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그래도 정..
항상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의 추억이고 엄마가 되고 나서는 저렴하고 싱싱한 먹거리를 사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신혼에 살던 동네에서도, 둘째를 낳고 십 년을 넘게 산 동네에서도 내게 잘 맞는 시장을 잘 찾아내었는데, 올해 이사 온 동네는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인데도 맘에 드는 시장을 못 찾아 마음을 못 붙였다.
마트에 가도 그 쌀쌀맞은 가격과 양에 불만이었다.
동네에 익숙해지니 화, 금요일에 우리 아파트에 오시는 야채 트럭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항상 내게 존댓말을 하시고 애기 엄마나 사모님이라는 호칭 대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사장님’이라고 불러주셨다. 그 사장님 소리가 비굴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그저 내 귀에는 손님으로 들렸다.
이 동네가 워낙 오래되어서 아침에 이 야채 사장님이 천막을 치시면 점심 전후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소일거리 삼아 주전부리하시면서 치킨도 시켜 드시고 노신다. 여름에 장을 보러 갔더니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오이를 사는 내게 조리법도 알려주시고, 오이지도 하라고 하셔서 얼결에 오이지도 담갔다. 치킨을 먹고 가라고 권하시길래 손사래를 쳤지만 맥주가 있었으면 아마 앉아서 어르신들 싫어하는 퍽퍽 살을 하나 뜯었을 것도 같다.
오늘 대파, 단감, 떡볶이 떡, 어묵, 순두부, 애호박 등등을 사면서(기본 판매 품목은 정해져 있지만 조금씩 매번 바뀐다. 떡볶이 떡은 큰 거 한 봉지만 한정(?) 이길래 냉큼 집었다) 쪽파 다듬은 것을 여쭈니 아직 못 다듬었다고 다듬어 주신단다. 큰 한단에 5천 원이라는데 다듬어도 5천 원이라고 하신다. 맙소사!
이건 친정엄마도 안 해주실 서비스라 원래는 한 주먹만 사서 고명이나 계란말이에 쓰려다가 노선을 바꿨다. 파김치를 담기로 했다. 겨울에 먹는 파김치는 파의 맵싸한 맛이 코를 스치면서 마지막에 쨍한 단맛이 난다. 곰탕을 끓여 밥을 말아 파김치를 올리면 세상 든든하다. 떡만둣국을 끓여 파김치를 같이 먹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삼겹살을 구워 파김치랑 먹으면 보양식을 먹은 듯하다. 군고구마에 파김치를 얹어 먹고 막걸리를 마시면 그동안 세상 근심은 사라진다.
오후에 가지러 온다 하니 부득불 배달을 해주신단다. 금세 그 큰 파 한 단을 다듬어서 집에 가져다주셨다. 너무나 감사하다.
깨끗한 파를 씻기만 해서 멸치 액젓에 절이고 풀을 쑤려고 보니 쌀가루가 없다. 밥으로 풀을 쑤니 시간이 세배가 걸리지만 파를 다듬어 주셨으니 일이 아주 쉽다. 하던데로 풀에 고춧가루를 불리고 양념을 치대니 황홀한 맛이 난다.
멸치 액젓이 조금 모자랄 거 같아 길을 나섰는데, 어둑하니 해가 졌는데 아직 야채 천막이 남아 있다. 겨울에 부지런히 무를 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무를 샀는데 파장이라고 콩나물을 한 봉지 더 주신다. 낮에 500원을 깎아 주셔서 무값 1,500원을 2천원 드리고 도망 왔다. 굳이 잔돈을 주시려는데 손이 부끄러웠다.
"잔돈 가져가요~!"
"괜찮아요~콩나물도 주셨잖아요~!"
"그건 내가 그냥 주는 건데~"
"안 그래도 콩나물 사려고 했어요!"
오랜만에 시작한 학원 강사 일을 학원 셧다운으로 한 달 만에 접었다. 그래도 내겐 재택근무가 남았지만 자영업 하시는 분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리기 조차 어렵다. 각박하고 예민하고 으르렁대는 세상에서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다.
우리가 남이가... 그 정 싫어서 도망도 다녔지만 그래도 정, 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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