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김여사 디올 가방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경박한 발언으로 설화를 일으킨 이수정이 오늘은 슬며시 위기 타개책이랍시고 김여사 가방 반환 전술을 제시한다. 작년 가을에 받은 것을 올겨울에 내놓으면 중고로 팔 수밖에 없는데, 그깟 가방 하나 돌려주고 사과 한 번 하고 퉁치잔다. 이 나라의 수구 세력이라는 자들의 참으로 경이로운 사유 방식을 보여준 것 같아 기가 막힐 따름이다. 지금 ‘김건희 리스크’가 이처럼 커지게 된 이유는 디올 가방 때문이 아니다. 디올 가방은 그동안 쌓여온 김건희 리스크라는 둑이 무너지도록 한 마지막 한 방울의 역할을 한 것뿐이다. 그런데 그깟 디올 가방 하나 돌려주고 퉁 친다고? 이수정이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말한 것이라면, 지금까지 그가 일종의 프로파일러로서 발휘한 솜씨를 자아 성찰에 적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여사는 이미 과거 윤석열 후보 시절 자신의 ‘과거’에 대해 사과하고 오로지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윤 대통령이 법률가이니 비록 문서로 작성하지 않은 것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말로 한 약속도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과’를 한 다음 자기의 ‘과거’에 대한 그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때 공개적으로 한 약속도 안 지키고 ‘나대기 시전’, ‘해외여행 화보 찍기 시전’으로 현재 여권이 처한 위기의 실질적 도화선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디올 가방은 ‘선물 수수 비됴’라는 빼박 증거로 대다수 국민의 마음에 불타오르던 역린을 건드리는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이 된 것이다.
그런데 김여사는 자신을 지켜줄 것을 바라며 다른 사람도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인 남편이 아내를 커버 치기 위해서 조·중·동조차 하나 같이 나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외친 ‘김건희 특검법’을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이제 김여사는 선을 넘어버렸다. 영화 대사에 나오는 대로 말한다면 다음 정도 되겠다. You’ve crossed the line!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뒤에 여론이 더욱 악화하자, 그동안 꿀 먹은 벙어리로 있던 여권의 정치가들 가운데 일부가 ‘김여사 사과’ 전술을 들고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권이 다 같이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이런 ‘용기’를 내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방안이랍시고 내놓은 것이 겨우 중고 디올 가방 반납이다. 그것도 1년이 지나서 말이다. 그리고 사과해야 한다는 데... 도대체 무슨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인가? 가방을 돌려주면서 김여사가 할 말을 상상해 보게 된다.
“어머... 디올인 줄 몰랐어요. 흐흐흐... 모르고 받아서 미안해요. 이제 돌려 드릴게요. 그동안 선물 창고에서 보관하다가 이제 가져온 것이에요. 그런데 이유... 기왕 오신 김에 ‘개 사과’ 드실래요?”
이 정도가 전부 아닐까?
아무리 권력이 무섭다고 해도 더 무서운 것이 민심이고 민심은 천심이다. 겨우 5년짜리 권력을 잡고, 그것도 이미 2년이나 지난 낡은 권력을 가지고 기고만장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이 한심하다 못해 애처롭다. 그리고 그 권력에 매달려 ‘출세’ 한번 해보겠다고 비벼대는 이수정 같은 자들이 불쌍하다 못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 보수 진영의 인사들이 보여주는 모습에는 일관된 특징이 보인다. 하나 같이 국민을 개·돼지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온 수구 언론 <조국일보>의 논설주간 이강희의 역할을 한 백윤식이 한 말이다. 그의 대사를 인용해 보자.
그렇다. 이 대사는 단순히 영화적 허구가 아니라 한국 엘리트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대사를 흉내 내어 2016년 당시 국립국제교육원 기조부장이었던 나향욱은 다음과 같이 당당히 말했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그리고 이것도 모자라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나형욱은 서울대 법대는커녕 ‘겨우’ 연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도 아닌 ‘겨우’ 행시에 합격했다. 그러고 나서 자기 돈이 아닌 나라 세금으로 유학하러 가서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 한 자다. 그리고 그런데도 감히 자기가 이 사회의 엘리트라고 자신한 모양이다. 그러니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뱉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기자들과 술자리에서 한 말이라서 기자들이 말을 수습할 기회를 주겠다고 해도 당차게 거절했다. 역시 ‘엘리트’ 답다. Bravo, your life!
‘겨우’ 연대 나오고 행시 붙은 자가 이 정도니 서울대 법대 나오고 사법고시를 소년 급제하면 엘리트 의식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안 갈 정도 아니겠나?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이수정도 연대 나오고 아이오와 주립대를 잠깐 다닌 다음 다시 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래서 자신이 엘리트라는 자의식을 가지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이수정의 입에서 ‘그깟’ 디올 돌려주고 사과하면 된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온 모양이다. 어차피 개·돼지들은 먹고살게만 해주면 적당히 짖어대다가 조용해지리라 생각했으면 말이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는 반드시 계급이 존재한다. 서양의 모든 민주주의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능력주의 미국만이 아니라 그 대척점에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사회정의주의 독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부터 독일에 이르기까지 서양에서는 적어도 같은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시대가 있었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나치 시대다. 나치는 흔히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것으로 유명한데 나치가 학살한 것은 유대인 말고 이른바 ‘아리안의 순수한 피를 더럽히는 자’도 많았다. 여기에는 무능력자, 저능아, 장애인, 동성애자, 혼혈아, 집시, 노숙자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유대인 600만 명에 더해 한마디로 말해서 개·돼지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수용소에 끌고 가 가스실에서 집단으로 죽였다. 그래야 엘리트적인 순수한 아리안으로 이루어진 독일의 das dritte Reich, 곧 제3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런 정신으로 엘리트 위주의 사회를 건설하자는 생각이 eugenics, 이른바 우생학이다. 똑똑하고, 도덕적이고, 건강하고, 잘생기고, 건강하고, 성실하고, 법을 잘 지키는 자들로만 이루어진 나라가 세워진다면 지상천국이 마련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나치 독일에서는 건전한 정신과 건전한 육체, 그리고 건전한 가정생활을 매우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치 독일은 악마의 제국이었다. 이런 참혹한 역사에서 독일은 인종차별만이 아니라 인간 차별이 악마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확신에서 사회정의의 실천에 공을 들여온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같은 한국 사람끼리 서열을 정하고 기를 쓰고 명문대에 들어가고 많은 돈을 벌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나서 같은 한국 사람을 개·돼지로 여기며 능멸하고 깔보아야만 된다는 기형적인 엘리트주의가 독버섯처럼 사회 곳곳에 퍼지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사이에 이수정도 나형욱과 마찬가지로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엘리트주의에 빠져 국민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면 조금 짓다가 잠잠해질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깟’ 디올 백 돌려주고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이라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다.
되풀이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국민을 독재 권력 유지에 방해되는 개·돼지쯤으로 여기며 멋대로 영구집권을 노리던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망명하고 총 맞아 죽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한 사람의 국민은 개·돼지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전 국민은 결코 오래 속일 수도, 무시할 수도 없다. 국민의 집단지성은 다수결 원칙에 반영되고 그렇게 반영된 민의는 천심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이수정이 미국서 잠시 공부하고 돌아와서 민주주의의 참다운 의미를 다 못 배운 모양이다. 하기는 나형욱은 미국서 박사씩이나 받고 와서도 그 모양이니 공부했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잘난 한국의 이른바 ‘엘리트’를 무슨 수로 가르쳐서 그 삐뚤어진 사고방식을 고친다는 말인가? 그들에 눈에 비친 개·돼지가 개·돼지가 아니라 인격을 지닌 고귀한 사람이라는 진실을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나형욱이나 이수정이 배울 생각이나 있을까? 과거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했다고 하는 전설적인 말이나 던져주고 말자.(링크: https://webzine.daesoon.org/board/view_win.asp?webzine=&menu_no=&bno=4496&page=1)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 대사 사이에 있었던 고사로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어느 날 이성계가 문무 대신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무학 대사를 초청해 함께 연회를 베풀었다. 이성계는 불교를 숭상한 고려와는 달리 숭유억불 정책을 국시로 삼고자 하여 무학 대사의 힘을 빌리면서도 평소 무학 대사와 불교의 민중세력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이성계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을 던졌다. “오늘 보니 대사님의 모습이 꼭 돼지와 같이 보입니다.” 이 말을 듣고 무학 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빙긋이 웃고만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반응이 없자 이성계는 “그래 대사는 내가 무엇처럼 보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무학 대사는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성계는 의아한 듯 “나는 대사를 ‘돼지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어째서 대사는 나를 ‘부처처럼 보인다.’고 합니까?”라고 물었다. 다시 무학 대사는 “돈안지유돈(豚眼只有豚) 불안지유불(佛眼只有佛)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렇다. 자기가 개·돼지이니 그 눈에는 국민이 개·돼지로만 보이는 것 아니겠나? 정말 이제라도 나형욱과 이수정을 포함한 ‘그’ 무리가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이제라도 나라의 수준을 올려야겠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