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달 에세이: 내 인생은 당신과 다르지 않다
짙게 녹슨 철물을 보면, 내 삶인가 싶은 거야.
겨울 길을 걷다가, 어느 문 닫은 공업사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공작기계의 녹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집 안에서는 볼 수 없는 녹슨 철물은, 흔한 듯 낯설다.
여기저기 손때 묻은 장갑들은 차치하더라도, 오랜 세월을 함께 숨 먹은 철골의 녹은 명상보다 고요하다. 겨울바람이 철봉에 일어, 자세히 보면 먼지 한 톨이 녹 위에 잔잔하게 앉아 물을 머금어 파도를 만든다.
나는 녹(綠, rust)에 대해, 어원을 자세히 알아본 적은 없었다. 그저 녹은 절대 슬지 않게 모든 것들을 잘 관리해야 할 부정(不淨)으로만 알고 있었다. 녹이 슬어 애당초 약해지지 말아야 할 것들이 부서지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고 세상은 말한다.
녹슨 공구함을 지나 어느 공업사의 철문을 바라본다. 아직은 제 할 일을 다할 것처럼, 굳게 서 있는 모습은 안정을 넘어 경외스럽다. 저 인생도 내 인생처럼 곡진 세월의 흔적으로 생을 살아가는 듯했다.
평소에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 가장 아련한 것이 부모님이다. 내 몸뚱이야 내가 알아서 한다지만, 이제 연로하신 당신은 스스로의 녹을 가린 채로, 여전히 뒤돌아 보며 떠나는 나에게 괜찮다고 손짓만 하신다.
아는 선배님과 식사를 하다가 ‘저는 은퇴가 없습니다’라고 짐짓 자신 있게 이야기했더니, 웃으신다. ‘내 나이가 되면 생각이 바뀔 거야’라고 하더니, 이내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멈춘다. 아직 나는 선배의 녹을 보진 못했지만, 선배는 이미 숨겨진 나의 녹을 그의 경험을 빌어 보고 있었던 듯 하다.
그럴진대, 내 부모의 녹은 얼마나 많이 슬었을까.
언제나 그랬듯이 ‘있을 때 잘 해라’라는 말이 새삼 머리를 흔든다. 그것은 내 감정선이 예민해져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그 나이가 되어서 자연스레 나타난 것 같다.
녹슨 철골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꼭 아부지 어무니를 빗대어 이야기하지 않아도. 지나치지 말아야 할 사라질 것들이, 어느새 많아진 나이가 되어 버렸다 생각하니, 슬프다.
스스로 자신만만했다가 길가에 버려진 공구의 녹을 보고, 부모님을 생각하고, 결국 내 인생을 곱씹는다.
스스로 깨닫지 못 한 내 마음의 녹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그리고 오늘밤엔 녹이 슨 채로 내 앞에서는 누구보다 단디 서 있는 아부지께 전화 한 통이라도 드릴까 고민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부모님 앞에서 감사해하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티를 못 내겠다.
오십 줄에도 애처럼, 마치 내 인생의 녹을 보며 남을 생각하는 밤에도. 나는 제 아비에게 안부 인사도 못 한채 또 잠이 들어버린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