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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Feb 22. 2024

언론의 이재명 대표에 대한 융단 폭격이 시작되었나?

검찰이 실패한 것을 언론이 시도하고 있다.

요즘 언론을 보면 이재명 대표가 곧 망할 것만 같다. “민주당 편이었던 이천수, 이재명 반대편에 섰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박용진을 버렸지만, 박용진은 민주당을 버리지 않을 것””, “"민주당 대선 패배 최대 책임자는 이재명"”, “대선 가상대결 '한동훈 46.4% VS 이재명 40.2%'…오차범위 내 최대차” 조금만 뒤져봐도 온통 이런 선동적 제목의 기사로 넘쳐난다. 온통 이재명 부고 기사가 미리 올라온 느낌이 들 정도다. 조·중·동과 같은 수구 세력의 전위대 찌라시와 기레기만이 아니다. <데일리안>과 같은 짝퉁이 더 난리를 피운다. 이런 와중에 이낙연은 반이재명 전선의 선두에 서보려고 안달을 부리고 조국은 진보 진영의 아이콘으로 남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문자 그대로 이재명 대표는 당 안팎으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려있다.     

 

윤석열·한동훈을 필두로 한 검찰 사단이 문자 그대로 이재명 죽이기에 나선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구속조차 못 하고 있다. 깨끗한 사람도 털어서 없는 먼지도 일으켜 내는 검찰이 그토록 공을 들였지만 실패한 것이다. ‘법대로’와 ‘이대로’를 외쳐보지만, 실패한 공작을 이제 언론이 떠안도록 수작을 부리는 모습이 뻔히 보인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표는 적지 않은 지지자들이 바라는 대로 강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여전히 low-key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른바 정중동 전략이다. 왜 그럴까? 그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그 나름대로 반상 최대의 수를 읽어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금 이재명 대표가 압력에 반발하여 치고 나가다가 무리수를 두기만 바라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먼지를 털려고 해 보았지만 털 수 없으니 새로운 먼지를 만들고자 하는 모양새 아닌가? 그런 검찰의 속내를 알아챈 이재명 대표가 택할 전략은 low-key밖에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이낙연과 심상정의 배신으로 간발의 차이로 패배한 경험을 거울삼아 이재명 대표는 외적과 싸우기보다는 내부 단속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를 반대하는 이들이 말하는 대로 민주당을 이재명 사당화하지 않은 한 총선이든 대선이든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이재명 대표 스스로가 뼈저리게 경험한 다음 아닌가? 어차피 윤석열 정권은 김건희 리스크로 스스로 붕괴하게 되어 있는데 굳이 손을 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 조직은 외부의 공격보다는 내부의 모순으로 자체 붕괴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법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삶의 지혜를 몸으로 배운 이재명 대표가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 이재명 대표의 약을 바짝 올리기 위해 찌라시의 기레기들이 혈안이 되어 있지만 이재명 대표는 꿈쩍도 안 하고 자기 길을 가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그의 속내를 모르는 진보 진영의 지지자조차 그의 그런 행보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가 너무 몸을 사리고 야성을 전혀 보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이재명이라는 사람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는 문자 그대로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다. 그리고 서울대 법대 출신 엘리트가 지배하는 한국의 정치판의 이단아다. 그를 꼴 보기 싫어하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서 단기필마로 싸우는 중이다. 한국 사회의 수구 세력은 독재자 이승만이 사용한 이데올로기 갈라 치기 수법을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사용하여 권력 독점에 성공해 왔다. 어리석은 개·돼지들은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모르면서 기득권 세력의 그런 선전·선동에 세뇌되어 자기가 ‘토착 왜구’와 ‘빨갱이’ 싸움에서 옳은 편에 섰다고 믿으며 오늘도 ‘짖어대는’ 것이다.


과연 한국 사회의 개·돼지 가운데 마르크스의 Das Kapital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이 그 책의 표지 색깔도 모를 것이다. 게다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 발표하여 근대 공산주의의 탄생을 선포한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의 첫 줄이라도 읽은 개·돼지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저 정치가와 사이비 목사가 떠드는 ‘빨갱이’ 타령에 맞추어 성조기를 흔들어 대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리고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해서 한국 사회가 겪어야 하는 모순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아는 개·돼지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저 일본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되었고 이만큼 먹고살게 되었다는 환상에 젖어 있을 뿐이다. 그런 세뇌된 개·돼지 가운데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자가 과연 있을까?     


이런 무지몽매한 개·돼지가 넘치는 한국 사회에서 이재명 대표와 같은 개천에서 난 용은 기득권 세력에게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거의 모든 시대와 사회에서 개천의 용은 기득권자만이 아니라 개·돼지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예수다. 예수가 예언자로 활동하면서 약 2만 명의 추종자를 거느리는 세력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서 동네 사람을 상대로 연설을 하였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의 반응은 ‘재 왜 저러니?’였다. 관련 구절을 인용해 본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1~6; 참조 마태 13,54~58; 루카 4,16~30)     


이 내용은 공관복음서인 마태복음과 루가복음에도 나온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다는 신빙성이 높은 내용이다. 예수는 기독교에서 신의 외아들로 여기는 존재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로 예수가 신이고 신이 예수다. 실제로 예수는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고 여러 기적을 일으키며 당시 많은 추종자를 얻은 예언자였다. 유대 사회에서 예언자는 세례자 요한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커다란 인기를 얻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예수가 막상 자기가 자란 고향에 오자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그리고 진리를 가르치고 좋은 일을 해도 오히려 화를 냈다. 개·돼지들은 자기와 똑같은 출신이라고 여기는 자가 잘난 꼴을 못 견디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데에는 그를 경계한 기득권 세력인 사제들의 음모가 결정적 작용을 했지만 이처럼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개·돼지들의 증오도 한몫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목청껏 외치던 개·돼지들의 목소리가 그 당시 이스라엘 지역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귀를 때렸다. 기득권 세력의 음모를 충분히 알아챘을 빌라도가 예수의 사형을 허용한 것은 그런 개·돼지들의 소동 때문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신의 외아들인 예수에 대해서도 이 모양인 것이 인간인데 하물며 사람의 아들인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는 어떨 것인가? 경상도 깡촌과 성남 빈민가에서 문자 그대로 바닥을 기면서 자란 이재명 대표가 이제 한 나라의 국정을 운영하는 자리에까지 오를 가능성이 보이자, 개·돼지들도 배가 아픈 것이다. 그런 개·돼지들의 질투심을 간파한 기득권 세력의 선전·선동이 먹혀들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기득권 세력의 앞잡이가 된 검찰이 그런 이재명 대표를 잡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이제 본격적으로 찌라시의 기레기들을 동원하여 개·돼지 선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모양새다. 위에서 인용한 신문 제목과 같은 기사가 총선이 치러질 때까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리고 그 장단에 맞춘 개·돼지들의 패악질에 가까운 반응도 더욱 심화할 것이다. 과연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을 이재명 대표가 어찌 이겨낼까? 윤 대통령이나 한동훈과 같이 기득권 세력과 언론과 개·돼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들은 조선 제일의 격노와 혀답게 즉각적으로 아무렇게나 감정을 배설해도 되겠지만 이재명 대표는 처지가 전혀 다르다. 수구 세력만이 아니라 언론과 당내의 반대 세력만이 아니라 한때 동료 시민이었던 개·돼지의 공격도 막아내야 한다. 초나라의 제왕이었던 항우가 초나라의 노래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선택한 길을 이재명 대표가 가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기득권 세력에 맞선 유일한 정치가인 이재명 대표마저 무너진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암흑 자체가 될 것이니 말이다. 일제 강점기 때로 돌아가 극소수의 기득권 세력이 호의호식하는 가운데 대다수의 동료 시민은 물론 개·돼지마저 궁핍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와중에 자칭 언론이랍시고 선전선동에만 열을 올리면서 이재명 대표 죽이기에 나선 찌라시는 영어로 말하는 언론인 press를 언론이 아니라 찍어누르기로 오용하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일 뿐이다. 과연 검찰이 실패한 것을 언론이 성공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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