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분열의 끝은 공멸일 뿐이다.
뉴스를 보니 상업영화인 라미란 주연의 <시민덕희>와 윤여정 주연의 <도그데이즈>가 모두 이승만에 관한 자료를 모은 다큐멘터리 필름인 <건국전쟁>에 밀렸다는 소식이 보인다. 그런데 <시민덕희>는 누적 관객 150만 명으로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겼는데 <도그데이즈>는 <건국전쟁> 보다 못한 34만 명에 그쳤다고 한다. <건국전쟁> 전에 김대중의 일생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인 <길 위에 김대중>도 먼저 나왔는데 누적 관객 12만 명으로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긴 데 비해 <건국전쟁>은 누적 관객이 71만 명에 달했다. 그러면서 김대중과 이승만이 상징하는 진보와 보수의 대결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길 위에 김대중>을 보고 감상을 공개하고 한동훈은 <건국전쟁>을 본 것을 과시하는 식이다.
어쩌면 이리 한국은 영화마저 패거리 싸움에 이용하면서 세 과시를 하는 데 열을 올리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든 나라다. 정치적으로 김대중과 이승만은 진보와 보수 양극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북한과 대립하다 못해 이제 서로를 주적으로 선언한 남한은 다시 진보와 보수로 나뉘면서 영화로도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내는 ‘주접’을 떨고 있다. 북한과 적대적으로 싸우는 것도 모자라 5천만 명에 불과한 남한 국민이 다시 갈라져서 서로를 죽자고 미워하고 있다. 아예 남북이 갈린 데 더해 동서로 갈라진 나라가 될 것만 같은 분위기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나라가 정치적으로 둘로 갈라지면서 상대방을 죽여야 속이 시원한 것처럼 난리다. 과연 이것이 유구한 5천 년 역사를 이어온 단일 민족의 단일 국가에 속한 국민인가 싶은 정도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경제·정치적 위기 상황을 고려한다면 5천만 명이 하나로 단결해도 모자랄 판인데 나라가 동서로 갈라져서 상대방이 죽어 없어져야만 행복하다고 핏대를 올리는 자들로만 넘쳐난다. 그리고 그런 국민을 달래서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도 모자랄 판에 정치가들은 선전·선동으로 더욱 분열을 조장하고 ‘내로남불’ 시전에 열을 올린다. 그 장단에 맞춰서 국민은 더욱 분열이라는 저주의 굿판에서 작두춤을 추어대고 있다. 정말로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러는 와중에 권력자와 일반 국민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따로 놀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기꺼이 개·돼지가 되어도 좋다는 식으로 살아간다. 이른바 팬덤 문화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것도 정책이나 비전 때문이 아니라, 자기와 적대적인 이데올로기를 지닌 상대방이 싫어하기에 특정 정치인을 거의 우상숭배 하듯이 막무가내로 좋아해야 한다는 기괴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래서 윤비어천가, 한비어천가, 조비어천가, 이비어천가를 불러대며 패거리 문화를 조장하면서 문자 그대로 사회를 사분오열시킨다. 사실 그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그 정치가들과 일면식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 이런 개·돼지 팬덤 신드롬에 왜 언제 생겼는지에 대한 반성은 조금도 없이 그저 ‘묻지 마’ 지지만을 시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현상이 위에서 말한 영화에까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런 식으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분열을 당연시하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뉴노멀로 정착되는 모양새다. 그리고 어차피 믿을 놈 하나 없는 사회이니 각자도생 하면서 내로남불을 시전 하면 그만이라면서 말이다. 과연 이런 나라 이런 사회를 누가 만들었나? 당연히 이데올로기에 감염된 개·돼지들은 내가 미워하는 상대방 탓만 한다. ‘토착 왜구’는 ‘빨갱이’를 잡아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빨갱이’는 ‘토착 왜구’를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식으로 남한에서 ‘토착 왜구’와 ‘빨갱이’를 다 몰아내면 사회가 안정되고 평화로워질까? 이데올로기에 몰든 사회에서 양쪽 패거리가 다 죽어 나가면 과연 남은 사람이 있을까?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심한 사회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른바 회색분자다. 그래서 누구든 이 사회에서는 어느 한 편에 서야만 한다. 그리고 반대 패거리를 죽자고 미워하고 할 수만 있다면 ‘박멸’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상식이 조금만 있다면 현재 한국 사회처럼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극에 달하면 결국 다 죽는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러한 대립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 엘리트는 이런 대립을 즐긴다. 그래야만 내 편을 끌어모아 권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지 못하더라도 내 패거리의 지지만으로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런 실익을 거둘 가능성이 없음에도 이런 이데올로기 전쟁에 자청해서 말려드는 ‘동료 시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힐 뿐이다. 왜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배우 이정재가 윤 대통령 부부와 점심 한 끼 먹었다고 진보 진영에서는 죽일 놈의 딱지가 붙는다. 이재명 대표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찢재명’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따라온다. 김여사 이야기만 나오면 ‘쥴리’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그러면서 패거리가 갈려 내로남불을 하면서 상대방만 죽으면 한반도에 참 평화가 올 것만 같이 굴어댄다.
그러나 남한에는 ‘토착 왜구’와 ‘빨갱이’가 손을 잡고 서로의 안녕을 빌어줄 때 비로소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진다. 지금 사회 분열을 앞장서서 조장하는 정치가는 물론 하다못해 전광훈 같은 자가 이러한 이데올로기 대립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챙기는 구조를 무너뜨리는 길은 그렇게 자신을 ‘토착 왜구’를 미워하는 편이거나 ‘빨갱이’를 미워하는 편이라고 믿고 있는 동료 시민들끼리 화해하고 이해하는 것뿐이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시민이 깨는 날이 올까? 지금 봐서는 전혀 그런 미래가 안 보인다. 그래서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