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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걷달 Nov 08. 2020

브랜딩, 그리고 저평가

브랜드를 모르면서 브랜딩을 말하다


브랜딩은 ‘가슴에 탁!’ 하는 그것


   나의 상사는 브랜딩 전문가이다. 홍보팀에서 브랜딩만 20년을 하셨다. 나는 홍보 업무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한다. 하지만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조직에 낑길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렇다.

낑기다: ‘끼이다’의 전라도 방언. 그렇다. 난 전주에서 학교를 나왔다


   브랜딩이란 컨슈머에게 독자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전략, 스토리, 표현과 행동의 전 과정을 말한다. 어떻게 보여져야 할지,  어떻게 ‘가슴에 탁’ 하고 파고들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상사를 모시는 나로서는, 홍보와 같이 기업의 브랜드와 상관없는 일을 하더라도 늘 끊임없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브랜드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일은 우리에게 어떤 실효가 있는지?’, ‘그것은 컨슈머(따로 소비자가 없으면 이해관계자 정도)에게 어떻게 포지셔닝되어야 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것을 지금 왜 해야 하는지, 얻는 게 무엇인지도 질의사항 중 하나이다. 나도 꼼꼼하다 생각했는데, 더 꼼꼼한 양반을 만나면 그것은 장난이 아니다. 정도의 깊이가 1단계, 2단계를 지나서 바닥까지 헤짚는 순간 나는 그냥 어린애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저 가슴속에서 자존심이 슬금슬금 기어오르고, 그것을 억누르는 일은 매일 나를 수련하게 만든다.


브랜드와 브랜딩:
브랜드는 ‘고정의 개념’이고 브랜딩은 ‘과정의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로고나 마크, 상징, 색상 등 ‘떠오르는 것’이 브랜드이고, 그러한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브랜딩이다. 과정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 가는 것은 ‘브랜드를 브랜딩’ 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복잡하다.


와이프는 고평가, 나는 저평가


   ‘엘지생건’ 차석용 대표의 ‘그로잉 업’을 읽다 보면, 그의 브랜딩 철학을 통해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업무와 관련된 브랜딩은 그렇다 치고, 나 자신에 대한 브랜딩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쉽게 말하면 평판이고 개성일 텐데, 그동안 나는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나의 개성을 버리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좋은 평판과 개성이 서로 어우러졌다면 일거양득이었겠지만, 평판은 늘 ‘저평가’에 머물렀다. 매 순간 고민이었던 게,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평판과 개성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하나 할 정도로 그것은 나에게 큰 고민거리였었다.


사실 되게 억울했다. 결혼할 무렵 와이프와 처음으로 싸웠다. 와이프가 회사 사람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렸더니, ‘축하’ 보다는 ‘다시 생각해봐’라는 충고를 너무 많이 들었댄다. 와이프와 나는 CC(company couple)다. “아니 근데, 뭐야... 축하가 아니라 다시 생각해 보라고? 그거 다들 장난으로 그런 거야. 개의치 말아”라고는 했지만, 와이프는 심각했고 나는 심난했다. 와이프는 고평가 되었고, 나는 저평가 되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이 상황은 14년이 지났어도 깨지지 않았다. 누구나 아파트는 저평가를 찾으면서도 평판이 저평가인 사람은 찾지를 않는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평가 되었으니까 알려야지. 나는 아파트가 아니니까 스스로 움직일 수는 있었다.


일부러 바꾸려 하지마. 그냥 너 대로 살아.


   예전에 ‘평판’은 내가 만드는 거라 생각했다. 나의 행동과 말로 인해 평판은 100% 만들어진다 생각했는데, 사실 평판은 내가 아닌 ‘남이 만드는 것’이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도 평판이고, 평판을 통해 나를 뭉개는 것도 결국은 ‘남의 마음대로’이다. 그에 비해 ‘개성’은 나의 성향, 나의 색깔이기 때문에 남이 만드는 평판에 구애받지 않고 나 자신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라 생각한다.


   결국에 나는 평판까지 고려 한 ‘개성’을 브랜딩 하지 못했지만, ‘개성’을 바꾸면서까지 좋은 평판을 브랜딩 하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는 후배에게 평판 쌓는 일보다는 너의 색깔을 지키는 것이 너를 오래도록 빛내는 일이라고 말해준다. 평판을 위한 ‘연출된’ 브랜딩이 아닌 나의 개성을 ‘지키는’ 브랜딩으로 거듭나는 것도 ‘가식 없는 늙음을 위한 길’인 것 같다.




‘푸라이데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딩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매 주 금요일마다 초대손님을 구하고, 이야기를 위해 그분에 대해서 사전 조사하거나 또는 그 분의 업을 연구한다. 그리고 몇 개의 질문 꺼리를 만든다.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은 아주 어렵지 않다. 몇 개의 정점만 있으면 이야기는 자연스레 풀린다. 와인이 있어 더욱 그렇다. 다만, 매주 금요일은 특히나 다들 힘든 마지막 평일이기에, 심리적 압박이 있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오셨던 손님 모두가 힐링 하고 가셨다는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주인장, 초대손님, 그리고 네트워커(나의 역할을 뭐라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다), 와인, 비즈니스, 그리고 힐링. 이 모든 조합을 ‘푸라이데이’에 녹이고 싶고 브랜딩하고 싶다.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흘렀으므로, 아직 갈 길도 멀고 갈 곳도 모르겠다. 브랜드도 잘 모르면서 브랜딩을 하고 있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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