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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버티는 이유는?

패거리주의와 팬덤 문화의 병폐다.

by Francis Lee

현재 국민의힘은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의원 숫자가 모자라 어쩔 수없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국민의힘의 콘크리트 기반인 경상도마저 국민의힘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망할 기미가 안 보인다. 물론 민주당 당대표가 내란당의 해산을 벼르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법적으로 힘들어서가 아니다. 여전히 권력층을 장악하고 있는 수구 세력의 조직적인 방해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패거리주의는 문자 그대로 콘크리트만큼 견고하기에 완전히 깨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못지 않은 것이 극우 세력의 팬덤문화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 '빨갱이 딱지'를 붙이며 모함과 무고를 일삼는 이른바 극우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 팬덤문화는 죽어가는 국민의힘의 생명을 연장하는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김문수, 나경원 따위는 물론이고 새로 당대표가 된 자마저 이들을 쉽게 떨구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세계 어느 정당이 이런 몰골을 보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 없을 것이다. 모든 선진 국가와 마찬가지고 한국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두 축으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그 축은 건전한 시민이 발휘한 집단 지성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한국은 특이하게도 소수의 타락한 엘리트와 유튜브를 장악한 이른바 강성 유튜버와 그를 추종하는 팬덤이 국정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 한 다리 걸치고 있는 것이 극우 정치화된 개신교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전광훈이다. 이미 교단에서 이단 심판의 대상이 된 지 오래지만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의 '권력' 앞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여기에 더해 요즘은 미국으로 도망가고 나서 약간 조용해진 전한길이 있다.

그러나 전광훈, 전한길 말고도 유튜브에서 '극우 방송'으로 돈벌이네 나선 이른바 극우 논객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돈이다. 전광훈도 전한길도 틈만 나면 돈 이야기다. 그 얕은 속이 빤히 보이는 데도 그들의 팬덤은 '슈퍼챗'을 아낌없이 쏜다. 이미 아프리카에서 풍선을 쏴본 솜씨이니 낯설지 않은 모양새다.

사실 정당은 당원과 국민의 지지로 수립되고 유지되는 단체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이 모양 이 꼴이다. 사실 국가 권력의 핵심을 장악한 수구 기득권 세력이나 극우 유튜버를 추종하는 팬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 상황이 이모양이다. 원래 정치 지도자는 정당에서 키워내는 법이다. 독일의 경우 총리는 소속 정당에서 오랫동안 정치 수련을 받은 이들 가운데 선출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대변하는 수구 진영은 더욱 심각하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군인 주제에 국가반란을 일으킨 군부 독재자였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원래 정당인이 아니었다. 윤석열은 아예 정치는 고사하고 행정 경험도 전혀 없던 자다. 이렇게 국민의힘은 당이 기른 인재는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는 기형적 정당으로 살아왔다. 지금도 다음 대선에 나올만한 인물이 당내에서는 전혀 안 보인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이런 국민의힘을 살리는 근원적인 힘은 과연 무엇인가? 앞에서 말한 패거리주의와 팬덤문화가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그 이유의 근원은 바로 일천한 민주주의 역사에서 나온다. 형식적으로는 1948년부터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국이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곧 참다운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다. 해방 이후 40년 넘는 기간 동안 한국은 독재자가 지배하는 기형적인 정치판이 이어져 왔다. 그 후 겨우 30년 남짓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경험한 것이다. 서양의 100년이 넘는 민주주의 정치 역사의 저력에 비할 수 없는 경험치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양한 이익 집단 사이의 투쟁과 타협을 통해 쟁취한 것이 아니라 미군정 치하에서 주어진 것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쟁취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학습 효과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투환 독재자 트리오에 맞서 싸우는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토론과 타협은 실종되고 오로지 극한 대립을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21세기 한국의 정치판에서도 여전히 극한 대립과 내로남불과 흑색선전이 주를 이루는 기형적인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 특유의 지역주의와 서열주의가 한국 정치판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좌우 대립만이 아니라 남녀, 빈부, 노소, 동서 대립이 한국 정치판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일견에는 이런 대립 구조를 이용하고 더 나아가 조장하는 유투버들의 농간에 무고한 더 나아가 무지한 시민들이 놀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유튜버가 거짓과 과장을 일삼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슈퍼챗을 날린다. 옳아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편이기에 지지하는 것이다. 그 '내편'은 위에서 말한 대립 구조의 메트릭스로 결정된다. 그리고 한번 내편이 정해지면 진영을 바꾸지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배신자' 낙인은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지러운 한국 정치판은 독특하고 복잡한 정치 문화의 산물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가가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패거리주의와 팬덤문화를 '기대'하는 시민의 정치문화를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대로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치가가 지배하는 법이니 말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책은 물론 나와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대화 그리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량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민주 시민 교육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제도에서 이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오로지 SKY에 오르는 것에 최적화된 교육 시스템에서는 바랄 수도 없는 역량이다. 그렇다고 사회에 나와서 배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먹고살기 바쁜데 언제 민주 시민의 소양을 키운다는 말인가?


그러다 보니 자기가 가진 편견을 강화하는 패거리주의와 팬덤 문화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대립과 분열적 사고에서 나온 편견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다른 길은 없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이가 유튜브에서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며 입만 놀리는 자들의 농간에 스스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무리에 들어야 맘이 편하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판단력을 기르지 못한 후진적인 민주주의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독일도 한 때 이런 시절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민주주의적인 헌법을 수립한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은 선전선동으로 건전한 시민의식이 형성되는 길이 막혔다. 그 결과 나치 정권이 탄생하고 독일은 자멸의 길을 갔다. 그렇게 자멸을 경험해 보고 나서야 독일은 비로소 참다운 민주주의가 대립과 배척이 아니라 타협과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임을 깨우치게 되었다. 매우 비싼 값을 치른 것이지만 그 이후 독일은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최대한 발휘하는 의원내각제와 양원제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그 정당 간의 토론과 타협으로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하는 시스템을 여전히 개선하고 있다. 아직 독일 민주주의도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이끄는 힘은 바로 깨어있는 시민 정신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정신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성찰과 숙고를 바탕으로 하는 토론을 바탕으로 한다. 독일에도 패거리주의가 있다. 극우 세력과 극좌 세력도 있다. 그러나 정치는 정권을 사민당이 잡든 기민기사연합당이 잡든 늘 중도를 지향한다. 지금 독일에서 극우 정당인 AfD가 원재 2위 정당이지만 정권에서 철저히 배격될 수 있는 이유다.


한국 정치판이 독일을 따라갈 수 있을까? 아직은 요원하다. 그 근본적 이유는 전광훈과 전한길이 날뛰고 나경원이 5선이라고 큰소리치고 윤석열 같은 자가 재판 안 받겠다고 생떼를 부려서가 아니다. 그런 자들을 용인하다 못해 지지하는 팬덤이 정치판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마치 나를 즐겁게 해주는 트로트 가수에게 아낌없이 조공을 바치듯 그런 자들에게 슈퍼챗을 쏘는 그 한심한 팬덤이 있는 한 한국 정치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가 어찌 되든 내편 내 패거리가 있고 내가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면 그만이니 말이다. 참으로 답답한 형국이지만 민주 시민 소양 교육을 실시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러니 한국 정치가 입만 놀리는 유튜버에 매달릴 수밖에 없지, 이런 상황이 유지되는 한 국민의힘은 영원히 존속하게 될 것이다. 그 국민의 그 정당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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