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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Feb 13. 2022

세상에 간단한 음식은 없다

저절로 되는 것이 무엇이랴

몸도 마음바쁘게 지내면서  동안 오래 끓여야 하는  종류를 집에서 하지 않았다. 몸이 으슬으슬해서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으면  근처 식당에서 곰탕, 감자탕 등을 포장해와서 데워 먹었다. 추운 겨울날 뜨끈한 국물을  수저 뜨면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달랠  있었다. 먹고 나서 몸이 더워지니 감기 기운도 한결 날아가는 기분이다.


갈비탕은 냉동식품으로 구매해 먹었는데 간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양이 너무나 아쉬웠다. 4 식구가 대충 한 끼 때우려면 냉동 갈비탕도 2,3만 원어치는 구매해야 했는데 고기양이 부족해서 아쉬웠다. 그래도 내 손 안 거치고 데워만 먹으면 되니 그저 좋았지만 아이들 고기 주고 나면 내가 먹을 것이 아쉬워서 마트에 갈 때마다 갈비를 들여다보면서 저거 한 번 끓여야지.... 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오래전, 주부들 요리 사이트 82cook에서 미국사는 주부들이 '인스턴트 팟'이라는 신문물을 소개했다. 일종의 압력솥인데 전기로 작동되는 것이라 요리별 버튼이 있고 한 번에 재료를 다 넣으면 끝!이라는 것에 혹했다. 멸치 육수를 내도 불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넘치는지 너무 조려지는지 들여다봐야 하고, 김치찌개를 끓여도 역시 거품을 걷어내고 불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여름엔 이런 행위 자체가 형벌로 느껴질 만큼 덥고 얼굴까지 열이 오르기 일쑤였다.


남들이 다 쉽다고 하는 카레를 해도 고기 볶고 야채 볶고 물 끓이고 카레 가루 넣고 잘 저어서 뭉치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 불 앞에 30분은 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몽땅 사라진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물건인가! 육아든 요리든 템빨이 중요하다.


요리를 많이 하지만 사실 즐겨서 하는 편이 아닌 나는 칼질도 야무지지 못해 채칼을 쓴다. 칼도 종류별로 많이 사서 용도에 맞게 쓰는데 친정어머니가 쓰시는 부엌칼은 딱 하나다. 그 하나의 칼로 채 썰고 야채 다듬고 고기 썰고 하는데 음식의 결과물은 훌륭하다. 그렇다. 고수는 장비를 가리지 않으나 하수는 장비라도 갖춰야 하는 것이니 나는 이 인스턴트 팟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 디자인이 문제였다. 커다랗고 못 생긴 이 식당용 밥솥 만한 물건이 내 주방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작기나 하면 어디다 쏙 넣고 사용을 하겠지만 이건 감출 수도 없고 무겁다. 그래서 몇 년을 남들이 이걸로 편하게 하는 요리를 올릴 때마다 나는 압력솥도 크기 별로 있고 곰솥도 있으니 괜찮아~하며 구매 욕구를 달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나이가 들고 손가락들이 고장 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 못생긴 인스턴트 팟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전기압력 밥솥의 내솥 코팅이 벗겨져 내솥의 가격을 검색하니 인스턴트 팟의 가격과 비슷한 것도 한몫을 했다. 최저가를 검색하고 파격적인 가격에 나온 곳을 알아내 장바구니에 담아놓고도 그 못생김 때문에 며칠을 주저했지만 결국 내 주방 한켠을 그 못생긴 녀석에게 내주고야 말았다.


그놈이 도착하기 전 날, 나는 자주 가는 대형마트 코스트코에서 갈빗살 1.8킬로를 샀다. 누군가가 갈빗살로 갈비찜을 하면 순살 갈비찜이라는 팁을 주었다. 그렇다면 갈비탕도 이렇게 할 수 있겠다 싶어 고기를 사 와서 검색을 해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귀찮은 뼈가 없는 갈빗살만으로 갈비탕을 제조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갈비탕이 완성된다니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


일단, 핏물 뺀 고기를 인스턴트 팟에 넣고 초벌로 한 번 끓여낸다. 고기를 차가운 물에 헹궈내고 다시 물을 넣고 무, 대파, 양파, 마늘 등을 넣고 30분간 조리한다. 끝!!!


이것이 요리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


코스트코의 갈빗살은 기름과 근막이 그대로 붙어있다. 소매용과 도매용 고기가 있는데 가격은 당연히 도매용이 저렴하나 기름양이 더 많다. 그럼 소매용은 싹 손질이 되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 많이 먹는 아들 둘 엄마는 도매용 갈빗살을 사 와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앞치마를 두른 후 칼을 잘 벼려서 고기를 손질한다.

소고기를 손질할 때는 악기는 현악기로 시대는 고전을 선호한다. 피 냄새를 잘 가려줄 것 같고 외과 수술하는 의사 느낌이 나기도 한다.


https://youtu.be/-18wVXO_AyE


라텍스 장갑을 양손에 착용한다. 간호사는 없지만 잘 소독된 블레이드를 잡는다. 차가운 칼로 날렵하게 고기를 가른다. 지방 제거는 쉽지만 근막 손질이 어렵다. 잘 벼려진 가위도 동원된다. 고기 양이 제법 많지만 끓이면 양이 반으로 줄 테니 참아낸다. 소고기의 피 냄새는 정말 괴롭지만 꾹 참고 하나하나 손질한다.

간호사? 나머지 뒤처리(칼 소독, 도마 소독)를 부탁해요~ 하고 싶지만 그것 또한 내 몫일 지니.


그렇게 잘 손질한 고기의 핏물을 빼기 위해 찬물에 담근다. 중간중간 찬물을 갈아주는데 그때마다 싱크볼에 소고기 기름이 코팅된다. 드디어 핏물 제거 과정이 끝났다. 나는 수술이 끝난 수술실을 소독하는 마음으로 싱크볼을 뜨거운 물로 닦고 세제를 풀어 닦아냈다. 손에도 싱크볼에도 미끌거리는 소기름 범벅이었지만 이제 뽀송해졌다.


고기를 초벌로 삶는 동안 채소용 칼과 도마를 꺼내 대파, 양파, 무 등을 손질한다. 다리가 저려온다. 손마디가 쑤셔온다. 하지만 고소한 국물을 상상하며 달린다. 끝이 보인다.


초벌 삶기가 끝난 고기 솥을 꺼내 체에 걸러 찬물로 헹군다. 여기가 고비다. 그 고기 삶은 냄새가 제일 역하고 괴롭다. 고기를 깨끗이 씻기고 냄비도 한 번 더 닦아 고기와 채소를 담아 맑은 정수기 물을 받아 다시 못생긴 녀석에게 넘겨준다.


이제 끝이니? 아니지. 고기 거른 채반에 고기 찌꺼기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탁탁 털어보고 씻으며 잘 안 빠지는 것들은 솔로 제거한다. 이제 다 왔나?


예열 20분, 본 조리 30분의 시간 동안 나는 자유인가? 아니다. 밥을 지어야 한다. 밥은 원래 하던 전기압력밥솥에 맡긴다. 인스턴트 팟의 구매 이유인 코팅이 벗겨진 내솥은 이제 고려 대상도 아니다. 먹고 죽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 고되다. 하지만 불 앞에 서있지 않으니 나는 신문물의 혜택을 입은 자유인이다.

그 못생긴 녀석의 예열 시간을 계산하지 못 한 나는 밀키트로 사놓은 수삼 사태찜을 조리하기 시작한다. 수비드로 익힌 사태가 들어있어 그야말로 끓이기만 하면 되니 이 녀석이 효자로다.


사태찜으로 저녁을 잘 먹고 저녁 설거지는 식세기 이모에게 맡기고 이제 내 시간이 돌아왔다.

못생긴 녀석의 압력을 빼주고 솥을 꺼낸다. 기름을 충분히 제거했지만 탕으로 끓이면 또 기름이 한 겹 둘러있다. 수저로 살살 제거한다. 작은 거름망으로 대파와 양파 등 채소를 건져 수저로 잘 눌러 육수의 손실을 막는다. 이제 시원한 베란다에 솥을 내어놓고 자고 일어나면 기름이 굳어 더 제거하기 쉽겠지.


달게 잠을 잔 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국솥을 들여다본다. 기름을 마저 제거한다.

다른 곰솥으로 내용물을 옮기고 간을 한다. 레시피마다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뭘 더 넣는지 알고 있지. 마법의 백색가루(미원)와 갈색 가루(다시다)를 마지막에 조금씩 섞어 넣는다.


아따 그 육수 깊은 맛이 난다! 엄마 손맛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오랜만에 유기그릇을 꺼낸다. 한식의 전통을 이어가는 멋쟁이 주부로 보이겠지. 훗!

밥을 유기그릇에 담고 국을 얌전하게 뜬다. 곱게 썬 파를 올린다. 후추를 후추후추 뿌리고 아이들에게 한 그릇씩 덜어 준다. 아이들은 고기가 듬뿍 들어간 갈비탕을 후루룩 촵촵 잘도 먹는다.


고기 38,000원어치를 사서 세 번은 양껏 먹을 테니 이 얼마나 저렴한가. 내 인건비는 0원이니 그 갈비탕 단가 저렴하다. 신문물의 혜택으로 '간단하게' 갈비탕을 끓였으니 나는 현명한 주부다.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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