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터라 피아노의 음색과 터치에 민감하다. 디지털 피아노를 사게 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사를 하며 오래 갖고 있던 그랜드 피아노를 처분했다.
업라이트, 사일런트 중에 고민 중이었는데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는 선배님과 현역 피아니스트가 요즘 디지털 피아노 너무 잘 나온다고 본인이 구입한 모델명을 알려주셔서 테스트를 해 보았다.
프로 음악가들이 추천한 대로 그동안 외면했던 디지털 피아노의 발전은 눈부셨다.
디지털 피아노의 가장 큰 한계점인 어쿠스틱 피아노의 터치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제품들도 있다.
층간 소음으로 서로 힘든 도시 생활자들에게 어쿠스틱 피아노는 사실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장마철 습도가 높고 겨울에 난방을 많이 하는 한국의 기후에서 사실 6개월에서 1년마다 하라는 조율도 귀찮기는 하다.
앞으로 살게 될 집이 아파트 위주일 테니 디지털 피아노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각 제조사 별로 가장 상위 등급만을 시연했고 어쿠스틱의 터치 느낌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피아노의 액션을 건반에 적용한 '하이브리드 피아노' 위주로 보았다.
1. 야마하 clp-685
고민했던 모델 중에 유일한 순수 디지털 피아노. 음색이 다양하고 나중에 아이들이 작곡을 할 때에도 편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기울었는데, 건반의 터치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디지털 피아노 중에서는 가장 터치가 훌륭하고 많은 분들의 추천을 받았다.
실제 어쿠스틱 건반은 한 번에 눌려지지 않고 한 번 살짝 걸렸다가 내려간다. 구조상 그렇게 되는데 디지털 피아노에서 이 만한 기능에 그걸 탑재하려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음색이 있고 스피커의 출력이 좋아서 아이들 교육용으로는 사실 아까울 정도로 고사양의 스펙을 지녔다.
실제 영상 음악 하시는 분들이 이걸 미디 입력용으로 많이 쓰기도 하는데, 음원은 결국 따로 사용한다고 하여 패스.
2. 야마하 NU1X
현역 피아니스트에게서 추천받기 전에 clp-685 모델을 보러 갔다 비슷한 가격대의 모델이라 한 번 연주했는데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였다. 터치가 그냥 일반 피아노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피커 출력과 음색수가 685와 차이가 나서 고민을 많이 했다. 마침 피아니스트 분도 강추를 하셔서 몇 번을 여러 군데 매장에 가서 쳐보았는데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로 그대로 소리를 내주었다.
디지털 피아노는 건반이 손에 붙는 느낌이 별로 없는데 이 모델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로 손에 붙어 소리를 냈다.
어쿠스틱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액션이 움직여 해머가 현을 때리며 소리를 내는데, 이 모델이 실제 액션을 넣어 디지털 센서를 건드려 연주가 되게 만든 하이브리드 피아노. 음색수가 15개밖에 안 되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주로 피아노 연주와 아이들 반주하는 용도에는 이 모델이 적합했다.
물론 그랜드 피아노처럼 실제로 해머가 현을 때리며 나는 울림은 없지만 가장 비슷하게 구현한 것이 맘에 들었다.
이 모델의 구매 후기를 보면 같은 음을 연타하면 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트릴을 할 때 음튐 현상이 있다는 이야기가 많아 걱정을 했다.
베토벤의 발트 슈타인을 쳐보았는데 동일한 화음을 연타해도 별 문제없었다.
다만 트릴 할 때 소리가 꼬이는 경우가 있는데, 오랫동안 트릴을 하면 팔 근육이 긴장하며 나타난다. 실제로 음튐을 호소하는 동영상을 보니 뒤로 갈수록 릴랙스가 되지 않아 더 그 느낌이 강화되는 듯했다.
사실 이 모델 자체가 릴랙스 되지 않은 팔의 단점을 더 잘 보이게 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 근육에 힘을 빼려고 노력하게 되는 수확도 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모델을 구입한 이유는 오로지 터치 때문이다. 내게는 이 모델의 터치가 다른 여타 브랜드의 하이브리드 피아노의 터치보다 훨씬 좋게 느껴졌다.
3. 롤랜드 LX-708
공대 출신 남편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모델. 터치는 본인이 알 수 없는 영역이나 전자제품으로서의 스펙이 모든 모델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극찬했음. 실제로 롤랜드사에서 제공하는 앱은 너무 훌륭하다.
터치는 좋은 편이었으나 내게는 큰 감흥이 없었고, 디자인이 살짝 투박해서 나는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실제 구입을 일본 제품으로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디지털 피아노는 악기이기도 하면서 전자제품인데 IT 강국의 한국인이 쓰기에는 답답한 면이 많다. 일단 악기와 스마트폰이나 패드 종류를 블루투스로 연결을 하려면 야먀하의 경우는 별도로 케이블을 사야 하는데 무선 연결의 경우 10만 원 정도 한다고 한다. 다행히 공대 남편이 집에 있는 것으로 해결을 해줄 듯 하나 아직도 이렇게 생산을 하는 제품이 있나.. 하며 한숨을 쉰다.
터치에 민감하지 않으면 롤랜드 제품을 추천한다.
4. 롤랜드 - 키욜라
일본의 가리모쿠 가구사와 디자인 협업으로 탄생한 피아노. 심플 그 자체에 너무 예쁜 디자인에 혹했지만 하이브리드 피아노임에도 터치가 너무 실망스러웠다. 악기라기보다 하나의 미술작품 같은 형태로 정말 끌렸다.
이 피아노를 집에 들이면 그 자체로도 하나의 인테리어가 되므로 정말 많은 갈등을 했다.
작업실을 따로 두면서 집에서 가끔 치는 용도라면 강추한다.
5. 카시오 - GP500
이번에 피아노 투어를 하면서 알게 된 수확.
전자시계, 계산기 브랜드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 카시오의 키보드는 스테디셀러이다.
이 회사에서 야심 차게 독일의 명품 피아노 벡스타인과 협업을 하여 훌륭한 하이브리드 피아노를 만들어 냈다.
터치도 훌륭하고 음색도 괜찮다. 가격은 더욱 매력적이다.
내 경우에 터치는 사실 2번이 제일 맘에 들었고 카시오는 디자인의 장벽에 걸려 제외했지만 아이들 교육용으로 추천한다.
6. 가와이 - CA99
가장 최근에 출시된 신제품. 가와이의 음색은 정말 예쁘다. 맑고 깨끗한 음색 그대로 재현해 냈다. 이 제품 출시를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고 나도 예약이라도 걸어야 하나 하고 방문을 했다.
역시 하이브리드 피아노로 터치도 좋고 소리도 좋았으나 비슷한 가격대에서 유광 모델이 없는 게 결정적이었다. 유광을 선택하면 가격이 너무 비싸진다.
남편은 좌측에 있는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지 못 한 게 걸린다고 했다. 차라리 버튼으로 누르는 야마하가 더 사용하기 쉽다고 했다. 사실 가와이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지털 피아노를 만드는데 나와는 맞지 않을 뿐.
가격이 조금 떨어지면 훌륭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 지극히 개인적인 후기임. 구입 전에 반드시 충분한 시연을 통해 맞는 악기를 찾기를 바란다. 남이 좋다, 아니다 아무리 이야기 해보아도 나한테 맞는 악기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