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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고래 Sep 17. 2021

4. 부조리와 반항

알베르 카뮈 [페스트]

알베르 카뮈 [페스트]




< 부조리와 반항 >

생명이란 엔트로피의 비탈길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노력이다.
- 베르그송 -


열역학 제2의 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에너지는 무질서의 정도인 엔트로피(entropy)가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즉 에너지의 변화를 수반하는 특정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대상은 무질서를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이처럼 자연계에서 우연 또는 필연으로 생겨난 특정한 사건은 시간이 진행될수록 점점 외부와 섞이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열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흐르고, 열에너지는 운동에너지로 바뀌어 간다. 결국엔 섞이고 섞여서 더 이상 섞일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더 이상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엔트로피가 증가할수록 사건의 대상은 무질서가 증가하며, 엔트로피가 감소할수록 대상은 무질서가 감소한다. 물리적으로 자연계의 생명현상에는 엔트로피의 증가와 감소라는 두 개의 힘이 대립하고 있다.


페스트와 코로나19 또한 이와 같은 물리법칙을 따른다. 페스트는 세균이며 스스로 증식할 수 있는 독자 생존이 가능한 완전한 생명체다.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곳이면 어디서나 존재한다. 코로나19는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숙주 없이는 스스로 증식할 수 없는 반생명체다. 반드시 살아있는 생물체의 세포를 숙주로 삼아야 번식이 가능하다. 어느 시점, 이러한 특성의 생명체가 탄생하였고 모든 생명체의 지상과제인 생존과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무질서를 향해 뻗어 나아간다. 그리고 기생과 숙주가 필수조건인 이들이 향하는 무질서는 인간과 문명에 가닿는다.


이에 맞서 인간은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사건에 대항한다. 문명에 그야말로 치명적인 페스트 또는 코로나19라는 엔트로피의 증가를 억제하려는 인간의 반항이 시작된 것이다. 필연적인 엔트로피의 증가를 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곧 이성이다. 이성은 감각적 인간을 개념적 인간으로, 감정적 인간을 논리적 인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인간은 이성을 무기로 거부할 수 없는 물리법칙에 대항한다. 그리고 혼자서는 지극히 미약한 힘을 연대(連帶)라는 집단지성을 일구어 극대화한다. 이는 소설 페스트를 통해 카뮈가 그려낸 페스트에 대항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엔트로피의 비탈길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인간의 반항은, 개개인의 지성과 용기를 바탕으로 타인과의 이해와 공감을 통한 연대로부터 시작된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미세함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인간의 방심과 오만을 파고든다. 그리고 끊임없는 증식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발휘한다. 생존의 환경이 갖추어진 곳은 어디서든 증식하여, 어김없이 전염을 일으키는 정확성과 규칙성을 띤다. 또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변이라는 유연성까지 발휘한다. 이들의 가장 큰 무기는 외부 작용으로 소멸되지 않는 한, 결코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자신을 발현하는 성실함이다. 결국 인간에게는 페스트와 코로나19의 부단한 성실성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과제다. 세균과 바이러스라는 엔트로피의 증가를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엔트로피의 증가를 항상 압도하는 반항의 성실함이 필수인 것이다. 사건을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성. 타인과 함께 극복해 나아가는 연대, 공감, 이해. 이러한 덕목을 부단히 실행하는 성실함. 소설 페스트를 통해 부조리에 대항하는 우리에게 카뮈가 말하고자 했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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