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기회는 우리를 찾아오지만 그 기회, 잡아본 적이 있나요?
2022년 2월 25일, 카네기홀에서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의 협연으로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주최 측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푸틴과 친분이 두터운 이 아티스트들을 배제하고 급하게 다른 연주자를 찾았다. 프로그램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심포니 2번으로 지휘자에게도 까다로운 편이고 피아니스트에게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곡이었다.
프로그램은 고정된 채로 급하게 연주자를 찾아 공연을 할 수 있는가?
카네기 홀과 빈필 측은 뉴욕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인 지휘자 야니크 네제 세갱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마침 지휘자는 오페라 공연 준비로 뉴욕에 와 있는 상태였으나 조성진은 베를린에 머물러 있었다.
공연 전날 저녁 7시 즈음에 매니저로부터 연락을 받은 조성진은 자정을 넘겨 연습할 곳을 찾아 호텔 로비에서 새벽 3,4시까지 연습을 한 후 아침 7시에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 그는 이 협주곡을 2019년 이후에 연주한 적이 없으나 악보를 전부 외우고 있었다. 뉴욕에 도착해 샌드위치 하나 먹고 공연 시작 75분 전에 리허설을 마친 후 카네기홀과 빈필과의 협연의 데뷔를 하게 된다.
연주는 아주 좋았다. 이런 대곡을 2년 반 만에 연주하면서 전부 암보로 연주했고 실수도 없었다. 그저 몇 달 연습해서 연주회를 준비한 여타의 피아니스트들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주를 했고 감정의 과잉 없는 담백한 표현으로 더 큰 울림을 주었다.
카네기홀과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기회가 조성진 같은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에게도 흔히 오지 않는다.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조성진 본인이 간절히 원했고 그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길고도 짧은 인생을 살면서 좋은 기회가 내게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으려면 깨어있어야 함을 조성진이 보여준다. 그의 연주 인생은 구도자의 길과 비슷하리라 짐작만 한다. 좋은 음악을 노력 없이 한국의 거실에서 들을 수 있게 해 준 예술가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유튜브에서 조성진의 카네기홀 연주 녹음본을 가져왔습니다.
공연 시작 전에 해설가들이 이 협주곡의 2악장의 모티브를 따와 만든 에릭 카멘의 'All by myself'를 소개했습니다. 에릭 카멘은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니도 좋아해서 이날 공연한 심포니 2번의 3악장의 모티브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아래에 심포니와 함께 소개합니다.
*카네기홀 실황을 소개합니다. 처음에 해설이 나오고 피아노 협주곡이 먼저 시작됩니다. 조성진의 인터뷰는 55분부터 시작됩니다.
2부의 심포니 2번의 2악장은 1시간 45분 30초에 시작합니다. 자칫 감정의 과잉에 빠지기 쉬운 멜로디를 클라리넷 주자가 깔끔하면서도 서정적으로 연주해서 더 감동이었습니다.
이 심포니의 3악장으로 만든 에릭 카멘의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을 소개합니다. 심포니의 느린 멜로디에서 이렇게 경쾌한 곡을 만들어 낸 에릭 카멘도 참 훌륭한 예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