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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ug 31. 2021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면?

자유민주주의의 진수는 따로 있다.

흔히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정확한 문장을 가져와 보자.   

  

It is better to be a human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fool satisfied. And if the fool, or the pig, are of a different opinion, it is because they only know their own side of the question. The other party to the comparison knows both sides. <Utilitarianism 2장>     


밀은 정확히 배부른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족한 멍청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돼지와 멍청이는 문제의 한 면밖에 모르지만 사람과 소크라테스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상하다. 공리주의자인 밀이 이런 말을 하다니. 칸트 정도가 이런 말을 해야 어울릴 법도 한데 말이다. 공리주의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utility, 곧 인간의 쾌락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철학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철학의 대가가 전혀 공리적으로 살지 않은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다니.     


존 스튜어트 밀은 누구인가? 영국의 이른바 ‘금수저’ 집안에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직접 최고의 영재 교육을 받고 자란 철학자, 경제학자, 국회의원이었다. 이른바 자유주의의 태두이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중요한 책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책에서 ‘부정식품론’을 만들어 냈다. 가난하면 정크푸드라도 먹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음... 다시 생각해 봐도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다.


사실 선택할 자유는 원래 책이 아니라 1980년대 미국에서 방영된 텔레비전 시리즈였다. 그러다 인기가 좋으니 그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낸 것이다. 역시 미국의 실용주의적 학자답다. 불만이 많은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학자가 더 나은 것 아니겠나? 미국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대표 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특히 로널드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널드 레이건... 어떤 인물이었는지 파고들면 경천동지 하겠지만 여기서는 그만두자.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은 학자이며 동인도회사의 간부로 활동하며 출세 가도를 달리는 와중에도 아들의 ‘영재’ 교육에 충실했다. 그의 출세작인 <영국령 인도사>(History of British India)는 백인 남자 식자층이 주류인 영국 상류사회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제임스 밀은 인도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힌디어는 한 자도 읽지도 못하고 인도 역사를 공부한 적도 없다. 그저 영어로 출판된 인도 관련 문헌을 이리저리 짜깁기하여 인도를 깎아내리는 내용으로 가득한 책으로 후대에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리 본다면 제임스 밀은 아들의 영재 교육에 매우 뛰어난 솜씨를 보였음에도 사실 아들이 말한 돼지와 멍청이 류에 속했던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이런 면을 밀의 가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칭 내로라하는 ‘가문’을 자랑하는 이들 가운데 자신이 돼지와 멍청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날뛰는 이들이 한국에도 있지 않은가? 이들의 공통점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이 한국의 엘리트들 가운데 뜻밖에 많다. 그런데 이들은 이른바 공교육 제도에서 갈고닦은 솜씨로 명문학교 진학과 출세 가도를 달리는 데에 남다른 재주를 보인다. 그것으로 그만인 것이 한국 사회이니 하늘에나 오른 듯 으스대면서 말이다.     


어찌 되었든 제임스 밀은 아들의 ‘찐’ 엘리트 교육을 전담하였다. 6남매의 장남인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의 큰 기대를 안고 3살부터 그리스어를 배워 8살이 되자 이솝우화는 물론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그리스어로 읽게 되었다.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도 그리스어로 읽었다. 8살부터는 라틴어와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고 자신의 지식을 동생들에게 전해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10살이 되자 그리스어와 라틴어 고전을 막힘 없이 읽고 이해했다. 한 마디로 존 스튜어트 밀은 언어 천재였다. 또한 제임스 밀은 아들에게 자신의 전공인 정치경제학을 직접 가르쳤다. 그가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와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의 자유주의 자본주의에 전문가가 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덕분에 존 스튜어트 밀은 벤덤(Jeremy Bentham, 1748~1832) 집안과도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 덕분에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의 친구인 벤덤의 사상을 완성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모든 세속적 욕망을 끊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린 결과 21살에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지만 결국 이성적 능력으로 극복하고 학문의 깊이를 더욱 이루게 된다. 그러다가 해리엇 하디(Harriot Hardy, 1807~1858)를 만나면서 여성 해방에 대한 사상의 깊이도 더하게 된다. 사실 존 스튜어트 밀은 해리엇이 존 타일러(John Tayler)와 결혼한 유부녀일 때부터 정을 통했었다. 그러다 그의 남편이 사망하자 1851년 정식으로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해리엇의 정식 이름이 두 남편을 따라서 Harriot Tayler Mill이 된 것이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은 <결혼과 이혼에 관한 에세이>, <여성 해방>, <여성의 종속> 등의 저서를 공저하기도 하였다. 페미니즘의 선구자인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처럼 불꽃같은 인생을 살지 않으면서도 여권운동을 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소문에 따르면 존 스튜어트 밀의 역작인 <정치경제원론>(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자유론>(On Liberty)의 저술에도 그의 아내 해리엇이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밀은 비록 허영기가 있음에도 뛰어난 교육 능력을 보인 아버지와 매우 선구적인 지식과 교양을 갖춘 아내 덕분에 역사에 길이 남는 학자가 되었다.   

   

엉뚱한 이야기지만, 사주가 좋은 사람은 이렇게 부모와 아내의 덕을 넉넉히 받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많은 부부의 궁합을 본 결과 부부는 결국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궁합이 안 맞으면 곧 수준이 안 맞으면 반드시 이혼하게 된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볼 때 ‘기우는’ 혼인을 한 것처럼 보여도 궁합은 속이지 못한다. 서로 수준이 맞으니 사는 것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대선 후보들도 보면 부부가 서로 한 치도 안 기우는 것을 잘 볼 수 있다. 그들의 궁합을 보아도 단 한 명의 예외도 없다. 끼리끼리 만난 것이다. 그러니 남자가 아까우니 여자가 아까우니 하는 논쟁은 완전히 무의미하다.     


다시 존 스튜어트 밀로 돌아가 보자.      


흔히 존 스튜어트 밀이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자유주의를 찬양하기에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무한한 경제 성장을 지지한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정 반대이다. 그는 성장보다는 합리적인 분배와 윤리적인 정신이 지배하는 사회를 꿈꾸었다. 한국의 일부 얼치기 지식인들처럼 자유민주주의가 지상 최고의 이데올로기라고 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존 스튜어트 밀은 불만이 있는 소크라테스로 사는 것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길로 여긴 것이다. 이에 맞게 그는 무제한의 자유주의 경제를 반대하고 합리적인 근거에 따른 공권력의 간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능력주의, 곧 잘난 자의 독점적 이익의 보장이 아니라 평등한 사회였다.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이 보면 아마 존 스튜어트 밀이 사회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사회주의로 경도된 데에는 그의 아내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여성 해방과 더불어 평등 사회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학문적 원숙함을 보여준다. 이런 아내가 바로 이상적인 존재일 것이다. 남편의 학문만이 아니라 그 세계관과 인격의 성숙을 이끄는 아내 말이다. 그에 반하여 아내가 세속적 출세와 물욕에 눈이 어두워 학력을 속이고 불법 투기까지 자행한다면, 그래서 그런 불법을 변명하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한다면 남편으로서는 매우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행운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불법을 자행해서라도 출세해야 하는 강박관념의 집단의식이 지배하고 있기에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길을 택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먹방과 몰카 문화를 세계에 수출하는 나라의 국민답게 먹지 않고는 배겨낼 재간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대선 주자들은 한결같이 공정과 정의가 넘치는 ‘올바른’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한다. 여기에서는 밀턴 프리드먼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이 있는 원조 자유주의자들, 곧 아담 스미스나 존 스튜어트 밀을 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진보주의, 곧 사회적 시장경제주의자들의 논리에 맞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는 분명 타락한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아담 스미스에서 존 스튜어트 밀로 이어지고 미국의 제임스나 듀이로 꽃을 피운 실용주의도 분명 장점이 있다. 미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이 된 데에는 북미 대륙의 지하자원과 자본 그리고 기술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것이 바탕이 되었다. 그러한 조화에 기여한 것이 실용주의이다. 비록 지나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 따른 환경 파괴, 그리고 극단적인 빈부격차의 부작용을 낳기는 했지만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문명을 이루어 낸 공적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장점을 배울 생각은 없이 모든 사상을 그저 진영 논리의 도구로 전락시켜버리는 현재 상황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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