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 탐구서 ]
"제가 당신을 '검둥이'라고 부르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아무 일도 없죠"
"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거죠?"
"자기한테 한 말이라고 느끼지 않는 것이 비결인가요?"
"기자양반이 나를 '검둥이'라고 하면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는 당신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에요"
- 미국의 흑인 배우 모건 프리먼의 인터뷰 중 -
[ '상처'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 ]
상처는 인간의 모든 관계에서 항상 도사리며, 곳곳에서 우리의 심장을 파고든다. 심지어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오기도 한다.
인지력이 갖추어진 유년기부터 눈을 감는 날까지 우리는 가족, 친구, 애인, 동료 혹은 불특정한 누군가로부터 평생을 거쳐 상처를 주고받는다. 우리가 발현한 언행은 서로가 맺고 있는 관계, 추구하는 목적과 욕망, 사회 보편적인 기준 또는 가치관에 따라 상대방에게 상처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상처를 받는다는 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누군가와 교감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상처란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교감 속에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는 삶의 영원한 동반자다.
상처에 따른 고통의 크기는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심과 욕심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깊을수록 그 상처 또한 깊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강도 높은 상처로 인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상처에 지배되는 자는 그 날카로운 칼날에 난도질당하여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진다. 또한, 상처를 제공한 자를 파괴하고, 그로 인해 자신도 파멸에 이른다. 하여,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원망하는 허망한 미련을 버려야 할 것이다.
인간은 상처에 대한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기에 상처를 두려워하고 마주하길 꺼린다. 하지만 아무런 상처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만일 고통의 두려움으로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도 나의 진실한 마음을 보여줄 수 없는 허울만이 떠다니는 삶이다.
상처는 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로 인한 기억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 그렇지만 현재의 나는 과거의 시간과 상처로부터 맞닿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과거의 불분명한 기억의 파편들은 지금의 나의 존재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과거의 찌꺼기들을 비워낼 수 없다면 삶에 새로운 지평은 열리지 않는다.
인생은 뫼비우스의 띠이다. 지나간 상처의 기억으로 인해 현재가 불행하다면 미래까지 불행할 것이며 지나간 상처를 극복하고 그것을 긍정할 수 있다면 현재와 미래까지 밝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무의미한 상처의 기억들은 걷어차 버려야 한다. 상처의 극복을 통하여 인간은 성숙해진다. 아픔을 딛고 자신을 이겨낸 자는 새로운 존재로 변이될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
그 무엇도 그러한 존재를 굴복시킬 수 없다.
상처를 긍정할 수 있는 자!
어떠한 불행과 상처도 그의 자존을 훼손시킬 수 없다.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