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달 에세이: 내 인생은 당신과 다르지 않다
뭐지?
눈물 펑펑 흘리면서 진료실을 나오는 아내를 보고 의아해했다. 고양이 백신 주사 맞히러 들어갔는데, 왜 우나 싶었다. 순간 가벼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심장병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어쩐지.. 주사 맞히러 한참만에 들어가서 이제서야 나오더니. ‘심장병이라고? 이렇게 멀쩡한데?’ 의사 선생이 잔뜩 겁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고양이들은 다 하나씩 병을 가지고 있대. 별거 없어.
위로해 준답시고 아무 말이나 던졌는데, 그게 내 심장을 순간 파고든다. 툭 던졌는데, 아내보다 먼저 나를 찌른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물병원을 나왔고, 어느새 밖은 어둑어둑 해졌다.
들은 기억도 없는데, 아내가 일어나자마자 오후에 고양이 병원 검진이 예약되어있다고 말한다. 원장 선생님 진료라 반드시 가야 한다고.
나 오늘 집에 없어. 걸으러 나가는데?
지난주부터 내게 말했다고 한다. 들은 기억이 없다. 내 귓구녕이 고장 났는지, 기억력이 단세포가 되었는지. 아니면, 정말 못 들었을 수도 있다. 아내가 쓰레기통에 이야기 한 걸, 나한테 말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는 거니까.
싸우면 무조건 내가 진다. ‘알겠다고 하고’ 내 오후 스케줄을 취소했다. 요즘 매주 장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내일로 연기했다.
한 주라도 빠지면 연속 기록이 깨진다. 앞으로 5개월 남았다. 만일 오늘이 일요일이었으면, 내일 휴가를 냈었을 거다. 그만큼 기록 쌓기는 내게 아주 중요하다.
로아, 오늘 백신도 맞추고 간단한 건강검진도 있어
‘로아’는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이다. 딸아이가 지었고 ‘아스트로’ 팬클럽에서 따왔다. 어릴 때는 트와이스를 좋아하더니, 남자를 구별하고부터 내 사랑 아이돌이 아스트로로 바뀌었다. 얼씨구나~
로아는 21년 7월에 태어났고 그 해 9월에 입양하였다. 거금 5~60은 준 것 같다. 딸아이하고 충무로 강아지 구경 간다고 나가더니, 아내가 오후에 작은 박스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애 웃음이 함박스테이크인 반면, 아내는 얼굴이 오만상이다.
아휴, 죽어도 그냥은 못 간다고 버티더니. 결국 고양이를 샀어.
헐… 반려견도 아니고 반려묘? 집에서 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다. 아내도 똑같다. 동물을 키우면 털도 날리고 오줌도 싸고 할 텐데. 걱정은 쳐다보지도 않고 딸아이는 춤추며 난리도 아니다. 그렇게 로아는 아내와의 합방도 없이 우리 둘째가 되었다.
이 녀석은 품종이 러시안 블루이다. 온몸이 잿빛이고 반들반들하다. 3개월에 한 번씩 털이 무성해지는데, 그때마다 미용실을 간다. 단골 미용실이 서울 망원동에 있다. 덕분에 미용실을 갈 때면 망원시장을 들르고는 한다. 시장은 참 재밌는 곳이니까. 그 점은 나도 좋았다.
러시안 블루 고양이는 매우 순한 편이다. 이 녀석도 꽤나 조용하다. 아침마다 골골대기는 하지만, 하루종일 말이 없다. 밍밍 소리도 거의 안 낸다.
털도 잘 안 빠지고. 한 가지 흠이라면 침 묻은 코로 내 발등을 킁킁대며 문덴다. 아우… 난 정말 싫다고. 아내는 고양이만큼 깨끗한 동물도 없고, 좋아서 그러는데 왜 그러냐고 한다. ‘나도 깨끗하고, 내가 침 묻은 입으로 아침마다 네 발등에 묻히면 좋겠냐고’ 혼잣말을 한다(물론 묻히는 나를 상상하는 것은 더욱, 정말, 기필코 싫다)
고양이 특성상 수시로 소파를 긁어대느라 가구가 남아나질 않는다. 그렇게 우리 집 최고가 고품격 소파는 이미 노숙자가 되어 버렸다. 그런 이 녀석이 오늘 심장병이 걸렸다.
아내가 퇴근해서 오자마자 회사 이야기다. 아니, 좀 집에 오면 안부도 묻고, 애 밥은 먹었는지 궁금해하는 게 정상 아닌가? 물론 한 소리 하면 그때서야, ‘밥은 잘 먹었니? 학교는 잘 다녀왔고?’ 한다.
그러고는 또 틈도 없이 회사 이야기다. 쫑알쫑알하는 것이 싫지는 않지만, 귀를 쫑긋 듣지 않으면 또 뭐라
한다. 그래, 오늘 쫑긋 들을게. 듣고 있다고.
“아니, 글쎄. 옆에 차장님이 애가 암에 걸렸다고 대출을 2천만 원이나 받았지 뭐야?”
“응? 애가 몇 살이길래 벌써 암이야?” 조심스레 물으니 웃는다. “아니 애가 강아지야. 글쎄 강아지가 암에 걸렸는데, 난 처음에는 진짜 자녀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니까? 근데, 강아지더라고. 근데, 암에 걸렸다고 그걸 치료하는데 2천이나 대출을 받는 거야? 헐…“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내만은 아니었다. 어찌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프다고 대출을 2천이나 받는담?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혀를 끌끌 찼다. 연로하신 부모님도 언제 큰 병원에 가실지 걱정인데. 원래 반려견을 키우면 다 그러나? 하고, 내 일 아니니까 그냥 잊어버렸다.
아내가 주섬주섬 통장을 살핀다. 아직 결과가 나온 게 아니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싶었는지, 심장초음파 병원을 예약한다.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남 이야기가 아니지. 그냥,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를 내가 이해하기 시작했다.
로아 저 녀석은 자기 심장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결같다. 늘어지게 자고, 또 발등에 와서 코를 묻힌다. 가만히 있었다. 그래 묻혀라. 심장에 좋은 일이라면 잔뜩 묻히게나.
고양이 발을 두 손으로 들고 녀석의 눈을 쳐다본다. 그 녀석도 가만히 응시한다. 그러고 주절주절. 그래, 돈이 얼마가 들든 고쳐주마. 네 녀석도 문제지만, 너 때문에 가족들 눈에 피멍이 생기겠단 말이지.
한참을 들고 있었더니, 녀석이 싫증 났는지 발퀴를 휘감고 냅따 거실로 도망가버린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