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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한국 기독교 교회가 무너지고 있는 이유?

문화와 사회 제도로 성장하는데 실패했다.

by Francis Lee

통계를 보아도 한국 기독교 교회의 교세는 1990년대를 정점으로 급격히 추락 중이다. 현재 한국에는 약 8만 명의 목사와 7천 명의 신부가 있다. 그 나머지 신학생 그리고 교회 관련자를 포함하면 십여만 명의 사람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들을 먹여 살리는 교회가 쪼그라들고 있는 중이다. 가톨릭 신부는 교회의 쇄락과 무관하게 생계유지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목사의 경우 심각한 수준이다.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을 제외하면 90% 이상의 목사는 생계유지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데다 교회의 수입과 세력이 줄고 있으니 그들의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한 설문조사에서 개신교 신학생과 목사의 모델로 삼고 싶은 이가 누구냐는 질문에 순복음교회의 조용기가 1등에 당첨되었다. 조용기가 누구인가? 한때 이단으로 단죄받은 순복음교회를 최자실과 손잡고 세워 수십 명으로 시작하여 수십만 명의 신자를 모은 '기적'을 일으킨 자 아닌가? 조용기 자신과 그의 아들을 둘러싼 여러 추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을 때까지 신자들의 '추앙'을 받으며 살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그의 이른바 '삼중축복과 오중복음'의 교리와 셀목회는 '성공'하고 싶은 '새끼 목사'는 물론 신학생들에게 성경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닌 지침이 되었다.


그러나 조용기 이후 그만큼 '성공'한 목사는 한국에 나오지 않고 있다. 그 정도의 성공은 고사하고 벌써 기독교의 위세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 스스로가 타락하여 '개독교'의 모습을 보인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그러나 그 못지않은 중요한 이유는 한국에서 기독교라는 종교가 유럽처럼 문화가 되고 사회 제도로 뿌리내리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종교만이 아니라 문화이며 사회제도가 되었다. 그래서 일요일에 교회 '다니는 기독교 신자는 급속히 감소하지만 기독교는 유럽 사회의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데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음악, 미술, 문학에서 기독교는 유럽인의 정신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거의 잠재의식 수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독교를 혐오한다는 사람의 의식 세계조차도 깊이 들어가 보면 기독교 정신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기독교 문화 안에서 나고 성장한 사람들이기에 필연적인 결과다.


유럽인의 일상생활도 기독교 전통이 정해 놓은 '주기'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휴가는 유럽 전체를 움직이는 중요한 시기다. 대림절과 사순절은 정치 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안식일인 일요일의 영업은 여전히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금지되어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 정신은 기독교의 이웃사랑 정신에 뿌리박은 것이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 중심가에 있는 교회는 종교와 무관하게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모든 사람이 언제든 잠시 머물다 가는 장소가 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자주 교회에 '간다'. 이렇게 기독교는 유럽에서 종교가 아니라 문화와 사회 제도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일요일만 되면 대형 교회 주변은 북새통을 이룬다, 차가 막히고 아무 데나 주차한 자동차가 이웃의 분노를 유발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기독교 신자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일요일 외에 대부분의 교회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우연히 외부인이 들어오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크리스마스도 더 이상 이전처럼 흥청거리는 날이 되지 못한다. 일부 극우 목사들이 설쳐대는 '꼴'은 예수 얼굴에 먹칠하는 짓이 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기독교 신자는 약 1,500만 명 정도이지만 종교가 없는 한국인이 2,500만 명이 넘는 현실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이웃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아무 집이나 벨을 눌러 '교회 나오세요'라거나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어 주며 '예수 믿으세요' 하는 사람이 넘치지만 오히려 기독교 신자 수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2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서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만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는데 다시 말해서 한국 사회에 '스며드는 데' 실패한 것이다. 어쩌다가 이리되었을까?


물론 목사의 타락과 교회의 폐쇄성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위에서 말한 토착화의 불발이다. 기독교가 유럽 대륙에서 성공한 근본적 이유는 선교 지역의 문화에 성공적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문화와 종교적 심성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중요한 예가 성모에 대한 경배다. 초기 기독교가 소아시아 지역에 퍼질 무렵 이 지역에는 이미 풍요의 여신인 시빌레에 대한 숭배가 민간 신앙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런 지역 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그 시빌레가 바로 성모 마리아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는 교회 신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나이 든 여자들의 반감을 무마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정한 일이다. 사실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는 절대로 12월 25일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수 탄생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예수가 태어날 무렵 목동들이 들판에서 잠을 잤다고 나온다.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은 겨울에 매우 추운 고장이다. 예수가 겨울에 태어났다면 목동들은 들판에서 결코 잠을 잘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예수가 태어난 때는 들판에서 잠을 잘 정도의 온화한 계절이었어야만 한다. 그런데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정한 것은 그 당시 유럽 지역에서 행하던 동지축제, 곧 추운 겨울이 가고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을 기념하는 축제일을 기독교의 중요한 축제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유럽에 전파된 기독교는 기존의 문화와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토착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 유럽의 종교만이 아니라 정치와 문화의 패러다임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는 어땠나? 토속 문화를 존중하기는커녕 극단적인 대립만 일삼았다.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제사 문화를 미신으로 몰아붙이고 돌아가신 부모에게 공경을 표하는 일을 우상숭배로 몰아갔다. 유럽에 들어온 기독교가 한 토착화에 정 반대되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것도 모자라서 한국의 전통 사상과 종교는 모조리 미신으로 폄하하고 중동의 한 민족에 불과한 이스라엘의 민족신인 야훼 신을 숭배하는 것만이 참 종교라는 논리를 내세워 한국 사회와 완전히 겉도는 전통 아닌 전통을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술 담배 금지를 신앙과 결부시키는 코미디까지 시전 하였다. 세계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런 막무가내식의 기독교의 만행은 결국 한국 기독교를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그런 전통 아닌 전통에서 시작한 한국 기독교는 성경에서 말하는 빛과 소금이 되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성공주의와 기복신앙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눈부신 교회 빌딩을 세우고 신자들을 수만 명 모으는 것이 신의 은총이라고 떠벌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신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삼중 축복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신의 은총의 표징이라는 해괴한 논리까지 거리낌 없이 내세운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는 이런 성공 신화가 어느 정도 먹힐 수도 있었다. 비록 기독교 교리, 특히 예수의 가르침과는 정 반대되는 논리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도 발전하면서 기독교 교회가 비리와 추잡한 스캔들의 온상이라는 실체가 밝혀지면서 사회의 기독교 교회에 대한 평가가 더욱 악화되는 현상이 촉진되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개독교라는 별명을 얻게 된 책임은 전적으로 기독교 교회 자신에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독교 교회는 성공주의에 빠져 조용기를 우상으로 삼고, 기도하면 자식이 서울대 가고 남편이 사장이 되고 집은 부자가 된다는 기복신앙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니 누가 기독교 교회의 '가르침'을 존중할 것인가? 제 앞가림도 못하며 주제에 자기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검불만 지적하면서 선민주의에 빠진 한국 기독교가 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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