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을 그루핑해 보았다.
여러 가지 사유로 생각이 부쩍 많아진 요즘.
언제나 쉽지 않았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 [디자인]을 하면서 [디자이너]로써 살아남으며 한 번씩 벽을 마주한 것 같은 날들이 생기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닐 터. 물론 늘 그랬듯... 또, 이 조차 딛고 일어날 것이지만!
자, 아무튼 그런 의미로 이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를 잠시... 홀로 입안에서 곱씹다 보니- 문득 이 하나의 단어에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그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부여하거나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그에 따라 디자이너를 대하는 태도마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어느 정도 클리셰 같은- 그 전형적 태도들을 나누어 '디자인/디자이너'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유형별 그루핑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문득 이번에는 디자이너로써 살아오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이 주제로 분류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재미 삼아 정리해 본 유형은-
도구를 따지는 장인 타입
무례한 친척 어른 타입
계몽가 타입
기대심 많은 중대장 타입
겁 많은 소금쟁이 타입
각 타입들에 대해서는 아래 자세히 정리해 보았다.
가장 먼저, 첫 번째 부류는- 그래도 가장 바람직한 유형을 먼저 짚고 넘어가는 것이 기분 좋지 않을까 하여 꼽아본 유형. 우리의 옛말에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진짜 장인일수록 도구도 따지게 되는 법.
진정한 장인들은 범부들이 보지 못하는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신경 쓰는 만큼, 도구 하나를 쓰더라도 좋은 도구에 대한 욕심을 항상 가지고 있다. 범인들의 눈엔 별다를 것 없는 비슷비슷한 디테일의 차이도 장인의 눈에는 엄청나게 느껴지기 때문.
자- 아무튼 그렇기에... 이들은 그 도구를 아낄 줄도 알고, 어떻게 사용할 때 최선의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는지도 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유형은 디자인을 유용한 도구로써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유형의 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 유형의 사람들이 '장인'이라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단순히 디자이너를 아무렇게나 쓰기 좋은... 적당히 입력값을 입력하면 결괏값을 출력하는 만능 기계/툴 정도로 치부하는 이들과 차별점이 생기기에...(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AI로 인한 디자이너의 종말을 생각한다고 본다.) 아무튼 그렇기에 이 유형의 타입은 각각의 서로 다른 도구(디자이너)가 가지는 원래의 쓰임과 목적성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안다고 할까. 설마 장인이 드라이버를 들고 망치질이 잘 안 된다며 드라이버를 탓하지는 않을 것이고, 미싱기계가 있다고 더 이상 핸드 스티치가 불필요하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 유형은 무엇보다 디자인에 대한 안목과 이해도가 높다. 그렇기에 뛰어난 디자인이나 디자이너를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이를 '적재적소'에서 활용할 줄 안다. 그럼에도 이들은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원치 않는다. 디자인 자체가 목적이 되기보다- 본인들이 진짜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서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로 디자인을 보는 냉철함 또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꼭 친하게 지내기를 권한다.
두 번째 부류는- 사실 이 주제를 떠올리며 가장 먼저 떠오른 타입.
어찌 보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많은 부류이지 않을까. 그만큼 디자이너로 살다 보면 의외로 가장 흔하게 겪게 되는 타입.
일단 이 부류는 디자인이라는 업종과 크게 관련이 없거나 관심 없는 일반인들이 많다.
**물론 이 전재에 속하는 모두가 그렇다는 말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아무튼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디자인과 미술을 마치 이음동의어와 같은- 큰 차이 없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명절에 오래간만에 만난 친척 어른들이 무심코 한 마디씩 던지는 모습에서 자주 느낄 수 있는 유형. 그들에게 디자이너는- 그저 그림 좀 그리고, 손재주 좋은 예술가 혹은 작가를 조금 더 그럴싸한 명칭으로 불러주는 느낌이다. 하지만 돈은 그다지 잘 벌지 못하는... 그래서일까?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가지는 이해할 수 없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디자인을 '쉽게' 본다는 것. 이들에게는 존중이 부족하다. 그들에게 디자이너는 일반 사무직 종사자들이 ppt를 만들 때 서체를 고르고 이미지나 도표를 넣는 것을 좀 더 깔끔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제품에 그저 부가적으로 이쁘게 꾸미는 일을 하는 사람정도의 인식으로 느껴진다. 그들은 아무리 디자이너의 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일지라도- 그까짓 거 그냥 이쁜 서체 대충 골라서 적당히 배치하고 그림, 사진, 색깔 적용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혹은 뭘 그거 하나 하면서 그렇게 까지...라는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아무튼간에 이상하게 무례한 사람이 많은 그룹.
이번에 이야기할 타입은... 솔직히- 디자이너들만 속한 유형 아닐까.
그만큼 누구보다 디자인에 대한 애정이 깊고, 관련 공부도 많이 한 유형. 이들에게 디자인은... 일종의 사상, 혹은 애티튜드에 가깝다. 이들에게 디자인은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혹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 방법론, 태도, 사고방식이니까. 그리고 이 유형의 사람들에게 디자이너는 당면한 문제상황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궁구하여 깨달은 선지자로서- 아직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중생들을 계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계몽가다. 그것이 마치 당연한 직업윤리라 느낀다.
하지만 그런 만큼, 때때로 이 유형에게 디자인에 대한 그 애정이나 신뢰가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도 사실. 이들은 디자인을 사랑하고, 애정하는 만큼- 일에 있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맡은 부분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했다고 자부하기에... 제안을 함에 있어- 의견을 피력함에 있어- 적극적이다.
그리고 종종 그 열의가 과열되는 경우도 흔하게 생기는데... 이때, 이들은 연구하고 리서치하며 깨닫게 된 사실, 그리고 해결방안 등에 대해 의견 피력을 넘어 가르치려 들거나, 수용되지 않을 경우- 고구마 수십 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필드에서... 본인들이 제시한 방안에 대한 결과를... 이들이 직접적인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 책임은 그 제안을 수용한 측에 있으니까. 그렇기에 해당 유형은 겸허함 또한 갖출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들이 제시했던 방향이 결과적으로 옳은 방향이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선택은 이들의 몫이 아니다.
또한 언제나 디자이너의 시선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같은 문제를 보았을 때... 고려되어야 하는 사항이나 우선순위가 다른 경우가 있다는 것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해당 유형은... 어쩌면 디자인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속해 있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사실 가장 골치 아픈 타입.
이들은 단적으로 말해, 군대에서 중대장이 작업병 1을 보는 정도로 디자이너를 여기는 유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필요한 모든 분야에 언제든 투입해 막 써먹기 좋은- 상시 대기 중인 작업병(잉여 인력).
이들에게 디자인이란- '남들 보기에 적당히 그럴싸-한 정도로 꾸미거나 정리하는 일' 정도가 아닐까. 그렇기에 안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고부가 가치의 일이나 활동들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앞서 말했듯 이들은 디자인에 대해 어설프게 쌓은 지식이나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흔한 커리어 관련 아티클에서 볼 수 있는 '바람직한 디자이너의 덕목 10가지!' 이런 것들을 너무 많이 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이들은 서로 다른 디자인의 세부 전문 분야(UX, 브랜딩, 제품, 콘텐츠, 그래픽 등) 디자이너들에게 요구되는 각기 다른 덕목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그냥 디자이너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디자인, 기획, 마케팅 관점, 제품 개발, 세일링 관점, 기본적인 개발지식, 전략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비즈니스 상 발생하는 일손이 모자란 모든 곳에 투입하고자 하며, 당연히 그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지만 과도한 기대만큼이나 '유독' 다른 직군보다 디자이너에게 원하는 요구사항이 많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상하게 디자이너에 대한 존중이 낮다. 그렇기에 온전히 믿고 맡기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딱 기대심이 많은 중대장. 작업병에게 일을 시키면서도 그들의 마음 한구석엔 항상 불신이 있다. 그러니...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려 하고, 섣부른 판단이나 실망도- 빠른 편.
이 유형과 함께 할 경우... 이들은 요청사항에 대해 명확한 전달을 하지 않더라도 디자이너라면- 눈치껏(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그 모호한 니즈를 잘 알아채고 완벽한 결과물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며, 본인을 납득시킬 것을 요구한다. 또한 단순히 디자인 영역 외에서도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방면에서 서포트해 주기를 바란다. 슬프게도 이들에게 그것이 당연한 디자이너의 덕목인 것.
그렇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그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럴 경우 빠르게 실망하고 실력이 없는... 혹은 의욕이, 주인의식이 없는 디자이너로 치부하기 일쑤.
"본 중대장은 귀-디자이너에게 실망했다."
마지막 유형은 디자인을 지나치게 어려워하는 부류.
이 유형은 디자인을 특별히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 큰 분야로 여기거나, 특정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 접근 가능한...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로 느끼는 유형이다. 그렇다 보니- 평범한 자신들과는 연관이 없는 영역으로 선을 긋고, 최대한- 어떻게든 이쪽과 관련되려 하지 않는다. 모든 유형 중에 가장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유형.
한여름 물가에 떠다니는 소금쟁이를 본 적 있는가? 작은 파동에도 순식간에 멀찍이 멀어지는 잽싼 모습. 이 유형의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면 간혹 그 모습이 연상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좋게 말해 디자인을 어렵게 느낀다는 것이지... 어찌 보면 디자인을 무서워한다는 인상에 가깝다. 그것도 아니면 누구보다 디자인에 무관심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타입의 사람들은 이야기를 해보면 항상 공통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본인들은 어렸을 적부터 지독히도 그림을 못 그렸다는 것.
이 부분에서 디자인을 단순히 미적인 영역과 동일시하는 두 번째 타입과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디자인이 음악/체육 쪽과 비교하면 가장 재능의 영역이 적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사담이지만 나는 입시미술학원 강사 출신으로 수많은 제자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대학을 보내 보았고, 현업에서는 수많은 주니어/시니어 디자이너들을 접해왔다.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이 영역은 재능 20%, 노력 80% 정도의 분야다. 그리고 그 정도의 재능은... 정말 타고난- 저주받은 재능의 몇몇이 아니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유형들 중에서 특히 이 유형의 사람들은 함께 했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거나 아쉬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