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역사적 사실과 교회가 만든 교리는 다르다.
예수 이야기의 압권은 그의 일생 마지막 일주일 동안 벌어진 일이다. 유대교의 중요한 명절인 유월절을 전후하여 예수는 죽었다. 공관복음에는 유월절 다음날 예수가 사형된 것으로 나오지만 요한복음에는 유월절 식사 전날 죽은 것으로 나온다. 성경에서도 정확한 사형 날짜에 이견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고, 유다가 배신하고, 베드로도 세 번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는 혼자 십자가에 못 박혀 신음하다가 죽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사형장에 있던 병정이 예수가 빨리 죽으라고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보통은 그것이 다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예수는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했다. 부활한 예수는 먼저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자에게 나타났고 다음으로 의심하는 제자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예수가 죽은 지 삼일 만에 모인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 메시지를 체험하고 예수가 하늘로 오른 다음에도 공동체를 형성하여 초대 교회를 수립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예수는 왜 죽고 나서 하루나 이틀이 아닌 사흘 만에 부활했을까? 그리고 그 사흘 동안 어디에 갔다 온 것일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이에 관한 많은 전설이 탄생했다. 그런 전설을 정리한 교회는 다음과 같이 믿는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저승에 가서 죽은 이들과 함께 머물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여 세상에 다시 와서 잠시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하늘에 올라 신의 오른편 자리에 앉아 신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가 되었다.
이른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나 사도 신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신경은 교파를 초월하고 예수를 교주로 삼는 모든 기독교에서 받아들이는 진리다. 그런데 예수가 죽고 나서 저승에 가서 죽은 이들과 함께 있다가 다시 세상에 왔다는 내용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부활한 예수도 그런 이야기를 안 했고 제자들도 그동안 예수가 어디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왜 안 물었을까? 죽은 스승이 다시 살아나 자기들을 찾아왔다는 놀라운 사실에 압도되어 차마 묻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예수의 제자이니 이미 다 알고 있어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나? 분명한 것은 예수의 직제자들은 예수가 지난 사흘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스승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 기쁘고 반가울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설명 없이 부활한 예수는 얼마 있다가 완전히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은 그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유가 무엇이든 예수가 죽고 나서 사흘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영원한 신비의 영역에 남아 있다. 비록 기독교 교리에서는 그 궁금증을 풀어주었지만 예수의 친언성이 없으니 기독교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저승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고 나서 가는 '곳'으로 이해되는 장소다. 이 저승의 개념은 종교와 문화를 불문하고 인류에게 거의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이 십자가 처형당할 때 저승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파라다이스를 언급하였다. 누가복음 23장 43절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화는 오로지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더구나 마태복음에는 예수 옆에 있던 두 사형수가 모두 예수를 비난한 것으로 묘사된다. 성경의 내용은 이렇게 서로 모순된 주장으로 가득하니 이 구절에 대해서도 논리적인 설명을 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 당시 각 공동체의 믿음을 복음서에 적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무튼 그 당시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가 저승에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사도신경에 그토록 확신을 하면서 예수가 저승에 갔다고 주장한 것인가? 사실 이런 주장을 최초로 한 것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이른바 교부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한 사람은 터틀리아누스(155~240)다. 그는 자신의 저서 De Anima에서 예수가 하데스, 곧 저승에 가서 의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없다. 그저 그의 믿음에서 나온 개인적인 주장이다. 그리고 그를 이어서 이레네우스(130~202), 오리게네스(184~253)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나중에는 아우구스티누스(354~430)도 예수가 저승에 간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도 차이가 난다. 터틀리아누스와 이레네우스는 예수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데스라는 장소에 갔다고 주장한 반면에 오리게네스는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예정된 자들만 구원하러 예수가 하데스를 잠시 방문한 것으로 주장했다. 이렇게 주장이 다양하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와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각각 325년과 381년에 공의회를 소집하여 이른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만들도록 했다. 자기를 지지하는 기독교가 교리 논쟁으로 소란을 떠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2~3세기부터 로마 교회에서 사용한 사도신경도 있었다. 그러나 두 신경 모두 예수가 죽어서 저승에 간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내용은 동일하다.
그런데 맹목적으로 믿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비기독교인이 보기에는 당연히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예수는 신의 아들로도 인간으로도 완벽한 존재다. 그는 지상에 살면서도 단 한 가지의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완전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신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신인 존재다. 그런데 그런 완전한 존재가 굳이 저승을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설사 교부들이 주장한 대로 저승에 있는 영혼도 구하러 간다면 굳이 직접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라는 말인가? 신이 친히 저승까지 가서 죽은 영혼을 구한다고? 그것은 다분히 그리스 신화적인 사상에서 나오는 추론이다. 유대교에서는 신이 굳이 저승에 갈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예수가 저승에 다녀왔다는 성경적 증거는 전혀 없다. 그리고 유대교에서 말하는 저승인 스올은 죽고 나서 가는 곳일 뿐이고 거기에서 천국과 지옥의 구분은 없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 신화의 저승인 하데스는 낙원인 엘리시온, 지옥인 타르타로스, 그리고 복수의 장소인 에리누스가 있다. 여기에서는 영혼이 지상에서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예수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예수가 평생 설파한 것은 오로지 하늘나라뿐이었다. 그리고 그 하늘나라는 이미 예수의 탄생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이었다. 다만 완성이 안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저승을 만들고 나중에는 천국과 지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연옥까지 만들었다. 모두 예수는 고사하고 성경적 근거도 매우 희박한 개념이다. 왜 그랬을까? 궁극적으로는 교회의 권위를 세우고 신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아니었나? 기독교의 2000년 가까운 역사를 보면 그런 합리적 추론을 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예수의 본 뜻과는 무관한 것이 신앙의 이름으로 신자들의 정신을 지배해 온 2000년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