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 탐구서 ]
사람을 나누지 않으며 겸손함을 발현할 때 우리의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 서로를 신뢰하게 하는 감정 ]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상대방이 자기 자랑을 주야장천 늘어놓는다면? 승승장구하며 잘나가는 입사 동기가 거만한 모습을 보일 때 어떠한 기분이 들까? 두 경우 모두 '밥맛'이라고 재수 없어 하며 싸늘한 시선으로 상대방을 주시할 것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사회에서 종종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마주한다. 이런 부류란 겸손함이 결락되어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들은 재수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겸손하지 않음이 비호감인 것을 알기에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겸손함을 기본적인 소양으로 내재하였다. 사전에서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라 정의하고 있다.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방이 나타내는 모습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겸손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여 나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전략적인 마음 씀씀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겸손의 미덕을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 나아간다. 겸손은 경직되어 있는 서로의 마음을 허물고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와 같은 존재이다. 겸손함을 갖추고 시의적절이 발현한다면 우리는 충만한 인간관계를 통해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에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간사의 윤활유가 되어주는 겸손의 원리와 작용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본다.
[ 겸손은 어렵다! ]
겸손은 아주 친숙한 사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감정이다. 부모님, 친구, 애인과 같이 편하고 익숙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낮추며 대한다는 것은 답답하며 부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겸손함은 초면이거나 익숙하지 않은 상대방 또는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영역에서 주로 쓰이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마주한 상황과 상대방의 특성에 따라 자신을 절제하며 발현해야 하는 쉽지만은 않은 감정이다. 이처럼 겸손은 본능적으로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은 아니다.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의 원시 인간에게 겸손이라는 감정이 과연 필요하였을까? 아마도 겸손함은 문명화 이후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감정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원만만 사회적 관계를 위해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겸손함을 사용하고 있을까?
#1) 능동적인 겸손
용기와 힘을 함께 갖춘 사람은 결코 교만하지 않다. 힘이 있는 사람의 겸손은 진실이며 약한 사람의 겸손은 허위이다. - 브하그완 -
능동적인 겸손이란 나이와 계층, 신분, 학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마음의 적극적인 발현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존감을 갖추어야 한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자는 타인을 존중하기 위한 배려의 마음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려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띄워서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배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스스럼없이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갖추어진 겸손함은 타인과 나 모두를 고양케 하는 긍정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자존감이 결여된 강자에 대한 겸손은 배려를 빙자한 비굴함일 수 있다. 상대방의 힘에 밀리거나 압도당하였을 때 자신의 나약함을 겸손함으로써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굴함은 분노를 낳는다. 약자에 대한 겸손 또한 마찬가지다. 존중함이 결여된 겸손은 배려를 빙자하여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한 조롱일 수 있다. 조롱 또한 분노를 낳는다. 결국, 겸손함은 자신의 내면에 따라 서로를 충만하게 하거나 한쪽을 파괴하는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감정이다. 따라서 자존감이 갖추어진 능동적인 겸손함만이 모두를 긍정하게 할 것이다.
#2) 수동적인 겸손
수동적인 겸손은 상대방의 행태, 능력, 자질 등으로부터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였을 때 발현되는 감정이다. 상대방에게서 자신보다 뛰어난 점을 발견하였을 때 또는 자신에게 결여된 부분을 갖추고 있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상대방에게 겸손함을 갖게 된다. 이처럼 수동적인 겸손은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적극적인 마음의 발현이 아닌 상대방에 의해 자신을 자각하고 그로 인해 부족한 점을 깨닫게 될 때 자연스럽게 유발되는 감정이다. 수동적인 겸손은 자신이 구획한 특정인들에게만 향하는 감정이다. 자신과 동등하거나 상위로 여겨지는 사람에게만 겸손함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한 효율적인 마음 씀씀이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오만함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을 나누고 그에 따라 다르게 상대하는 것은 사심이기 때문이다. 사심(邪心)이란 바르지 아니한 간사스러운 마음이다. 그러한 마음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협소하게 하여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케 하는 어리석음이다. 사람을 나누지 않으며 겸손함을 발현할 때 우리의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 '겸손' 무한한 가능성의 힘 ]
주지하듯 겸손함이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인연의 장에서 자신을 낮추고 비워내어 생긴 공간에 상대방을 채워 넣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인간관계를 넘어 삶에서의 겸손함에도 적용된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배움, 새로운 사람, 새로운 모임 등. 우리는 새로운 것과 마주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여태껏 접하지 못한 이질적인 것들을 채워 넣는다. 이처럼 새로운 것을 흡수하기 위해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비워내야 한다. 겸손은 곧 자신을 비우게 하는 감정인 것이다. 가득 채워져 있는 그릇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없듯이 자신의 것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공고히 하는 자에겐 다른 것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러한 아집과 근시안은 자신을 독단과 독선으로 빠지게 한다. 겸손하지 않은 자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듯이 독단과 독선은 결국 고립을 낳는다. 겸손함은 비워내는 것이다. 비워냄은 채워 넣음으로 귀결된다. 겸손은 새로운 것을 흡수하여 자신을 고양하는 배움의 욕망과도 같다. 하여, 겸손함은 끊임없이 우리를 변이시키는 무한한 가능성의 힘이다.
[ 만인에게 겸손하라! ]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례하거나 퉁명스럽고 자기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공경한다면 당신은 이등 시민으로 남을 것이다.
- 조지 와인버그 -
우리는 보통 물질적, 정신적으로 자신과 동등하거나 상위에 위치한 사람들에게만 겸손함을 갖는다. 자신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에게 존중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척도이다. 사람을 나누고 재단하는 척도가 오직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학력, 소유한 물질에만 국한된다면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그러한 마음은 사심(邪心)이다. 사심은 곧 모든 비리의 원천이다. 간사한 마음은 타인을 수단으로 삼아 사리사욕을 추구하게 한다. 따라서 사회적 조건만으로 사람을 차별함은 인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시골에서 밭을 가는 농부가 도시의 상류층보다 열등하다 할 수 없다. 농부에게는 도시인들이 가질 수 없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있다. 이렇듯 사람을 평가하기 위한 척도는 위계와 서열이 아닌 오직 주체의 행위와 인성으로만 국한되어야 한다.
겸손함이란 인간에 대한 보편주의가 수반되어야만 그 가치가 온전히 발현되는 감정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무시되었던 부류의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 청소년, 아이들을 존중하여 비근한 곳에서부터 겸손함을 발현해야 한다. 겸손함에 차별이란 없다. 누군가를 하찮게 여긴다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듯 만인에게 겸손하라! 그에 따른 좋은 평판은 당신에게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