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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가 대안이 될까?

생물학적 장수가 꼭 축복은 아니다.

by Francis Lee

사실 불로장생은 망상에 불과하다. 인간이 존재하는 시공간 안의 모든 것은 늙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간 생존의 근원적인 바탕이 되는 지구와 태양은 물론 그 태양이 속한 은하계 더 나아가 우주도 늙어간다. 그런데 어찌 칼 세이건이 말한 ‘pale blue dot’에 불과한 지구에 사는 인간이 그것도 겨우 20만 년 전에 지상에 나타난 homo sapiens sapiens만이 우주의 법칙을 어길 수 있다는 말인가? 조금만 생각하면 불로장생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 것을 알 수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이비 과학자가 불로장생을 노래하면서 약장사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토성의 고리를 통해 보이는 pale blue dot(지구), ⓒ NASA


더구나 나만 불로장생하고 주변 사람이 다 늙어 죽어버리면 무슨 재미로 살까? 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Man from Earth다.

이 영화의 주인공 존 올드맨(John Oldman)은 나이가 14,000살이다. 구석기시대 프랑스 지역에 살던 크로마뇽인인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늙지 않는 존재가 된다. 문제는 그가 35살이 되어도 늙지 않는 현상을 보이자 같이 살던 주민이 그를 추방해 버렸다. 구석기시대에 35살이면 죽음을 준비해야 할 나이였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21세기에는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이 그의 정체를 알기 전에 과거 14,000년 동안 해온 대로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삶을 살 결심을 하고 마지막 작별 파티를 벌인다. 영화의 내용은 그의 집에서 벌어진 이 파티에서 나누는 대화가 거의 전부다.

이 자리에서 존 올드맨은 자신의 정체를 동료 교수들에게 밝힌다. 그런데 문제는 존 올드맨이 인류 역사의 모든 중요한 사건의 주인공이었다고 말하면서부터 발생한다. 특히 그가 예수였다고 주장하는 장면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미술 전공의 에디쓰 교수는 격렬한 반발을 한다. 더구나 존 올드맨은 자신이 예수였으나 기독교에서 믿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원래 불교 신자였고 동양에서 배운 의술로 사람들을 치유해 주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더욱 기독교 신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전에 부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런 가르침이 맘에 안 드는 이들이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지만 죽은척하고 있다가 내려와서 동굴에 매장된 지 3일 만에 몰래 도망쳐 나오려다가 제자들에게 들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믿지 않은 제자들이 결국 예수 전설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는 중부 유럽으로 건너가 다른 삶을 계속 이어갔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콜럼버스를 따라서 미대륙을 발견하기도 하고 산업혁명 시기에는 기술도 배우고 고흐와 친분을 맺어 그의 그림도 선물로 받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이삿짐에는 구석기시대의 돌도끼와 고흐의 그림이 있었다. 그 자리에 모인 7명의 동료 교수가 그의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특히 정신과 의사인 윌 그루버는 존 올드맨이 어릴 때 사라진 자기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달이 벌어지고 만다.

물론 이 영화의 핵심은 영생, 곧 오래 살 수 있다는 사실보다는 존 올드맨이 인류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현존한 불멸의 존재라는 주장과 그에 대한 다양한 전공의 전문가들의 반박이다. 예수가 이 영화의 큰 주제가 된 것은 전적으로 서양 문화권에서 여전히 예수가 강력한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14,000년을 살면서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의 AI 시대까지 계속 35살 나이에 멈추어 버린다면 과연 행복할까? 그리고 시대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딱 10년만 인연을 맺고 다시 헤어지고 자기보다 훨씬 늙어버린 아들의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결국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한 채 무조건 불로장생만을 누린다면 그동안 인류 역사에서 제시된 여러 인생 교훈의 의미가 전혀 달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대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물질세계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 불로장생을 한다는 것은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질은 늙어가는, 더 정확히 말해서는 붕괴하는 필연적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태양도 50억 년 후에 수소를 다 태워버리고 헬륨만 남은 상태를 거쳐 결국 붕괴하여 백색왜성으로 퇴화할 것이 충분히 예측되는 상황에서 인간이 불로장생해서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지구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적색 거성이 된 태양의 영향으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전에 이미 기후 변화, 운석 충돌, 핵전쟁, 대전염병, 그리고 무엇보다 AI의 발달로 인류가 소멸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데 뭣 하러 불로장생해서 그 종말을 맞이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불로장생보다는 무병장수가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무병장수 또한 현대 사회에서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매우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여 2070년이면 한국 인구의 절반을 노인이 차지하는 상황이 다가올 것이 거의 확실한 데 노인이 무병장수한다면 기쁨이 아니라 비극이 될 것이다. 청년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경제 제도와 사회 자체가 붕괴할 것 아닌가? 현재의 출생률이 지속된다면 2070년 한국 인구는 3,800만 명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그 가운데 절반이 노인인 것이다. 그리고 인구의 30%가 75세 이상이 된다. 문자 그대로 무얼 먹고살 수 있단 말인가? 노인들은 대부분 연금으로 생활해야 하는데 그 연금을 무엇으로 충당할지 현재로서는 전혀 계획이 없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가 80.5살 여자가 86.5살이다. 그러나 건강수명은 남자가 71.3살 여자가 74.7살이다. 다시 말해서 75세가 넘어가면 의료 혜택에 의존하지 않고는 생존 자체가 제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의료 혜택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비용도 의료 민영화가 진행되고 나면 가난한 사람은 부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생산연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의료 비용을 국가가 모두 부담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제도권 의학을 대체하는 문자 그대로의 대체의학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무병장수, 더 나아가 불로장생이라는 사치스러운 상상력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서민이 문자 그대로의 생존을 위하여 필요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사실 대체의학의 시작도 그런 제도권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민들 사이에서 생존의 도구로 활용했던 측면도 크다. 그리고 복지국가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퇴화하는 상황에서 이른바 각자도생을 위해서라도 대체의학의 중요성이 더욱 드러날 것이다. 의료 제도도 결국 시장과 이익이라는 자본주의 논리에 종속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의료 보험 제도가 세계에서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에서마저 의료 민영화의 물밑 작업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에서 대체의학은 취미나 호기심이 아닌 생존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그런 대체의학의 구체적인 적용과 효과를 중심으로 글을 적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대체의학을 바라보는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히 강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제도권에 있는 의학계가 대체의학을 사이비로 몰아가는 경향이 크다. 실제로 대체의학의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도 있지만 밥그릇 싸움의 차원에서 나온 생각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대체의학은 실제로 치유효과가 있어도 여전히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본인이 직접 자기 몸에 적용을 해보고 그 효과를 긴 시간에 걸쳐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대체의학 재료를 모두 실험해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여러 저서와 간접 경험을 통해 그 효능이 어느 정도 인정된 것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긴다. 여기에서도 이 기준으로 소개해 볼 요량이다. 대체의학의 최대의 장점은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는 제도권의 의학에 종속되지 않고 주체적인 치유의 프레임을 독자적으로 구축하여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에서 독립하여 건강을 챙긴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일부 부자들이 추구하는 불로장생이나 무병장수가 아니라 자연이 준 수명에 맞게 건강하게 살다가 자연의 순리대로 세상을 떠나는 철학을 따른다는 차원에서 매우 인본주의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의학이기에 문자 그대로 natural 한 것이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 20만 년 동안 homo sapiens sapiens가 해온 대로 말이다. 조상이 자리를 내 주어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듯이 나도 내 후손에게 자리를 내주어 그들이 이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 순리를 어기고 무병장수, 더 나아가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것은, 더구나 자본주의의 논리로 추구하는 것은 악이다. 대체의학은 그런 악에 대항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주어진 수명대로 살되 최대한 건강하게 살아 이웃이나 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면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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