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진보’와 ‘강남좌파’ 때문에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씨가 말랐다.
정의당이 드디어 한국 정치사에서 사라졌다. 이름을 녹색정의당으로 바꾸고 말썽 많던 류호정이 탈당한 다음 비례대표를 승계한 양경규는 텅 빈 의사당에서 공허한 메아리가 될 소회를 5분 발언을 통해 밝혔다.
정의당은 진보 세력의 불모지인 한국 정치계에서 2012년 진보 단체들이 연합하여 만든 정당이다. 초기 멤버인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조준호가 통합진보당의 이석기와 김재연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정당을 만든 것에 그 뿌리를 둔 정당이다. 한때 19대 대선에 나선 심상정이 존재감을 발휘하여 진보 진영의 희망이 되었고 2018년 노회찬의 자살로 지지율이 15%를 돌파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후원금도 대폭 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지역구는 심상정 하나로 버티면서 비례대표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이번 총선에서 풍비박산이 되고 만 것이다.
사실 정의당은 한국식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수구가 아니면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가는 한국 정치판에서 사민주의를 내세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사실 정당 정치의 산실인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사회민주주의의 선구 격인 1875년 5월 27일 수립된 독일사회민주당(SPD, 독일사민당)의 시작에는 전설적인 스파르타쿠스 혁명을 주도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립크네흐트와 같은 전설적인 공산주의자의 활동이 있었다. 그리고 독일사민당의 정강은 슈뢰더가 이른바 ‘제3의 길’을 찾을 때까지는 확실한 좌파였다. 그러다가 슈뢰더가 2003년 아겐다2010을 발표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구하자 그와 대척점에 있던 당내 좌파의 구심점이었던 라퐁텐이 탈당해서 구 공산당 계열인 좌파당과 연합하면서 독일사민당은 좌파에서 벗어나 중도 좌파의 색깔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다시 사회민주주의의 본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현재 진보적인 녹색당과 보수적인 자민당과 연합 정권을 수립하면서 색깔이 불분명해진 상황에 있다. 이른바 신호등 정권(녹색당의 녹색, 사민당의 빨간색, 자민당의 노란색)이 들어서면서 독일 특유의 사회보장제도가 흔들리는 분위기가 있지만 사회민주주의 전통의 평등, 소득 재분배, 복지 정책은 여전히 확고히 지켜나가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특징은 무엇보다 비폭력적인 방법을 통한 평등의 추구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폭력성을 제거하고도 그들이 추구한 평등한 사회를 실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근본으로 하되 자본가의 전횡과 권력자의 독재를 철저히 막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민주주의의 스펙트럼은 확대되어 그 내부에서도 다시 좌우가 나뉜다. 폭력을 제외하지만, 여전히 계급투쟁적인 사회민주주의와 계급투쟁을 지양한 협력 사회민주주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공산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수정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지양한 공산주의 국가의 도래는 이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꿈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역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전히 계급투쟁을 통한 자본주의의 타도는 헛된 짓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본가의 맹목적인 이윤 추구라는 고삐 풀린 욕망을 무제한 허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결국 극소수의 부를 위해 나머지 대다수의 희생이 필연적인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제도와 법이 어느 정도 자본가의 탐욕과 권력자의 독재 통제할 것인지가 사회민주주의 이념의 핵심 과제다.
이 전통은 마르크스와 대척점에 있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이른바 개량주의를 뿌리로 하고 있다. 1876년의 고타강령, 1959년의 고데스부르크강령으로 폭력적인 공산주의 혁명과는 궤를 달리했지만 1925년의 하이델베르크 강령에서도 독일사민당은 여전히 자본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로 나갈 것을 확실히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와는 대립각을 세운 사회민주주의는 히틀러 치하에서 오히려 서로 물어뜯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사회민주주의는 모든 형태의 독재를 배격한다. 그래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히틀러의 독재만큼이나 배격한 것이다. 이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배신이나 다름없는 주장이었다. 또한 공산주의와 달리 생산수단을 공유화하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독재로 여겨서 사유재산의 고유한 가치를 존중하였다. 인류의 미래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 아니라 두 이념을 지양하여 참다운 의미의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독일의 사회적 시장 경제다. 자본주의를 유지하되 자본가에게 무제한의 이윤 추구를 허용하지 않고 민의를 대표하는 의회에서 적절한 국가의 개입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오랜 전통의 사회민주주의가 정착된 유럽에서는 이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 유럽의 기독교민주주의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사회민주주의는 제1당과 제2당의 자리를 번갈아 가면서 차지하여 정치적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 유럽 전역에 퍼진 이른바 ‘제3의 길’을 찾은 사회민주주의는 과도한 복지 정책에 따른 재정 부담을 완화하면서도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이런 타협책이 전통적인 지지층인 노동자들의 의심을 사면서 이른바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그래서 독일의 슈뢰더가 몰락하고 그 빈틈을 좌파당이 비집고 들어오게 되었다. 좌파당이 득세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수구 세력은 극우 정당을 만들어 그 대척점에 서게 되었다. 독일의 경우 독일대안당이 대표적이다. 더구나 독일사민당을 떠난 노동자들이 분노하여 이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 독일경제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독일 노동자 계층의 17%만 독일사민당을 지지하고 있다. 그에 반해 독일대안당을 지지하는 비율은 34%에 이른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과거 독일사민당이 적극적으로 복지 정책을 추구하던 시절에는 겪지 못한 경제적 고통으로 독일사민당에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해방 직후의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70%가 사회주의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승만이 영구 독재를 추구하면서 철저한 반공주의 정책을 펼친 결과 대한민국은 공산주의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불모지가 되었다. 민주당이 그나마 반독재 운동의 구심점이 되면서 사회민주주의의 일부 요소를 받아들인 것이지만 국제적인 기준으로 볼 때 민주당은 중도 보수의 영역을 벗어난 적이 없는 정당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의당이 강령에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지금 드러난 ‘몰골’을 봐서는 국민의힘 2중대까지 자처하면서 민주당과 대척점에 서보려다가 완전히 망한 케이스가 되어 버렸다. 말만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워 일반 국민은 고사하고 노동자 계층의 지지도 잃어버리는 ‘미친 짓’을 하고 자멸한 것이다. 이른바 ‘입진보’이자 ‘강남좌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심상정과 정체불명의 ‘사이비 페미’였던 류호정이 말아먹은 정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다시는 정의당과 같은 정당이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도록 역사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오로지 그 알량한 권력의 맛을 보고자 박쥐 정당의 노릇을 하다가 실패한 정의당이 되살아나는 비극은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민주당과 대척점에 서면서 본령인 사회민주주의와 극한 대립을 한 신자유주의의 본령인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특히 대선에서 이재명과 맞서서 윤석열과 연횡하여 지금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심상정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역사의 대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잘 가라 정의당. 그 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