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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걷달 Jan 28. 2024

나를 만나는 장소, 화장실 예찬

걷달 에세이: 내 인생은 당신과 다르지 않다


그곳은 사실, 우리의 천국인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를 위한 유일한 공간은 화장실이었던 것 같다. 가장 조용한 곳에서, 저 은밀한 곳에서 내가 나를 만난다. 빠른 숨으로 들어와서는 가장 깊은 숨을 내쉰다.


내가 나를 만나는 일은 계획된 일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방문에 , 어쩌면 나는 나의 방문에 놀라기도 할 것 같다. ‘전화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차마 그렇게도 못 하니 짜증을 부릴 만도 한데, 나의 방문을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린 듯이 이내 나와 사색을 나눈다.


화장실은 늘 곁에 있지만,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가장 급할 때 찾거나, 가장 무료할 때 찾거나.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친구 놈 같다.


하지만 또 막상 찾을 때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아니 그것보다는 나의 방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화장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평소에 화장실 위치를 잘 적어두고, 심지어는 비밀번호도 기록해 두어야 한다.

갑작스런 나와의 만남을 위해 화장실 비밀번호를 기록해둔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는 것은 분명 유튜브 때문이다. 한번 잡으면 놓지 못하는 기억은 첫사랑뿐만은 아닌가 보다. 쇼츠를 보거나 인터넷 기사를 읽거나. 첫사랑도 아니면서 놓지를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핸드폰을 놓고 들어오기도 하지만, 또 그때만큼은 가장 빠르게 화장실을 나오게 된다.


그래도 요즘 화장실이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내게 ’글 쓰는 공간‘이라는 것. 일 보는 거 외에 다른 데 시선이 안 가니, 온전히 집중하기에 좋다. 에세이도, 경제 뉴스도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글을 담는다.


오십 줄을 살면서 화장실의 변천사를 세 번은 겪었다. 흔히 푸세식이라 말하는 측간과 현대 수세식, 그리고 좌변기. 편리함을 떠나 어릴 때 측간은 나에게 많은 추억으로 속닥댄다.

당신은 측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지만 그때만큼은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 10분 이상을 앉아있어 본 기억이 없다. 글 쓰는 일을 생각한다면 지금 화장실은 너무 예술이다. 30분도, 한 시간도. 어쩌면 먹는 일만 빼면 하루종일도 가능할 것 같다.


가족들은 나의 이러한 일상을 이해하고 놓아준 지 오래다. 집안에 아빠가 보이질 않아도 나를 금방 찾는다. 글을 쓰다 보면 한 시간은 금방 가니까. 어쩌면 나의 천국은 화장실이 아니라, 나를 잃어도 나를 찾지 않는 가족 때문이리라.



재즈 음악을 듣는다. 유튜브 릴랙스 뮤직 방송에서 실시간 파리 에펠탑 동영상을 틀어 주고 재즈를 보낸다. 한결 마음이 편해지니 노곤노곤, 글 쓰는 손 마저 잠이 들 것 같다.


배도 텅텅 비어 있어서 이내 잠이 들면 끝이다. 잠자기 전 화장실도 다녀왔으니 불편한 것도 없다. 글의 시작을 화장실에서 하고 끝점은 침실에서 맺는다. 이불의 포근함이 겨울을 녹인다. 이제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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