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악은 거의가 무지에서 오는 것이며, 또 선의도 총명한 지혜 없이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히는 수가 있는 법이다. 인간은 악하기보다는 차라리 선량한 존재지만 사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들은 다소간 무지한 법이고 그것은 곧 미덕 또는 악덕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믿고서, 그러니까 자기는 사람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의 악덕인 것이다. 살인자의 넋은 맹목적인 것이며, 가능한 한의 총명을 다하지 않으면 참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는 법이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민음사, 176~177쪽 >
페스트의 부조리에 맞서는 이들을 보며 서술자는 말한다.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무지의 악덕"이라고. 그리고 무지로부터 벗어나 "총명을 다하지 않으면 참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는 법이다."라는 지성의 덕목을 말한다. 삶에서 어떠한 부조리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사건의 인과를 통해 상황을 인식한다. 그리고 기존의 관념, 신념, 습관, 지식을 동원해 대응을 강구한다. 문제는 어떤 이들은 무지와 맹목으로 인해 왜곡된 상황인식과 판단으로 부조리를 더욱 촉발하거나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서술자의 표현으로 이들은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부류이다. 극단적인 신념과 맹목을 오히려 선민의식으로 착각하는 부류의 근간에는, 편협된 지식 또는 무지에 의한 배타적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무지는 그야말로 뿌리 깊다. 전에 없던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어도 자신의 노선을 반추하고 점검하고 전향하고 수정하기보다는 자신의 맹목에 사실을 알맞게 끼워 맞추는 판타지를 자행한다. 결국 부조리를 편협된 신념, 맹목, 비과학으로 대응하여 또 다른 부조리를 낳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낸다. 부조리에 대응하는 책임 있는 자들은, 무지로부터 촉발되는 또 다른 부조리와 맞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처럼 맹목과 무지로 무장된 인간은 자신의 뜻과는 별개로 파멸과 혼돈의 매개체로 등장하여 사회를 갈등 속으로 몰아넣는다. 페스트와 코로나와 같은 인류의 목숨을 담보하는 거대한 부조리 앞에 지성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지적인 사고에 근거한 판단과 행위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돈의 시대에 자신과 타인을 지키는 필수사항이다.
담담함과 의연함
대개의 경우에 맺히고 딱딱해지고 메말라 있던 감수성이 때때로 풀어져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 속에 리유를 몰아넣곤 하는 것이었다. 그의 유일한 방비는, 그 딱딱한 상태 속에 피신하여 자신의 내부에 형성되어 있는 그 매듭을 다시 한번 단단히 졸라매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계속 견뎌 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환상을 많이 품지도 않았고, 또 피로 때문에 품고 있던 환상마저도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기간 중에 자기가 맡은 역할이 이미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역할은 진단하는 일이었다. 발견하고 보고 기록하고 등록하고, 다음에 선고를 내리고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아내라는 여자들은 그의 손목을 쥐고 울고불고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저 사람 좀 살려 주세요!" 그러나 그는 살려 주기 위해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격리를 명령하기 위해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때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그 증오심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참 인정이 없군요." 하고 누군가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천만에 그는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인정으로 해서 그는 매일 스무 시간을, 살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광경을 참고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인정으로 해서 그는 매일 같은 일을 다시 시작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민음사, 251쪽 >
주인공 리유의 책무는 페스트가 의심되는 사람들을 진단하는 것이다. 매일 공포에 질린 이들을 대면하고, 그들에게 죽음을 통보해야 하는 압박감이 리유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유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자신을 유지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는 인정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힘이 미치는데 까지 그들을 보호해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보건대 동지들과의 대화에서 환자를 대하는 그의 마음이 깃들어있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죽음과 불행이다." 이렇듯 병마로부터 환자를 살리는 것.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그의 지상과제였다. 다만 자신에게 맡겨진 누군가의 생사를 판결하는 그 잔혹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사람들의 애원을 외면해야만 했다.
부조리와의 맞섬은 기약 없는 지난한 싸움이다. 제어할 수 없는 모순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압력과 끝을 알 수 없는 팽팽한 긴장을 버티며 견디는 것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부조리로부터의 긴장과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가짐은 오직 담담함이다. 리유가 하는 일은 병의 진단과 선고였다. 병을 고치며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책무를 냉철하게 꾸준히 해내는 것만이,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인정이었다. 담담함은 떠밀려오는 페스트의 공포와 압력으로부터 리유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페스트의 창궐이라는 기약 없는 지난한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책무를 다할 수 있었다.
반면 부조리로부터의 긴장과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불안에 잠식당하는 경우, 인간은 두 가지의 단선적 함정에 빠진다. 희망 또는 절망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희망과 절망은 서로를 내포한다. 절망은 희망의 좌절이며, 희망은 절망의 불씨다. 현실을 외면한 희망은 절망의 도피처이며, 절망에 매몰된 인간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다. 모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부조리와의 기약 없는 대립에서 희망과 절망은 모두 허상이다. 미래와 과거에 대한 기대도 후회도 없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오직 현재에 집중하는 것. 이것만이 부조리에 맞서 나를 유지하여, 희망과 절망 어느 한쪽으로도 전도되지 않는 방법이다. 부조리에 맞서기 위한 노력, 공감, 연대, 성실에 앞서 우선 담담하고 의연하게 자신을 지키는 것. 곧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페스트의 종식과 함께 리유는 죽음의 전선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사랑하는 동지 타루를 잃는다. 사랑하는 이를 손 쓸 수 없는 끔찍한 질병에 잃는 슬픔. 그와 같은 경험은 살아남은 자를 끝없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한다. 하지만 리유는 담담하게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를 기릴 뿐이다. 그리고 또다시 아내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접한다. 리유는 그 역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물론 아내의 죽음은 몹시 가슴 아프지만, 슬픔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리유는 페스트라는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 지성을 통해 길을 찾으며 담담함과 의연함으로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다시 질병과 죽음이라는 부조리와 맞설 것이며, 예전처럼 자신의 책무를 다해 최선의 인정을 쏟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