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rancis Lee
Mar 15. 2024
기독교의 추락은 프란치스코 교황도 못 막나?
기독교 종말의 시작은 오래된 이야기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스위스 언론과의 대담에서 우크라이나가 백기를 들고나가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유럽의 모든 언론으로부터 문자 그대로 집단린치를 당했다. 그런데 교황이 한 말의 맥락을 보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항복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더 이상 무의미한 희생을 내지 말고 평화협상을 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런 본의에 대한 설명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유럽에서 천하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도 안 통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쩌다가 기독교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사실 기독교는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개신교는 이미 세계적으로 200개 이상의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지만, 일치를 의미하는 가톨릭교회도 다르지 않다. 한 예로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이 머물고 있는 바티칸은 독일 가톨릭교회와 노골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다. 독일 가톨릭교회는 사제의 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몇 년 전부터 아예 교회의 개혁을 시작해 왔다. 단순히 사제의 성적 취향을 고치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교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2000년 가까이 유럽 사회에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온 기독교가 생존의 위기에 몰리면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독일 가톨릭교회의 개혁 노력을 세계 가톨릭교회의 중앙 본부 격인 바티칸에서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이다. 지금 독일 가톨릭교회가 추진하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말이다. 바티칸이 생각하는 가톨릭 정신은 ‘전통’이다. 오로지 남성 사제가 중심이 된 바티칸을 정점으로 하는 교계 제도의 보존을 최고의 목표로 삼자는 것이다. 그러니 사제가 평신도가 함께 수립한 위원회에서 교회의 운영을 결정하기로 한 독일 가톨릭교회의 결정은 용납할 수 없는 월권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가톨릭교회의 전통에서 여자가 감히 남성 사제와 신자만이 올라갈 수 있는 제대 위에서 거행하는 성무, 곧 거룩한 미사를 함께 이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없는 죄악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여자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독서대에서 성경을 읽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여전히 바티칸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착오적인 바티칸의 주장을 독일 가톨릭교회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런 식으로 케케묵은 ‘전통’만 고집하다가는 교회 자체가 소멸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 가톨릭 신자의 숫자는 2023년 기준으로 2천만 명 아래로 줄어들었다. 매년 50만 명 정도의 신자가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60년 후에는 독일 가톨릭교회 안에는 단 한 명의 산자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말이 된다. 독일 개신교의 사정도 똑같다. 이제 독일의 기독교 신자는 국민의 절반이 안 된다. 게다가 교회의 미사나 예배 참석율은 한자리 수에 불과하다. 물론 기독교 교회가 완전히 망할 리는 없다. 죽어도 교회가 좋다는 사람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유럽 사회를 왕과 함께 통치하던 기독교의 권위는 이미 더 찾아볼 수가 없다. 궁지에 몰려 살아남을 궁리만 해야 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기독교가 이런 지경에 몰린 것은 물론 자업자득이다. 사제의 아동 성폭행이 마지막 기폭제가 되었지만,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이른바 ‘문화투쟁’에서 기독교가 패배하면서 일찌감치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권력과 밀착하여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데 동참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자를 노예로 여기며 부리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기독교 교회와 성직자들의 비리와 부패와 무능과 부도덕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백성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세속화된 세상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의 의무였으나 오히려 교회가 더 빨리 세속화되어 버렸다. 그리고 늘 권력에 기생하면서 기독교 교회와 사제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 프랑스 대혁명 때 분노한 민중으로부터 참혹한 복수를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유럽을 통일하여 과거 로마 제국 시대에 기독교 교회가 누리던 찬란한 영광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허망한 꿈을 꾸며 히틀러 찬양에 앞장선 기독교 교회와 사제의 언행이 전후에 일반 국민은 물론 신자들의 큰 실망을 가져왔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기독교 수입국인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치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그저 수입된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지만,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유럽 문명’ 자체였다. 그래서 종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다.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와 마을의 중심에는 통치자의 성과 교회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기독교 교회의 고위 성직자가 고위 정치 권력자가 되는 경우가 흔했다. 그리고 기독교 교회 성직자가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권력 싸움의 중심에 있는 때도 많았다. 기독교 교회는 그렇게 처음부터 단 한 번도 세속을 완전히 떠나서 거룩한 적이 없었다. 예수의 영적 유산은 수도회가 보존하였고 교회는 세속적 권력과 재화를 확보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 백성에게는 세속적인 것을 포기하고 하늘의 거룩한 것을 추구하라고 재촉하는 위선을 부렸다. 그런 위선이 19세기까지 어찌어찌 유지되어 오다가 마침내 20세기에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쉽사리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아직까지는 단일 종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22억 명의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유럽에서는 사제와 수도자의 숫자가 급감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와 같은 대륙에서는 여전히 사제가 되고자 하는 청년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리고 신자 숫자도 느는 추세다. 물론 선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기독교 신자 부모가 자녀를 많이 낳아서 자연스럽게 인구 증가율과 비례하여 신자가 늘고 있다. 남미의 경우 한때 늘었지만, 기독교와 토착 종교가 융합된 변종 종교가 늘면서 ‘순수’ 기독교의 힘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가 시작된 유럽에서의 기독교의 위상은 형편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한때 예수의 가르침대로 땅끝까지 선교에 나설 것만 같은 위세를 떨었으나 요즘은 오히려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선교를 떠나는 추세가 나타날 정도다. 그래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유럽의 재복음화, 또는 새복음화를 주창하고 나설 정도였다. 과거처럼 신대륙에 나가서 토속 신앙을 말살하고 기독교를 강요하는 개종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고, 무늬만 기독교 국가인 나라에서 기독교 정신을 부활하는 일이 급선무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한번 세속화된 사회가 다시 기독교의 정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기독교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 여전히 뻔뻔하게 진리의 배타적 수호자를 자처하는 위선적인 기독교 교회와 사제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 대다수가 더 큰 역겨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 가톨릭교회처럼 기독교 내부에서 반성과 회개 그리고 개혁의 길을 추구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바티칸이 독일 가톨릭교회를 제재하고 나서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 교회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은 신과 예수를 포기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결국, 기독교 교회와 사제의 진정한 회개와 참다운 믿음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는 기독교가 너무 세속화되어 버렸다.
문제는 기독교의 대체재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이 한때 득세했지만, 이제는 그 세력이 많이 줄었다. 이슬람교가 유럽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지만, 워낙 이슬람교는 역사적으로 유럽의 기독교와 첨예한 대립을 보였기에 유럽 정서에 맞지 않는다. 아시아에는 아예 기독교에 맞설 만한 수준의 종교가 없기에 기대할 것이 없다. 인도에서 나온 불교나 힌두교, 요가는 종교라기보다는 일종의 심신 수련 방편으로 간주하고 있기에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유럽에서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어 버렸기에 사실상 대체가 불가능하다. 유럽 사회가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거부하고 있지만, 사회생활의 리듬은 여전히 기독교적인 것을 따르고 있다. 곧 크리스마스에서 실질적인 1년이 시작되고 부활절에 유럽 전체가 휴가를 떠나고 11월의 만성절부터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주일인 일요일은 반드시 쉰다. 대부분 가게도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안식일에 일하면 안 되는 전통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의 중요한 행사 때에는 기독교의 예식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기독교를 무시하고 국민이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매우 기독교적인 달력의 리듬에 맞추어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영원히 세력을 떨친 종교는 없었다. 유럽, 특히 미국의 세력이 줄어들면 기독교도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세력이 아직 강한 상황이니 미국의 권력을 등에 업은 기독교가 당분간은 비록 껍데기만 남아 있다고 해도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그 위세를 떨칠 것이다. 기독교에 맞설 유일한 종교가 이슬람교이기는 하지만 미국에 상대가 안 되는 수준이기에 기독교를 넘어설 수는 없어 보인다. 과연 기독교를 제압할 새 종교가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나타날지 궁금하다. 기독교 종말의 시작은 오래되었지만 그 끝은 아직 안 보이고 있다. 이것도 신앙의 신비일까? 예수의 재림 때나 마무리될 것만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