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이 사회적 화두가 된 이 시대에 새삼 ‘엄마’, ‘이기주의’, ‘무죄’와 같은 단어를 주워섬기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러나 내가 한 여자 곁에서 남자로서 20년 가까이 살아보니 아내는 분명히 철저히 이기적이다. 맛난 음식, 예쁜 옷, 세련된 장신구로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에 매우 열심이다. 무엇보다 자기 몸을 아름답게 가꾸고 집안을 예쁘게 정리하고 장식하는 데에 매우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면서 그것이 다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란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물론 남편의 옷과 음식과 장식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일방적으로 아내가 정해야만 한다. 남편은 주는 대로 받아먹고 주는 대로 입어야 한다. 그래서 같이 살다 보면 남편은 늘 ‘을’의 위치에 있고 아내는 이른바 ‘슈퍼 갑질’을 한다. 그래서 속으로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 나는 역시 하남(下女와 마찬가지인 下男)인가?’라는 탄식도 했다. 그러나 이제 나이 들고 보니 아내의 모든 ‘이기주의’는 무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내이기 전에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무엇보다도 출산과 양육을 전담하였다. 물론 나도 남편으로서 의무를 다한다고 육아휴직까지 두 차례 하면서 육아를 도왔다. 그러나 말 그대로 그저 옆에서 ‘도왔을’ 뿐이다. 전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두 딸의 출산, 육아, 양육 과정에서 아내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교육 과정도 아내가 전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내는 스스로 말하는 대로 ‘망가지고’ 있다. 단순히 육체적 기능과 외양에서의 노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 곱고 여린 성정보다는 여기 지금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챙기다 보니 ‘강퍅’으로 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누가 이 여리기만 하던 여성을 ‘전사’로 만든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Clinton Richard Dawkins(1941-)가 말한 '이기적 유전자'이다. 그런데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여전히 출산, 육아, 양육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다. 그리고 출산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성의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한다. 말하자면 메타모포시스를 가져오는 것이다. 흔한 속담대로 분명히 ‘여성은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그러나 강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어릴 때부터의 건강한 몸만들기가 건강한 출산과 육아에 결정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그러지 않으면 최소 3년의 육아와 최소 20년의 양육을 제대로 견뎌낼 수가 없다. 그래서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여성은 이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일단 몸무게가 현저히 증가한다. 여기에서 태아와 양수의 무게가 절반 정도이고 산모의 몸무게가 그 나머지를 차지한다. 이는 10개월간의 임신과 출산 이후의 3년 정도의 양육을 위하여 몸이 스스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임신 순간부터 여성의 몸은 철저히 태아를 위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일단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급격히 증가한다. 그리고 자궁의 압박으로 장기들이 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심한 경우 입덧은 임신 기간 내내 지속되기도 한다. 몸이 붓고 소화 장애가 빈번해지고 호흡도 곤란해진다. 그리고 임신 후기로 가면 걷는 행동조차 무척 힘들어진다.
출산 이후에 그러한 고통이 끝나지만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 아기의 생체 리듬을 철저히 따라야 하기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통상 100일이 될 때까지는 아기가 2-3시간마다 깨어 ‘먹이’를 요구하기에 ‘통잠’은 불가능하다. 모유 수유도 어려운 일이지만 우유와 이유식을 먹이는 것도 엄청난 노동을 필요로 한다. 우유와 이유식의 준비는 물론 젖병의 소독은 거의 끝이 안 보이는 중노동의 연속이다. 게다가 아이를 먹이느라고 엄마는 정작 자신의 식사는 챙길 겨를이 없다. 기저귀는 환경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육체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정말 ‘내 새끼’만 아니라면 절대 만질 수 없는 것이 기저귀이다.
그런데 출산 이후 6주간 곧 ‘산욕기’에 몸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평생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임신 기간 동안 자신의 머리만큼 팽창되었던 자궁이 출산 1주일 후에는 주먹 크기로 그리고 4-6주 후에는 원래의 달걀 정도로 크기로 줄어든다. 이러한 자궁 수축 과정에는 통증이 수반된다. 특히 모유 수유를 하는 경우 옥시토신이 자궁 수축을 강화하여 통증이 더 심해진다. 또한 출산 후 3-8주 동안 질 분비물이 나온다. 위생적으로 근심거리가 된다. 다시 정상적인 배란을 하기까지는 통상 10주가 걸린다. 또한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는 산후우울증을 야기한다. 보통 산모 가운데 최대 60%가 산후 2주에서 1달 사이에 가벼운 또는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경험한다. 물론 아빠의 26%까지 산후우울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마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리고 1년 정도 아이가 자라서 뛰어다닐 정도가 되면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된다. 아이가 어질러 놓은 것을 치우다 보면 하루가 다 가기 일쑤다. 체력의 방전이 수시로 오다가 아예 지속적인 방전의 상태가 된다. 그리고 3년 정도 되어 아이가 이제 잠도 규칙적으로 자고 스스로 앞가림을 할 정도가 되어 엄마가 자기 자신을 돌보며 생활을 할 만해질 무렵부터 공부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는 거의 15년 동안 진행되어야 하는 지난한 여정이다. 특히 한국에서 자녀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엄마 몫이다. 아빠는 밖에 돈 벌어 오느라고 바쁘단다. 맞벌이인 경우에도 거의 예외가 없다. 국영수를 중심으로 교재, 교사, 학원 탐색과 순례가 이루어진다. 이 기간에 아이가 행여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지경에 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엄마는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것도 15년 동안을.
이런 과정을 지내고도 미치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 ‘슈퍼우먼’이다. 그러나 아내는 슈퍼우먼과 거리가 먼데도 미치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 비결은 바로 ‘이기주의’ 때문이다. 그 누구도 돌보지 않는 엄마의 몸과 마음을 자기 자신이라도 돌보지 않는다면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맛난 음식을 먹고, 예쁜 옷을 입고, 고운 장식을 하면서 버텨주기만 한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과거 어머니 세대에는 여성의 특히 아내와 어머니의 순종과 희생을 미덕으로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남성중심주의적 사회의 이데올로기이다. 순종과 희생은 가뜩이나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는 여성을 사회적으로 착취하는 구조에서 지배자가 조작해낸 이념일 뿐이다. 정작 그러한 '도덕'을 만들어 낸 남성 지배자들은 순종과 희생을 나눌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성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암묵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이러한 도덕 아닌 ‘도덕’을 강요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여성의 일생, 특히 엄마로서의 일생에 대한 ‘팩트’를 알고 난 다음에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저울이 심할 정도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니 참다운 양성평등의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부장적 사회의 시각에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엄마가 이기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살고 사회가 산다. 결국 여성의 이기주의는 '이기적 유전자'의 사주에 따른 인류 생존의 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