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친구도 아닌 이와의 이별이 이토록 사무치는 이유
"사모님은 이제 어디 커피숍에 가서 커피나 드시고 오세요~"
"그래요, 집 줄여서 이사하면 부부싸움이나 하고 분위기 안 좋아. 이사는 남편분이랑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나가서 놀다 와요~"
2년 전 정든 동네를 떠나 아이들 교육시켜보겠다고 추억이 깃든 책을 버리고, 영화 DVD와 CD를 정리하고 아끼던 피아노까지 팔아서 이사를 했다. 공간을 줄여서 이사 온 집은 낡고 우중충했다.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 기분을 잘 아는 이사서비스 업체의 아저씨들은 그렇게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풀어주셨다.
결혼하고 이사를 의도치 않게 좀 다녔다.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집도, 길게 길게 살고 싶었던 집도 잠시만 살고 싶게 정이 안 가던 집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시 살거나 길게 살았다. 넓고 환한 집으로 이사를 가는 날은 기분이 좋았지만 그 반대의 집을 갈 때는 마음이 심란했다. 이사하는 날 아침 풍경은 사람마다 그렇게 각각 다른 풍경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사서비스 업체 사장님은 첫인상이 참 선하셨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정중하게 견적을 내주셨는데 살~짝 비싼 듯 느껴졌으나 인건비라며 양보하지 않으셨다. 이사는 두 달 전부터 스트레스요, 하고 나서도 최소 한 달은 스트레스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일하는 사람에 따라 이사 후의 일이 확 줄어들기도 하고 전부 내 일이 되기도 한다. 추천한 분의 후기가 좋아서 한 번 맡겨보았는데 세상에 이 사장님은 정리의 달인이셨다.
붙박이장과 드레스룸의 옷을 싹 꺼내어 새집에 들어가서는 색상별, 소재별로 싹 깔끔하게 분류해서 걸어주셨다. 이불은 납작하게 다시 다 개어서 이불장에 새로 넣어주셨는데 부피가 원래보다 획기적으로 줄었다. 그야말로 마법의 손이었다.
붙박이장 조립도 다른 업체에서 엉성하게 해 놓은 것을 깔끔하게 다시 싹 손봐주셨다.
사장님의 사모님도 한 팀이셨는데 이 분은 싱크대 정리가 기가 막혔다. 그릇을 사용 빈도별, 색상별로 잘 정리하고 마른 식재료를 밀폐용기에 넣어 보기 좋게 수납해주셨다. 이 분이 정리한 주방에서 나는 새로 정리를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주방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장님은 같이 일하는 파트너들과도 얼마나 케미가 좋으신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일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나는 이 사장님과 내 인생의 이사 중 최근의 마지막 두 번을 같이 했다. 더 말할 것도 인상 찌푸릴 것도 없이 깔끔하게 일을 해주시는 분이고 사모님도 너무 좋으셔서 그리했다.
지금 사는 집으로 들어올 때는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곧 이사를 갈 거니까 다음 이사도 꼭 책임져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전세 계약 2년은 들어올 때는 길어 보이지만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다. 나는 이 집을 너무나 나가고 싶었다. 드디어 이삿날이 잡히고 나는 사장님께 문자를 드렸다. 답이 왔는데 번호가 바뀌었다며 다른 번호로 안내를 해주신다. 어? 이런 비즈니스 하시는 분이 번호를 바꿀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새 번호로 문자를 드렸고 그분이 견적을 받으러 방문을 하셨는데, 그 사장님이 아니셨다. 글의 첫 대화를 사장님과 아저씨 두 분이 주거니 받거니 만담처럼 하셨는데 그때 그 아저씨가 오셨다
"어머, 사장님이 안 오시고 아저씨가 오셨네요. 안녕하셨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 그 양반 사고로....."
"어디 다치셨... 어요?"
"일 하다가 사고로 떨어져서... 가... 갔어요.."
아저씨의 눈이 젖어들고 목소리가 떨린다.
나도 같이 눈이 그렁그렁해진다. 목이 메어서 말이 안 나온다.
"아니 어쩌다가 그 프로 사장님이...."
"높은 데서 떨어진 것도 아니에요. 1.5 층 정도라서 작업한 건데 머리부터 떨어졌어요. 그래도 응급실 들어갈 땐 나랑 말도 하고 잘 들어갔어요.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못 들어가고 혼자 수술을 받았는데 깨어나질 못 했어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아저씨와 나는 마주 보고 서서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이삿짐 나르는 분들의 얼굴을 누가 기억하겠냐만은 이 분들은 아주 특별했다. 이사를 축제처럼 만들어 주셨다. 얼굴 붉힐 일 하나 없이 적당히 농담을 건네며 유쾌하게 일 하시는 분들이었다. 서로 흉을 보기도 하면서 구박하면서 또 웃으면서 일하는 그분들의 케미가 참 좋았다.
"사모님이 그럼 제가 보낸 문자를 받으셨겠네요. 너무나 안타깝네요. 죄송하기도 하고요. 사모님은 이제 일 안 하시나요?"
"못 하죠. 생각나서 할 수가 없어요. 나도 그 양반 그렇게 가고 두 달은 일을 못 했어요. 자꾸 생각이 나서 일을 할 수가 없었어. 나랑 20년 세월을 같이 일했는데.."
아저씨의 말에 나는 울컥했다. 아저씨도 그분을 기억하는 고객을 만나니 마음이 아프셨나 보다. 생판 남인 아저씨와 나는 서서 그렇게 말없이 같이 울었다.
안방에는 사장님이 다시 조립해서 멀끔해진 장롱이 있다. 지금 집 구석구석 그분의 손길로 편리하게 살았다. 이제 예쁘게 고친 집으로 들어간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이삿날 남편이랑 이번엔 안 싸울 수 있다고 큰 소리 좀 쳐 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늦었다.
평생 험한 일로 다져진 다부진 생활 근육의 사장님은 항상 밝고 명랑하셨다. 조금만 더 일하시면 아마 은퇴 후의 삶을 사실수 있었을 것도 같다. 평생을 자신의 손과 어깨, 다리로 일하신 분이 그렇게 가셔서 마음이 아프다. 개인 사업자라 산재로 인정받지도 못 하셨다고 한다. 겨우겨우 마음을 달래고 새로 오신 아저씨에게 이사를 부탁드렸다.
가시는 길을 배웅하면서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아저씨, 이삿날 뵈어요. 일은 항상 안전하게 하세요.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은 하지 마시고 거절하세요."
내 말 대로, 원칙대로 되기는 힘든 일을 하고 계시는 아저씨에게 내 말 따위가 무슨 보호가 되겠냐마는 드릴 말씀이 그것밖에 없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오기는 오는 것인가.
흘린 땀만큼 사장님이 평안하시기를 빈다.
편안히 쉬세요, 사장님. 이사는 이제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