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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Jan 26. 2022

남이 해 준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산다는 것, 그 지겹지만 숭고한 이야기

새로 이사 온 집의 지하에는 테이블 네 개와 좌식 밥상 두 개짜리 아주 작은 밥집이 있다. 이사 온 다음 날, 남편과 아들 둘이 먼저 먹었는데 소박한 반찬에 맛이 괜찮다고 했다.

점심을 거르고 출근한 나는 새 집에 도착하자마자 홀로 그 밥집을 방문했다. (남편이 아이들 저녁을 먹였으니 가능한 일)


스러져가는 오래된 인테리어, 벽지는 변색되었고 테이블은 낡았지만 전체적으로 정겨운 분위기다. 가격대는 거의 6천 원. 요즘에 이 돈에 밥을 먹을 수 있다니 놀랄 수밖에.

이사하고 계속 일을 하고 바로 출근을 해서 몸이 으슬으슬 추웠기에 뜨끈한 뚝배기에 끓여 나오는 순두부찌개를 주문했다. 아주머니 혼자 주문받고 조리하고 서빙하는 분위기인데 저녁시간이라도 한가해서 그다지 바빠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느긋하게 밥을 기다렸다. 아주머니는 이내 뜨거운 순두부찌개와 여러 가지 반찬을 차려주셨고 나는 허기와 추위로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했다. 입천장이 데면서도 멈출 수 없는 순두부찌개는 많이 자극적이지 않은 시원한 얼큰함이 있었다. 여러 반찬이 있었지만 단연 손이 가는 것은 갓담은 김치였는데 아주머니가 새벽에 손수 담근 것이라고 하셨다. 이 가격에 밥을 팔면서 김치를 담가주는 식당이 아직 있었단 말인가. 젓갈 냄새가 향긋했고 갓 버무린 김치 특유의 상큼한 내음과 배추의 알싸한 맛이 다른 반찬 없어도 밥을 비우게 했다. 김치를 잘 먹는 나를 보고 아주머니는 말없이 김치를 채워주셨다.


"너무 맛있어요!"


"응. 내가 오늘 아침에 담갔는데 많이 잡솨~"


살찐다고 밥은 반 공기만 먹는 내가 그 꽉 찬 밥을 죄책감 없이 한 그릇 잘 비우고 나니 그제야 아주머니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참 맛있게 잘 먹었어요, 사장님. 어제 이사 왔는데 오늘 점심에 제 남편이랑 아들들이 여기서 밥 먹고 맛있다고 제게 추천했어요."


"어머? 그 아들들이 그 집이야? 점심시간엔 우리 아들이 서빙 도와주는데 안 그래도 얘기해서 나도 들여다봤어. 점심시간엔 근처 KT 직원들이 많이 오는데 당연히 그 직원들 셋인 줄 알았는데 둘이 '엄마한테 말해주자, 아빠!'.. 이런 소리를 하니 울 아들이 저기 세 사람 중에 둘이 아들이라고 놀라서 내게 얘기해주더라고. 등치가 커서 당연히 어른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어리더라고."


"ㅋㅋㅋㅋ 네. 그 애들이 제 애들이에요. 아직 초등, 중학생인데 멀리서 보면 어른이고 얼굴은 애기고 그래요. 덕분에 잘 먹고 좋은 식당 알게 되었으니 제가 출근하고 애들 밥 먹기 힘들면 여기서 사 먹으라고 할게요~"


"그래요. 일하는데 애들 밥 걱정이 제일 힘들지. 나도 우리 애 어릴 때 그놈의 밥 때문에 맨날 걱정이었어."


세상에, 밥집 사장님도 아이 밥 걱정을 하시는구나. 애 떼어놓고 일하는 사람의 숙명인가. 그놈의 밥 걱정은 세대가 하나 바뀌어도 계속된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지고 사는 게 편리해져도 먹여야 할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틀 뒤, 아이들을 데리고 셋이 밥을 먹으러 다시 식당에 방문했다.

6천 원짜리 부대찌개를 2인분 시키고, 오징어 볶음 12,000원짜리를 주문했다. 양도 많았고 반찬도 훌륭했다. 사장님은 고추 삭힌 걸 줄까, 배추김치를 줄까? 하셔서 배추김치 주세요~했더니 아이들이 고추를 안 먹을 거 같아서 물어보셨단다. 아, 친정 엄마 같다.


메인 요리로 이미 넘치도록 배가 불러 윤기 나게 잘 조린 진미채를 거의 남겼다. 너무 아까워서(반찬 하는 사람은 이게 버려지는 것이 피눈물 난다) 사장님께 남은 것을 비닐봉지에 싸 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흔쾌히 새것을 보태서 싸주신다. 그냥 남은 것만 싸 달라고 해도 막무가내. 다음엔 작은 비닐을 들고 가서 남은 것만 싸와야겠다.


너무 값이 싸서 이래서 남으시냐고 여쭈었더니 아주머니는 너무 힘들어서 올해 500원만 올려 받아야겠다고 하신다. 다들  원씩 올리라고 하는데 매일  먹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당신은 그렇게  하신다고...

그럼 카드 받지 마시고 현금만 받으시는 건 어때요? 하니 하루 매출의 90프로 이상이 카드라고.


이런 저렴한 식당에서는 남편도 나도 항상 현금을 내려고 애를 쓴다. 이 식당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어르신들만 그 사정 알고 현금 주시고, 젊은 사람들은 얄짤 없다고 하신다.

나올 때 현금으로 계산을 하니 아주머니가 고마워하신다. 나도 아이들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선다.


배는 부르고 아이들도 내 손 안 가게 잘 먹였고 손에는 진미채 반찬까지 들렸으니 이 보다 완벽한 저녁은 없다.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이 덜 걱정하며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부모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며 배곯지 않으면 좋겠다.


*저녁 7시반이면 홀로 일하시는 사장님이 마감을 하는 아주 작은 식당이라 어딘지 묻지 마시고 각자 동네에서 잘 찾아보세요. 어느 동네에나 이런 밥집 하나는 잘 찾아보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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