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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Oct 17. 2020

기독교 사회론의 이해

사회윤리란 무엇인가 시리즈 II

기독교 사회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인격이다. 인격(Personalität)은 신격(Gottheit)에서 나오는 imago dei이다. 신과 버금가는 존엄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은 공동선을 추구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는 연대성과 보조성의 원칙을 따라 수행된다. 여기에 더하여 지속가능성과 약자를 위한 배려가 기독교 사회론의 핵심 개념이다. 사회윤리가 원래 인간 사회의 정의 실현을 인간 개인 차원의 인성교육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와 법제도의 개선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이기에 그러한 개념에 대한 선이해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기독교 사회론의 역사와 더불어 기본 개념을 설명해보기로 한다.


기독교 사회론은 사실 가톨릭 사회론(katholische Soziallehre)과 같은 말이다. 개신교의 칼뱅의 노동윤리와 정교회의 사회론도 있지만 오늘날 사회윤리의 근간이 된 것은 가톨릭 사회론이다.


가톨릭 사회론 하면 넬-브로이닝(Oswald von Nell-Breuning, 1890-1991)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 경제는 사회주의적 요소와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결합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상의 전위에 선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폰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는 사회주의, 특히 계획 경제를 극도로 혐오했다. 이런 측면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는 분명히 신자유주의적인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는 엄연히 대척점에 서있다. 공통점이 있음에도 그러하다. 그만큼 사회적 시장경제를 알기 위해서는 관련 개념에 대한 올바른 선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하이에크가 그의 전설적인 논문 ‘사회의 정보 활용’(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에서 갈파한 대로 아무리 뛰어난 천재도 한 사회의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보유하고 활용할 수는 없는 법이기에 대중의 집단 지성을 모을 수 있는 열린 시장이 중앙집권적인 계획 경제보다는 탁월한 효율성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열린 시장이 결국은 소수의 자본가들의 독점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중앙집권적 타락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사회 집단의 지성이 반드시 선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특히 ICT와 AI로 대중의 의식의 조작이 더욱 쉬워진 21세기에 고삐 풀린 자유 시장은 더 이상 아무런 편견이 없는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한 곳이 아니다. 하이에크도 1998년의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를 보았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근원적으로 사회윤리는 인간은 모두 예외 없이 이기주의자라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이타주의마저도 범주적으로 또 다른 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집단 지성이 모든 인류의 행복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어느 사회든 그 누군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집단 이기주의로 더욱 악화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는 개인의 선으로만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일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권위가 개입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다시 가톨릭 사회론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오늘날에는 이 단어로 표현되는 개념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교황의 회칙부터 정치학자나 역사학자 또는 신학자들의 논문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뿌리는 넬-브로이닝에 귀착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 가톨릭 사회론은 신앙과는 무관한 개념으로 사용되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밀림의 성자로 불리는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도 개신교 신학자였음에도 가톨릭 사회론을 주저 없이 사용하였다. 


넬-브로이닝에 더 들어가기에 앞서서 가톨릭 교회가 사회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잠깐 조명해 보도록 하자. 19세기 중반 가톨릭 교회는 게토로 몰리기 시작하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Theodosius I, 347-395)가 가톨릭을 유일한 국교로 선언한 380년 이후 로마제국과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독일제국에 이르기까지 가톨릭은 말 그대로 유럽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종교개혁도 버텨냈던 가톨릭이 근대화의 물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비스마르크의 프러시아 왕국과 벌인 문화투쟁(Kulturkampf, 1872-1878)에서 커다란 상처를 입은 가톨릭 교회는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세속사회에 적응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 사실 과거에 교회는 일시적이고 타락한 세속 사회 안에서 완전한 사회(societa perfecta)로서 빛을 비추는 등불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위치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인본주의에 인간 개념에 대한 해석의 주권을 넘겨주고 자연과학에 자연현상의 해석의 권위를 빼앗기면서 사회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주일에 신자들이 모여들면 그들에게 죄를 묻고 신의 심판을 경고하는 것 말고 말이다. 더구나  그 신자들은 이미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하고 자본주의 정신으로 살아가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동경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교회는 처음으로 신자들을 ‘달래야’ 하는 상황에 도래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신자들이 사는 세상 곳 세속사회를 이해해야만 했다. 그 결과 교황들만이 아니라 훼프너 추기경(Joseph Kardinal Höffner)이나 카디인 추기경(Kardinal Joseph Cardijn)도 여러 문서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나타냈지만 그중의 단연 발군은 예수회 소속 신부인 넬-브로이닝이었다.


그는 근대 가톨릭 사회 회칙의 이정표로 간주되는 레오 13세의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 발표 40주년을 기념하여 비오 11세가 발표한 「40주년」(Quadragesimo Anno, 1931)의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 문서에서 가톨릭 사회론이자 사회윤리의 근본 원리 가운데 하나인 보조성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또한 독일 헌법에도 명시된 사유재산의 사회적 책임도 갈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나치의 박해로 활동을 중단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대학의 교편을 잡으면서 세운 ‘프랑크푸르트 노동 학원’(Frankfurter Akademie der Arbeit)은 그의 학문적 사회적 활동이 중심이 된다. 독일 기민당(Christliche Demokratische Union)의 사회정책 수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무엇보다도 독일 노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 비록 그는 신부였지만 신학이나 교리보다는 경제윤리와 사회정책에 더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특히 가톨릭 사회론의 기본 윈리인 인격, 연대성 보조성의 원칙에 입각한 정의로운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천착하였다.


사실 19세기에 시작된 가톨릭 사회론의 수립 이전에도 가톨릭의 스콜라 철학에서도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이론은 존재해 왔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인권 개념은 19세기 이후의 산물이기에 본격적인 가톨릭 사회론도 이 시기에 수립될 수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에서 교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종교개혁보다는 오히려 산업혁명과 자연과학의 발전이었다. 개신교의 출현은 결국 교회 안의 문제였지만 18세기 이후의 인류 역사의 변화는 교회 밖에서 벌어지는 일로 교회의 역량을 초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과 코페르니쿠스 이후의 천문학은 교회의 자연애 대한 해석의 권위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또한 인간 사회에 대한 해석에서도 [자본주의와 관련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와 관련된] 사회주의의 틈바구니에서 교회의 자리를 찾는 것도 시급을 다투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가톨릭 사회론도 교회의 자체적인 학문적 발전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교회의 생존 전략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톨릭 사회론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실천을 위한 이론적 근거를 기독교 전통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세속 사회의 질서에 대하여 무관심하면서도 철저한 통제를 하였고 그 원칙은 기독교 교리였지만 형식은 로마제국의 통치 제도였다. 그래서 교황의 복장을 비롯하여 교계제도 교회법은 다 로마제국의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그래서 로마법을 연구할 때 교회법을 참조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의 정식 명칭도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 교황은 로마 황제이고 추기경단은 로마 원로원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교리적으로도 교황의 수위권과 주교단의 합의정신은 역사적으로 늘 대립해 왔다. 마치 로마 황제의 독재에 맞선 로마 공화국의 원로원의 합의제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실상 교황과 주교단의 권력 투쟁에서 결국은 교황의 독재 제도가 승리를 거두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종교 단체의 관리에서 독재가 공화제나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가톨릭 교회는 민주주의를 극도로 혐오한다. 모든 권력은 교황에서 나오고 교황은 절대적인 인사권을 지니고 있어 전 세계의 5,300명의 주교와 41만 명의 신부를 언제든 파면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휘두른다. 


그런데 이런 독재는 현대의 시대정신과는 정면 대립한다. 현대의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현대의 계몽주의, 실증주의, 유물론, 민족주의, 세속주의, 과학주의, 자유주의가 모두 교회가 보기에는 교회의 안위를 위협하는 사상들이다. 특히 근대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공산주의는 교회의 시각에서는 악마의 이론이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근대화를 매우 혐오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더구나 교회의 운영도 이제는 세속사회의 관리기법을 채용하고 있다. 인사 관리와 재무 관리도 모두 현대 기업 경영 방법을 채용하고 비수익 기관임에도 비용 절감과 수익 창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에는 교회가 사회를 거룩하게 만들었으나 이제는 사회가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교회 신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만 늘 뿐 유럽과 미국에서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고 그 추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관심이 많은 데 저세상 이야기만 하는 교회는 인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생존 방안을 모색하던 가톨릭 교회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3년 동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 공의회를 개초한 요한 23세 교황은 교회의 쇄신(aggiornamento)을 역설한다. 교회가 구태의연한 모습으로는 도태되는 길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로서는 혁신적인 대책이 이 공의회에서 채택되어 실현된다. 상징적인 조치로는 이때까지 전 세계 모든 가톨릭 교회에서 오직 라틴어로만 거행되던 미사를 각 나라의 언어로 진행하도록 전례를 개혁하게 된다. 그리고 미사 방식에서도 신부가 신자들을 증지고 제대를 바라보고 하던 것을 신자와 마주 보며 함께 기념하는 제사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톨릭 교회 밖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곧 교리적으로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교회 전통에서 볼 때 폭탄선언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더 나아가 예수를 모르는 사람도 구원의 빛을 볼 수도 있는 가능성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원수처럼 지낸 유대교와도 화해를 모색하고 이슬람교도 종교로 인정하게 된다. 그 이전에 가톨릭 교회에 종교는 일반 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였다. 곧 가톨릭 교회가 종교이며 종교가 가톨릭 교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니 가톨릭 교회가 이해하는 종교의 개념도 바뀔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증산교에서 말하는 대로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는 일을 가톨릭 교회도 실천하기에 이른 것이다. 교회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곧 교회도 적자생존의 원칙으로 진화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자신의 생존과 존재 이유를 위하여 사회에 제시하는 의제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고 그래서 나온 것 가운데 하나가 가톨릭 사회론인 것이다. 가톨릭 사회론은 현대 사회에서의 개인과 사회의 관계, 특히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가톨릭 신학의 전통에서 해석하는 시도에서 나온 이론이다. 이 이론은 새로운 것이기에 교회의 권위들, 곧 교황과 추기경만이 아니라 신학자, 대학 교수들의 모두 관여하여 그 체계 수립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는 1893년 기독교 사회론(Christliche Soziallehre) 학과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학문적 연구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다가 1921년부터는 본(Bonn, 1921), 풀라흐(Pulach, 1926), 상트게오르겐(St. Georgen, 1928), 비인(Wien, 1935) 대학교가 차례로 이 학과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거의 모든 독일의 대학교에서 이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가톨릭 사회론은 단순히 윤리신학의 한 과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노동 차원의 실천적인 면모를 다듬게 된다. 그래서 가톨릭 노조와 가톨릭 고용자 협회 그리고 콜핑 신부(Adolph Kolping, 1813-1865)가 세운 가톨릭 교회 단체인 콜핑베르크(Kolpingwerk)나 카리타스협회(Caritasband)도 이 가톨릭 사회론의 형성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이론적 차원에서 넬-브로이닝은 독보적인 존재가 된 이유는 그가 가톨릭 사회론의 기본 체계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가톨릭 사회론에서는 인간의 사회적 공존을 위하여 필요한 기본원칙으로 먼저 다음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곧 연대성(Solidaritätsprinzip)의 원칙, 보조성(Subsidiaritätsprinzip)의 원칙, 공동선(Gemeinwohlprinzip)의 원칙이다. 그리고 이 모든 원칙은 모두 인간의 존엄 곧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가치의 수호와 보존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1990년대 이후에는 [환경보호와 관련한] 지속가능성을 위한 원칙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는 환경 회칙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이 환경 보호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원칙들을 차례로 살펴보자. 주로 케르버(Walter Kerber, 1926-2006)의 책에서 인용하기로 한다.


‘연대성’(Solidarität)은 ‘집단 책임’(Gesamthaftung)을 전제로 한다. 이 연대성은 인간의 본질에 존재적으로 자리 잡은 상호 연관성이다. 인간은 자신의 본질에 따라 사회적으로 정향 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는 그 나름대로 그 구성원인 개인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연대성의 원칙은 사회적 존재를 논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신의 본질을 펼치는 자리인 사회를 지향한다. 여기에서 당위(Sollen)가, 곧 이러한 존재적인 본질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의무가 나온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모여 살아야 하는 삶의 현실에서 서로를 도와야 하는 의무적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어야만 하기에 한 사회 안에 태어나는 순간 그는 사회에 대한 봉사를 통하여 자아실현을 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회 또한 인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콩트(Auguste Comte, 1778‐1857)는 세대 간의 연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연대성은 인류의 ‘실증적 단계’에서는 일종의 인류 ‘종교’가 된다. 콩트에게 인류의 연대성은 각 개인들이 인과적으로 (기능적으로) 모든 다른 인간들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르동(Pierre‐Joseph Proudhon, 1809‐1865)은 연대성이 이기심을 배제하는 ‘공동의식’의 지배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라살레(Ferdinand Lassalle, 1825‐1864)에게 연대성은 노동자 운동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역사적 과정을 관통하는 인간의 이념의 결과를 의미한다. 독일 사회당(SPD)의 ‘고데스베르크 강령’(Godesberger Programm)에서는 연대성을 ‘사회주의의 근본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페쉬(Heinrich Pesch S.J., 1854-1926)는 연대성을 고유한 사회철학적 체계로 수립하였다. 그는 이 체계를 개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립하여 ‘연대주의’(Solidarismus)라고 불렀다.


가톨릭 교회가 사회윤리에 특별히 기여한 것이 보조성의 원칙(Subsidiaritätsprinzip)이다. 보조성의 원리는 비오 11세의 회칙 「사십 주년」(Quadragesimo anno, 1931)에서 그 명칭과 고전적 정의를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을  빼앗아 사회활동에 맡겨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잘것없고 하위에 속한 사회 조직이 이룩할 수 있고 또한 선한 목적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을 상위의 공동체가 빼앗아가는 것은 정의에 위배되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전적으로 불이익을 초래하고 전체 사회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모든 사회 활동은 그 본질과 개념에서 보조적인 것이다. 이 활동은 사회 조직을 보조하되 절대로 그것을 파괴하거나 흡수해서는 안 된다.” 사회는 사회적 권위에 기초하여 활동한다. 그래서 보조성의 원리는 사회 구성원의 개별 행위에 관련해서 사회적 권위의 어떠한 권한이 적절한 것인지에 관한 척도가 된다. 여기에서 보조성의 원리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대규모적이고 포괄적인 사회와 회원단체 사이의 관계에서도 타당하다. ‘보조성’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subsidium’에서 연유한다. 이것은 로마의 군사용어로 ‘보충대의 보조’라는 뜻을 가졌다. 원래‘subsidiarii cohortes’는 전선의 후위에서 대기하고 있는 ‘보병 보충대대’였다. 그래서 ‘subsidium’은 ‘도움, 원조, 구원 진지’ 등을 의미한다. ‘보조성’은 사회가 오직 예외적인 경우에만 뛰어드는 임시방편이라고 잘못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매우 일반적으로 사회가 수행해야 할 ‘도움이 되는 보조’(hilfreicher Beistand)와 연관된다. 사회 전체의 구성원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모자라는 모든 경우에 도움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보조성의 원리의 적극적 의미). 그리고 사회적 권위는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오로지 그들이 스스로 이룩할 수 없는 일만을 넘겨받아야 한다(보조성의 원리의 소극적 의미).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는 분명히 사회의 개별 구성원이 절대로 수행할 수 없는 모든 필수적인 과제를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국가적 법질서이다. 또한 사회적 권위는 오직 공동으로만 이룩할 수 있는,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과제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전염병과의 싸움이 이에 해당된다. 또한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자발적 활동에 대한 도움도 있어야 한다. 소극적 의미에서 보조성의 원칙은 방어권이다. 사회적 권위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인이나 작은 사회를 감독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삶의 형태에 대한 책임을 상급 기관에 떠맡겨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 상급 기관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이러한 결정권을 기꺼이 보유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결국에는 스스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공동기금을 통한 도움을 기꺼이 받으려 한다. 또한 여기서는 분배 과정에서 ‘침전에 따른 손실’(Sickerverluste)도 발생하게 된다. 오직 타인과의 연관성 속에서 인간은 인격으로서 자신의 충족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들은 거의 대부분이 개인이 혼자서는 전혀 실현할 수 없는 사회적 가치들이다. 인간은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중립적 위치에 설 수도 없다.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을 통하여 보존되어온 많은 사회적 규제들의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적합성은 이성적으로 완전히 파악될 수 없다. 우리는 가능성과 소질을 가진 존재인 구체적 인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삶의 모든 측면을 계몽적으로 완전하게 재구성하고 비판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대성의 원리는 사회화를 통하여 실현되어야 하는 인간의 사회적 특성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보조성의 원리는 그러한 사회적 권위를 통하여 실현된 사회 활동의 관계, 곧 사회 구성원의 개별 활동에 대한 관계를 규정한다. 이러한 자유의 규제는 사회적 가치나 목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지 전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인간(권위 보유자)의 다른 인간(다른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근거 없는 지배가 쉽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한 사회의 공동선은 어떤 방법으로 모으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외재(外財, äussere Güter)가 아니라, 오직 인간의 적극적이며 정신적이고 자유로운 활동으로 실현될 수 있는 인격적 가치의 실현을 통하여 성립되는 것이다. 외적인 제도(공공복리)는 각 개인이 이러한 개인적 사회가치를 스스로 형성하고 체험하고, 또한 이에 참여하도록 하는 전제조건을 보장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개인과 하위 사회는 어떤 과업을 담당하고 상위의 기관은 어떤 것만을 담당할 능력이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누가 판단하는가? 보조성의 원리를 관철할 때의 어려움은 포괄적인 사회 형태가 대개는 이른바 ‘권능의 권능’(Kompetenz-Kompetenz)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곧 누가 해당 과제를 담당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권한의 심사도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위 보유자는 일단 차지한 권한이나 권력을 자발적으로 다시 아래로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보조성의 원리를 시민의 의식에 명확히 심어줄 필요가 있다. 보조성은 이와 비슷하게 요구되고 많은 조직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는 책임의 위임(Delegation der Verantwortung)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위 기관이 그들의 재량으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권위를 위임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권위를 위임받은 사람이 위임한 사람의 의도를 따르고 있는지 살펴볼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에 반해서 보조성은 [행위자의] 고유한 권리를 의미한다. 결정권자는 상위 기관이 아니고, 한 인간 집단의 명의로 행위하고 결정을 내리면서 그 인간 집단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책임의 위임은 참된 보조성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데 쉽게 악용될 수가 있다. [권위 보유자가] 특정한 과제를 대리인을 통하여 ‘친시민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면서도,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결정할 수 있는 실질적 권위는 주지 않는 차원에서 권한을 양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점점 더 좁아지는 세계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태를 포괄적으로 통제할 필요성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소수의 손에 모든 권력을 일괄적으로 맡기는 것에 맞서 바로 보조성의 원리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야만 전체적으로 통제된 사회에 맞서 자유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인간의 의식에 철저히 주입되었을 때에만 민주사회에서 보조성의 원리가 발휘될 수 있다.


공동선(bonum commune)은 한편으로는 선한 것,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에게 좋은 것, 곧 모든 공통된 선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동선은 인간의 본성에 놓여 있어야 하고 인간의 노력을 촉발하지만 타인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이룩되거나 실현될 수 있는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사회의 이러한 공동선은 그 가치가 어느 차원에 있든 상관없이, 일종의 풍요와 완성과 더 많은 가치 충족을 한 사회조직의 구성원들에게 가져다준다. 이러한 공동선에 대한 개인의 책임 정도는 그 공동선의 가치 수준과 정비례한다. 대체로 사회적 신뢰에서 파생되는 가치에서 종종 추가적인 의무력(Verpflichtungskraft)이 자라난다. 스스로 공동 행사에 참여하기로 이미 선언한 사람은 누구든지 무조건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이 그것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의 근거는 사태 자체가 아니라 그가 이미 한 약속이다. 어떤 경우든 한 사회의 공동선은 그 사회를 형성하는 인간적 인격(menschliche Person)과 그 인격의 기저에 놓여있는 가치 가능성의 관점에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가치’는 그 개념 자체가 인격으로서의 인간(Menschen als Person)과 연관된다. 


공동선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격적인 것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을 배제한 채 그러한 사회 구조 안에 나타나는 아무렇게나 꾸며낸 선이 아니다. 이 공동선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위한 가치여야 한다. 곧 사회 구성원 일부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봉사를 통하여 형성된 개인의 사적 이익이 아니라 오직 공동의 선만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 실현의 모든 다양한 가능성들은 사람들이 함께 실현할 수 있을 경우에만 사회 건설의 기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공동선은 “그에 참여하는 사회 구성원들 밖에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다만 그 구성원들이 서로 결합되지 못한 개별자나 단순한 총합으로서가 아니라, 서로 결합된 상태에서만 성립한다.”그런데 공동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언제나 앞서는 것은 아니다. 공공복리의 원칙을 이유로 개인의 이익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인은 공공복리에 충실하면서도 제대로 인식된 장기적인 개인의 유익(Eigeninteresse)을 추구하는 것이다. 개인의 유익과 공공복리의 관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 것인지는 각각의 경우에 가치의 수준(Werthöhe)과 가치의 긴급성(Wertdringlichkeit)에 따라 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국내법과 국제법으로 시민의 안전에 필수적인 조건들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공동선, 곧 법과 정의를 통한 공동생활의 선한 기초는 다른 낮은 수준의 재화와 가치들에 우선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공동 이익이 개별 이익에 앞선다.’는 것이 타당하다. 인격의 도덕적 가치가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경우, 곧 인격의 도덕적 고결성을 거스를 것을 강요하게 되는 경우에 공공복리는 시민들의 인권 차원에서 그 한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외의 자유로운 합의의 경우에 개인은 공동선에 참여할 의무가 있고, 또한 사회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면 공공복리를 고려해야 할 의무도 있다. 그러나 개인은 사회의 성립을 위하여 자신이 준수해야 할 법규가 요청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또한 공동선은 ‘공공복리’(Gemeinwohl)를 의미한다. 곧 한 사회의 선한 기초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공동선은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의무이자 권리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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