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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Dec 03. 2021

엄마, 그 쓸쓸한 뒷모습

양손에 가득한 짐과 외로운 등에서 나를 본다

최근에 음악학원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음악선생을 하며 오케스트라 지휘를 오래 했지만 계약직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설움이 되풀이 되었고, 정규직 아니 무기계약직이라도 꿈을 꾸던 나는 그 꿈을 곱게 접었다.

오랜만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니 너무나 즐거웠다. 다시 가르칠 수 있다니 설레었다. 


사교육 시장에 나서는 내게, 경력이 지긋한 학원장 선배님들의 충고는 너무나 유용했다.

음악학원 선생은 선생이오~ 하기 전에 간병인의 마음 가짐을 가지라고 했다. 맡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친절하고 상냥하고 안전하게 데리고 있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했다.

음악학원은 사실 보육기관에 가깝다. 맞벌이나 바쁜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돌보고 다음 학원에 인계하는 것까지가 내 몫이다.

그 간의 경력, 몸 담았던 학교, 졸업한 학교는 국에 얹은 쪽파 같은 존재였다. 없어도 그만 있으면 좀 나은..

이미 갑을관계도 아닌 갑을병정의 '정'즈음을 담당하던 나는 더욱 더 몸을 낮추었다.


인수한 학원의 전원장님은 인근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을 오후 느지막히 데리러 다니셨다. 나도 그 뒤를 이어 바쁜 수업 중에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그렇게 나는 남의 아이를 맡아 안전하게 보살핀다.


최근에 들어온 형제는 아주 특별했다. 형은 중3이었고 동생은 초2였는데 나이 차이가 그렇게 나는데도 피아노는 둘 다 초보였다. 두 형제는 서로 경쟁을 하며 진도를 잘도 뺐다. 어찌나 모범생이고 사랑스러운지 이런 형제는 정말 보물 같았다.

등록한지 한달 쯤 지나, 그 어머니가 재취업 소식을 알렸다. 나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둘째 아이를 처음으로 돌봄교실에 보내는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했고 그 아이를 늦지 않게 데리러 갈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했다.

나는 기꺼이 "제가 데리고 올게요" 했다.

그 어머니는 그게 가능하냐며 너무 감사해 했고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서로 돕고 살면 좋죠~" 나는 진심으로 기쁘게 그 아이를 같이 데리고 왔다.


오늘 그 작은 아이가 책가방을 학원에 두고 갔다. 마침 형도 귀가한 후에 발견한 터라 형에게 전화를 했더니 나중에 가지러 온다고 한다. 나는 가방을 학원 현관에 두었다.


물 먹은 솜 같은 몸으로 팔을 덜덜 떨며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데 현관에서 가방 가져가는 소리가 난다. 뛰어 나가보니 그 어머니가 퇴근 길에 아이 가방을 들고 가신다.

왼손엔 계란 한 판을 담은 비닐 봉지, 오른손엔 비닐에 담긴 모두부와 900ml 우유 두 팩이 들려 있고 어깨 한쪽엔 본인의 큰 가방, 다른 한 쪽엔 아들아이의 책가방이 걸려있다. 그 뒷모습을 보니 내가 보인다. 그 외롭고 피곤한 어깨를 보고 내 거친 손을 보니 그냥 보내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어머니는 반색을 하고 돌아서서 내게로 왔다.

아이들이 정말 잘 하고 있고 너무 예쁘다고, 이런 아이들이 있어서 보람 있다고 진심으로 말을 했더니 그 어머니의 표정이 밝다. 직장에 오랜만에 복귀한 어머니는 얼마 전에 만난 그 얼굴이 아니다. 반쪽이 되었다.


손에 든 물건만 봐도 그이의 피곤함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어머니는 아이들이 너무 피곤해해서 음악학원을 쉴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가슴이 철렁한다. 아이들이 슬슬 떨어져 나가는 겨울, 신학기 전까지는 참 어려운 시기다. 하지만 어머니가 보살피지 못 하는 아이들의 피곤함을 잘 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게요~"라고 말 한다.

그 어머니는 비가 오면 자신의 아이를 데리러가는 내게 우산을 권하고 추운 날에는 조심하라고 톡을 한다. 고마운 분이다.


그만 두는 그 날까지 말을 안 하고 잠수를 타는 학부모도 있는 세상에 미리 말해주는 학부모는 더욱 값지다.

진심에서 우러 나오는 영업의 멘트를 한다.

"직장 다니시니 아이들도 어머니도 얼마나 힘드세요. 그래도 얼굴이 조막만해져서 예뻐지셨어요. 직장 다녀서 얻은 선물이네요~"


그나 나나 이제 집으로 돌아가 싱크대에서 손 씻고 바로 주방일을 시작하겠지.

당신의 고단함을 나는 완벽하게 이해합니다. 그러니 우리 이쯤에서 말 줄이고 각자 할일 합시다~ 는 눈빛을 서로 교환하고 동지애를 담은 미소를 교환한다. 뒤돌아 집으로 가는 그녀의 등에서 조금은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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