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과 동생, 그리고 전설의 고향

기억 속 여름, 달콤하고 무서웠던 밤들

by 그리니 의 창가



여름은 더웠다.

하지만 여름 과일이던 수박을 맘 놓고 먹을 수 있었다.


수박을 유난히 좋아하던 내 동생.

달고, 배부르고, 시원한 수박을 그는 참 잘도 먹었다.


그에 비해 나는 수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주 화장실을 가야 했고, 무엇보다 전설의 고향을 하던 날에는

절대로 수박을 먹으면 안 됐다.


화장실이 집 안에 있음에도

그 무서운 분위기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었다.


특히 “내 다리 내놔…”라는 대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금이 저려왔다.

특별히 무서운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그 배경음악과 설정, 분위기만으로도

우리는 한 이불속에서 눈만 빼꼼히 내놓은 채

엄마 옆에 최대한 붙어 앉았다.


손에는 땀이 고였고,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숨을 죽이며 서로의 팔을 꽉 잡았다.


수박의 달달한 맛도,

어릴 적 내 동생의 웃음도,

무서웠던 공포 영화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였기에

모두가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무더운 여름밤, 수박의 달달한 맛과 전설의 고향 속 으스스한 장면들,

그리고 한 이불속에서 손을 꼭 잡고 있던 세 자매의 기억.

겁이 많았던 나, 수박을 좋아하던 동생,

그리고 무섭지만 함께였기에 웃을 수 있었던 그 시절.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작고 선명한 추억들이,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서 오래도록 여름처럼 반짝입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