안은 사치에 젖은 왕과 왕비 자신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런 식으로 재정 개혁이 흐지부지 미루어지는 동안 인플레이션과 흉작으로 굶어 죽는 민중이 늘어났다. 그러자 1787년 왕실 정부의 재무부 장관 칼론은 세금 인상안을 제시하고 귀족과 가톨릭교회 성직자와 같은 기득권 세력에게도 세금을 부과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이 허용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기득권 세력은 칼론 장관에게 공금유용 혐의를 뒤집어씌워 해임해 버렸다.


1789년이 되자 이제 프랑스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민중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었다. 그러자 루이 16세도 위기를 느끼고 5월 5일 이른바 삼부회를 열었다.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귀족, 평민 대표가 모여 국가의 위기를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 성직자와 귀족이 작당하여 그들에게 불리한 모든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하여 평민의 의견은 모두 무시되고 말았다. 그러자 평민은 6월 17일 따로 국민회의를 결성하고 모든 세금을 평민의 동의 없이는 납부할 수 없다고 결의하였다. 그러자 루이 16세는 국민의회를 해산시켰다. 이에 반발한 평민은 7월 9일 국민의회를 제헌의회로 개편하고 헌법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루이 16세는 이 제헌의회를 해산시키고자 군대를 동원하였다. 7월 11일 민중의 뜻을 반영하려 애쓴 네케르 재무장관마저 해임하자 민중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7월 14일 민중이 상이군인회관에서 탈취한 무기로 무장하고 마침내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의 불길을 당긴 것이다. 이후 프랑스는 정치적 격변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 틈에 루이 16세는 가족을 데리고 아내의 나라인 오스트리아로 망명하려고 도망가다가 잡혔다. 그러자 여동생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드 2세 황제는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고 프랑스 혁명 정부를 이끄는 국민의회를 건드렸다. 다시 파리에 끌려온 루이 16세는 ‘바지 사장’으로 전락했으나 여전히 자신이 국왕이라고 생각하면서 입법의회의 개혁 법안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민중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스트리아 사람이기에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이 전혀 없는데 루이 16세는 그런 아내의 치마폭에 싸여 프랑스 민중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참다못한 민중은 의용군을 조직하여 급진적인 민중혁명을 기도하기에 이르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처음에는 온건한 개혁을 추진하던 민중이 계속 사사로운 이득과 과 권력에 매달리는 기득권층의 우유부단과 무능력에 분노한 것이다. 게다가 프로이센 군이 프랑스 국경을 넘어서는 일까지 벌어지자, 민중의 인내심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1792년 9월 21일 프랑스 제1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793년 1월 15일 유죄 판결을 받은 루이 16세는 21일 기요틴에 목이 잘려 죽었다. 루이 16세 사형 다음 차례는 당연히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재판을 통해 10월 15일 사형 선고를 받고 16일 남편과 마찬가지로 기요틴에 목을 잘려 죽었다.


과연 김경율이 이런 아리 앙투아네트의 어디를 보고 김여사와 닮았다고 말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뇌물, 사치, 민중의 분노라는 키워드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김여사도 과거 억대 목걸이 사달로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으니 그 또한 비슷하다. 다만 그때 김여사는 목걸이를 선물 받은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라고 했던 점이 다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측근이 사기를 쳤으니 아예 그것을 받아본 적도 걸친 적도 없으니 더 억울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자의 아내가 사치를 즐기고 선물을 좋아하면 반드시 사달이 나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요즘은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그런 일로 기요틴에 목이 잘리는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은 de facto, 곧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니 김여사가 아무리 민중의 미움을 받고 있다고 해도 목이 잘릴 리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김여사를 두고 이제 윤 대통령과 한동훈의 권력 싸움까지 벌어지는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는 데 있다. 어제 뉴스에 다시 무역 적자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신도시 재개발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세워도 집값은 폭락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물가는 들썩이는데 국가부채, 특히 민간 부채라는 폭탄이 곧 터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서는 뜨는 해와 지는 해 싸움박질이 시작되는 모양새다. 벌써 상당수는 한동훈에 줄 서기 시전을 하고 있다. 기왕이면 뜨는 해가 좋아 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 집권 2년 차에 들지도 않은 서슬이 시퍼런 살아있는 권력이 그리 만만하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벌써 한동훈이 차기 대권이라도 노린다면 이거야말로 건곤일척 진검승부가 벌어질 모양이다, 누가 승리하든 국력을 이런 정쟁과 권력 싸움으로 소모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더구나 그 싸움 한가운데 김여사가 떡 하니 자리하고 앉아 개 사과를 주느니 마느니 하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으니, 국민은 한심하다 못해 억장이 무너지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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