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만 해도 민주당은 안심하고 있었다. 200석을 넘겨 단독으로 탄핵도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한동훈이 매우 빠르게 여의도 정치판의 언어를 습득하면서 집토끼 관리에 완전히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의 low-key Yuji 전략도 먹히면서 디올 백에 대해 분노하던 민심도 가라앉고 있다. 총선을 두 달 남긴 시점에서 전세가 역전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오합지졸이 되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당의 나태함이다. 윤석열 정권의 실정 목록이 너무 길어서 아무것도 안 해도 총선 대승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이 불러온 화다. 현 정권 심판을 바라는 절대다수의 민심을 거스르는 것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바로 민주당인 것이다.
이런 징후는 이미 여러 여론조사의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진보 진영에서는 여전히 그런 여론조사가 조작된 것이라고 여기며 무시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이 젖는 법이다. 그리고 아무리 조작된 여론조사라 하더라도 반복되면 민심이 되어 버린다. 민주당이 정신을 못 차리고 총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샴페인을 터뜨린 대가를 톡톡히 치를 모양이다.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단일 대오 형성의 실패에 있다. 이낙연이 뛰쳐나가서 이준석에 합류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것은 노망으로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당 안에 남아서 반명 전선에 앞장서면서 분탕질하는 세력이 일으키는 흙탕물은 민주당 전체의 신뢰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들은 국민의힘과 똑같은 어조로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가 된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원래 정당은 당대표의 권력으로 통제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이 모양이다. 국민의힘의 경우 당대표가 권력자인 대통령의 힘으로 추풍낙엽이 되어도 아무도 찍소릴 못하는 것과 크게 대조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데에는 이재명 대표의 정치 스타일이 커다란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묶여 있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탓도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재명 대표의 성격 자체에 ‘야성’이 부족한 데 더 큰 원인이 있다. 개천의 용으로 살아오면서 체득한 생존 본능으로 늘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에 비해 윤 대통령이나 한동훈은 문자 그대로 막 나가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은 한국의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맘대로 살아도 된다는 암묵적인 라이선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주당과 국민의힘, 이재명 대표와 윤 대통령이라는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성격의 당과 인물이 맞선 총선이지만 그런 의미의 전선이 현재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런 전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양 진영이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대립해야 하는 데 양 당이 내놓는 정책은 대동소이하다. 진보나 보수나 민생을 외치기만 하니 그렇다. 더구나 민주당이 텃밭으로 생각하는 진보·서민 진영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는 데도 민주당은 야당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이 계층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론에 비친 민주당은 당내 권력 싸움에만 몰두하는 모양새다. 이러니 민주당의 자신감이 자만감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과 한동훈의 지지율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모두 앞선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총선에서도 지역구나 비례대표나 모두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훨씬 앞선 결과가 나왔다. 특히 조국이 신당을 만들어 정계에 입문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적절이 63.1%로 적절 29.9%의 두 배나 많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개혁신당의 창당이 민주당에 결정타를 먹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은 콘크리트 지지층이 확고하기에 신당이 아무런 영향도 안 주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지지도는 44.3%로 민주당(37.2%)보다 7.1%p를 앞섰다. 오차범위를 넘어선 수치다.(출처: https://v.daum.net/v/20240218060305886) 물론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지난달의 민주당 압승의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이 분명하다.
결국 민주당이 기대하는 것은 일단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30%대 초반의 박스권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밖에 없다. 그리고 총선 전략을 정책 대결에서 벗어나 윤석열 정권 타도의 바람을 일으키는 수만 있을 뿐이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정부 타도 전략으로 윤석열 후보가 0.73%p 차이로 신승한 것을 보면 네거티브 전략이 선거에서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이낙연이 몽니를 부리고 심상정이 국민의힘 2중대를 자처한 것이 결정타가 되었지만,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이들의 절반 이상이 윤석열 후보의 자질보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혐오로 선택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네거티브 전략의 효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민주당에 주어진 카드는 많다. 그 가운데 김건희 리스크와 결부된 김건희 특검법은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에 결정적인 한 방이 될 것이다. 이를 잘 아는 여권이 김여사의 나대기를 최대한 억제하고 심지어 김여사가 매우 애정하는 해외 국빈 방문마저 포기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지만 디올 백 사건으로 정점에 이른 김건희 리스크는 여전히 국민의힘에 최악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정책 대결에서 국민의힘보다 더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네거티브 전략에 모든 역량을 기울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도 예의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들고 나올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미 몇 년 지난 것이라 그 임팩트는 현저히 줄어든 것이 현실이다. 특히 디올 백 사달의 물타기 전략으로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과 김혜경 여사의 이른바 ‘법카 유용’을 들고 나오는 행태를 보아서 김여사 지키기를 위해 최대한 흙탕물을 일으킬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몰카 비됴’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김여사의 ‘쌩얼’이 언론에 더욱 부각될 것이 뻔하니 민주당으로서는 남는 장사다. 국민의힘이 궁지에 몰리면 문재인 카드마저 내밀 것이 충분히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문재인 팬덤이 아직 강력하고 문재인 정권과 이리저리 인연이 있는 야권이 단합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는 여러 차례 151석 석권을 언급했다. 국민의 염원인 윤석열 정권 심판과는 거리가 먼 결과를 민주당의 당대표가 이런 식으로 예단하는 것에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부자 몸조심인가? 아니면 더 깊은 뜻이 있는가? 이재명 대표를 만나 대화한 적이 없으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충분히 추측은 가능하다. 일단 200석 석권, 탄핵, 정권 심판이라는 정치적 격변을 현재 대한민국이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맘 같아서야 윤 대통령 부부를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단두대에 올리고 싶은 사람이 많겠지만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런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리고 탄핵 정국이 형성된다고 해도 박근혜의 경우처럼 궁극적으로는 결국 사면될 것이 뻔하다. 흉악한 범죄자였던 이명박도 사면 복권되는 판인데 윤 대통령 부부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가 재집권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시간이 부족하게 된다. 지난 2년 동안 완전히 뒤집어 놓은 외교를 정상화할 역량과 시간이 필요한 때에 탄핵 정국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것은 국익에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트럼프가 재집권하고서 과거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1월 12일 애치슨 선언으로 그려진 애치슨 라인을 또 긋게 된다면 북한에 그릇된 신호를 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특히 트럼프가 애치슨 선언보다 더 강력하게 아예 동북아에서 미군을 모조리 철수하여 이 지역 방어 의무를 한국과 일본에 넘겨버리는 카드를 쓴다면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와 적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은 문자 그대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만다. 오로지 일본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데 과연 일본이 한국을 지키기 위해 자국의 자원과 역량을 동원하겠는가? 지나가던 ‘개 사과’가 다 웃을 일이다. 동북아 지역에 전쟁이 난다면 과거 역사를 비추어 볼 때 전장은 한반도에 국한될 것이 뻔하다. 일본은 제2차 대전 때 미국의 폭격을 당했고 일부 작은 군사 기지화된 섬에 공격을 받았지만, 본토에서 전투를 벌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이전에도 없었다. 중국대륙의 침략은 언제나 한반도에서 끝났다. 그래서 만약 이번에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한반도만 초토화될 것이 뻔하다.
이런 위기 상황이 충분히 예상되는 데도 탄핵 정국으로 권력 싸움에만 몰두한다면 한국의 운명은 문자 그대로 바람 앞의 등불이 되고 말 것이다. 이를 충분히 예측할 이재명 대표가 탄핵 정국을 바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약 탄핵 정국이 수립된다면 보수 진영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맞불을 놓고 총력을 다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럴 경우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결국 공멸하게 될 것 아닌가? 그러면 나머지 세력이 어부지리를 누리게 될 것인데 이야말로 죽 쑤어 개 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 정도 계산은 충분히 할 이재명 대표이기에 굳이 탄핵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151석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이재명 대표의 선견지명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자신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구하는 길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디올 백으로 극에 달한 김여사에 대한 국민의 증오는 정치가 아니라 법으로 풀어갈 문제일 뿐이다. 단두대에 올려서 목을 자르는 일은 국민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치르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감정 배설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럼프의 재선은 윤석열 정권에 치명타가 될 것이 뻔하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기조는 한미일 공조인데 말이 공조이지 사실상 미국에 일본이 매달리고 한국이 그 일본의 한 다리를 잡고 있는 형국인데 트럼프의 미국이 떨어져 나가 버리면 일본도 한국을 버릴 것이고 한국은 홀로 북한, 중국,러시아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일본은 과거 아베처럼 트럼프 골프카트 운전사를 자처하며 ‘시다바리’의 수모를 겪으면서 버티겠지만 북한과 직접 거래를 트려던 트럼프의 한반도 외교 정책이 되풀이된다면 윤석열 정권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남북한이 서로를 주적으로 선포한 마당에 과거 문재인 정부처럼 북미 협상에 끼어들 명분도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트럼프 정권이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지역 분쟁을 바라지 않기에 중국이 대만을 접수해도 눈을 감는 결정을 내릴 것이 뻔하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이러한 새로운 외교적 그림이 그려지면 윤석열 정권은 굳이 탄핵 정국으로 몰지 않아도 스스로 최악의 곤경에 처하게 된다. 문자 그대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만다. 중국에 크게 의존하던 경제의 축을 미국으로 옮기는 중이었는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밀려 미국 시장마저 잃어버리면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모든 경우의 수를 보아도 굳이 탄핵 정국으로 몰고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서 민주당은 151석 이상을 석권하여 최대 다수당의 지위만 확보하면서 윤석열 정권이 김건희 리스크를 계속 안고 가면서 실정을 지속하다가 결국 자멸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아도 되는 데 굳이 힘을 써서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약 200석 이상을 석권하여 탄핵 정국이 수립되어도 이재명 대표에게는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미래 예측 가능성만 줄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어차피 나머지 3년 동안에도 김건희 리스크는 지속될 것이다. 김여사가 움직일 때마다 리스크를 흘리고 다니니 말이다. 그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꽃놀이 패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꽃놀이 패를 즐기는 데에는 151석이면 충분하다. 그런 계산을 하며 이재명 대표는 이미 총선 이후의 판세를 읽고 난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사람은 아직도 왜 하필 151석인지 궁금해하고 있지만 말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 강남 귀족 4인방인 윤 대통령, 한동훈, 이낙연, 조국을 한 방에 날려버릴 비책으로 151석보다 나은 수순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그래서 경상도 깡촌과 성남 빈민가 출신으로 개천에서 난 용이 된 이재명 대표가 그의 능력을 이번 총선에서 어찌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천운이 이재명 대표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일 법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