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육아 투쟁기에서 배운 진실
흔히 엄마의 사랑은 agape로, 곧 마치 신이 인간을 사랑하듯이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랑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아이를 위하여 문자 그대로 자신의 삶 전체를 바치는 엄마는 과거에 비하여 줄어들었다. 일단 맞벌이 가구가 46%에 이르는 현실에서 모든 엄마가 하루 종일 육아에 전념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상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전업주부라고 하여도 이제는 어릴 때부터 어린이 집에 보내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엄마들의 숫자가 많이 늘었다. 2019년 현재 한국의 만 2세 아동 가운데 81%가 어린이집에 다닌다. 만 1세의 경우도 3명 가운데 1명은 어린이집에 다닌다. 그리고 어린이 집에 보내지 않는 아동 가운데 상당수는 학원과 영어유치원에 다닌다. 물론 코로나 사태로 이러한 통계 수치가 잠정적으로 의미가 없어졌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런데 이런 엄마들의 결정을 놓고 “요즘 여자들은...”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자의 본분'이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인데 자기 편하자고 어린아이들을 시설에 맡기고 자신은 '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수 더 떠서 요즘 여자들은 모성애를 상실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아내와 육아를 해보니 모성애는 아이 기르는 데에 결정적 요인이 되지 못한다. 모성애가 있어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다. 게다가 몸이 파김치가 되는 데 모성애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몸이 망가지고 있는데 모성애를 무기로 정신력으로 버티다 보면 번아웃이 되고 만다. 특히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몇 년 동안 이어지고 나면 몸만이 아니라 정신도 이상해진다. 그리고 그 피로는 쪽잠으로는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게다가 ‘가나다’와 ‘1234’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교육으로 추가적인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모성애와 더불어 현실적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엄마도 사람이고 과로하면 지친다. 그런데 사회는 모든 난관을 오로지 모성애로 극복하라고 몰아친다. 그래야만 위대한 어머니가 된다는 듯이. 아마 조선시대가 이어졌다면 그런 남성중심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먹혀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모성애는 마치 본능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임신, 출산, 육아 기간에만 발휘되는 유한한 것이다. 동물의 경우에 이는 더욱 명료해진다. 많은 동물들은 새끼가 성체가 되면 자기 영역 밖으로 쫓아낸다. 자신이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태아는 에일리언이다. 그런데 인체는 생존본능에서 자기 몸을 침입한 모든 이물질을 배출하려고 한다. 태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임신 순간부터 여성의 몸에서 황체호르몬이 다량 분비되면서 이러한 배척을 막는다. 그런데 황체호르몬의 부작용으로 여성의 몸에서는 입덧이 발생하며 이와 더불어 배변에도 문제가 생긴다. 종족보존을 위한 출산을 위하여 여성의 몸은 강제적으로 태아에 적응하도록 변형되는 것이다. 그리고 출산 무렵에 프로락틴이 분비되면서 수유 준비가 완료된다. 어느 날 갑자기 젖이 나오면서 여성의 몸은 아이의 식량을 보급하는 기능에 충실하게 된다. 이런 기간이 거의 2년 동안 이어진다. 그리고 자궁 수축 기간에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임신과 출산과정의 고통을 잊게 만든다. 그래서 출산의 고통의 기억을 상실한 여성이 다음 임신을 또다시 감행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여성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진행된다. 생물학적으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 과정을 통하여 여성의 몸은 매우 혹사된다. 이 과정은 의지로만 수행할 수 없는 것이기에 여러 호르몬이 분비되어 여성이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누가 여성의 몸을 이렇게 이용하는 것인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간단히 '이기적 유전자'라고 단정한다. 그런 여성이 딴생각을 못하고 임신, 출산, 육아에 충실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모성애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런 임신, 출산, 육아에 충실하지 못한 여성에 대해서는 노골적이거나 은밀한 사회적, 도덕적 비난이 가해진다.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제 여성의 모성애라는 강요된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모성애는 분명히 현상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타고난 본능이 아니다. 종족보존을 위하여 DNA든, 신의 의지든, 우주의 섭리든 여성에게 부여된 것이다. 그런데 사회는 종족보존을 마치 여성이 혼자 책임져야 할 숭고한 의무인 것처럼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족 보존은 여성 혼자 떠맡기에는 너무나 큰 짐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미국의 NPR 방송이 2016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와 유사한 속담이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이 속담의 타당성을 철저히 깨달았다. 한국은 현재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 이유를 여자들의 이기주의에서 찾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내 육아 체험을 바탕으로 해 볼 때 육아 부담을 온 사회가 함께 나누지 않는 데서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은 혈연주의 국가에서는 육아가 철저히 개인의 일로 치부된다. 그러면서 결국 여자에게 궁극적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무책임한 짓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힘든 아내의 기분을 맞추고 그 일을 덜기 위하여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애써도 육아에서 아내가 수행하는 일의 양과 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온 마을이 나서서 아이를 기르지 않는 사회에서 나라도 도울 수밖에 없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그런 마을이 곳곳에서 나올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